[비즈한국] 반도체 초호황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 노사에 전례 없는 긴장을 불러왔다.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에서 비롯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은 사이 세를 불린 과반 노조가 탄생했다. 법적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한 노조는 상위 노조에 기대지 않고 임직원 권익만을 챙기겠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역대급 실적 속 보상 원칙에 대한 회의, 실리로 무장한 새로운 노조의 등판. 삼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이번 파업은 어디로 향할까.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와 사측의 임금 교섭은 성과급 산정 기준을 둘러싼 이견으로 거듭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수는 지난해 9월 6000명 규모에서 4월 현재 7만 5000명을 넘어섰다. 특히 반도체(DS)부문 인력의 80% 이상이 결집했다.
노조는 오는 23일 대규모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협상이 결렬될 경우 5월 21일부터 18일간의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측은 같은 날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마저 결렬된 상황에서 노조는 실무진 협상을 넘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사가 좁히지 못한 ‘진짜 간극’
삼성전자 노사 협상의 최대 쟁점은 성과급 재원 비율이다. 노조는 DS부문 성과급 재원으로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한다. 더불어 지급 상한제를 즉각 폐지하라는 입장이다. 사측은 영업이익 10% 이상을 재원으로 활용하고 메모리 사업부에는 경쟁사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 경우 성과급은 평균 연봉의 600% 수준, 인당 약 5억 40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1%대 저금리 대출(인당 5억 원 한도), 기본임금 6.2% 인상, 자사주 30주 지급 등 부가 조건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의 본질은 숫자보다 ‘명문화’ 여부다. 노조는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비율을 매년 보장받는 제도적 틀을 원하지만, 사측은 반면 사측은 반도체 사이클 특성상 이익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특정 비율의 고정 지급을 약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섭 과정에서 불신도 쌓였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 당시 올해 영업이익을 200조원 미만으로 제시했으나 실제 예상 영업이익은 300조원에 달한다며 신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간 ‘영업이익 1조 원당 1% 지급, 단 신기록 경신 시에만’이라는 조건부 안과 직급별 차등 지급안 등에 대해서도 “조합원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라며 반발해왔다.
#노조 “‘깜깜이’ 수식이 박탈감 키웠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비즈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조합원 규모가 7개월 만에 12배 넘게 폭증한 것은 노조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라며 “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은 영업이익에서 이자비용, 법인세, 회사가 정한 ‘자본 비용’을 모두 빼는 깜깜이 수식인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고수해 직원들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영업이익의 10%로 성과급 기준을 명문화하고 이듬해 상한선을 폐지했다. 실적 발표가 되면 직원들이 보상액을 가늠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삼성 직원들은 EVA 수식 특성상 영업이익이 늘어도 실제 손에 쥐는 성과급이 얼마인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여기에 내부 사례도 불만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2024년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너지를 위해 출범한 CTC 조직은 메모리 부문 성과급이 오히려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고 1년 만에 해체됐다는 것. 지난해 HBM 경쟁력 강화를 위해 꾸려진 ‘HBM 원팀’도 성과를 낸 후 해체됐는데, 성과에 걸맞은 보상 대신 일방적인 조직 운영이 반복되며 노조가 세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라인 멈추면 돌이킬 수 없다” 사측이 선을 긋는 이유
사측은 이번 제안에서 ‘실질적인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인 하이닉스보다 높은 수준의 보상을 약속한 것이다. 다만 특정 비율 고정 시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가 과도한 데다, 사측이 제시한 안 자체가 표면적 수치보다 실질적으로 더 큰 부담이라는 논리다.
삼성은 SK하이닉스와 달리 적자 상태인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를 포함한 전 인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직원들에게 하이닉스 수준을 맞춰주려면 실제로는 영업이익의 13~15%를 써야 하는 구조”라는 시각이 나온다.
DS부문은 2023년 14조 7000억 원의 영업 적자를 낸 전례가 있다. 업황이 급격히 꺾일 경우 고정 비율 지급 의무가 재무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DS부문에만 15% 공식을 적용할 경우 MX(스마트폰)·VD(TV·가전) 등 비DS부문과의 형평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조는 파업 시 설비 백업과 공정 중단 등을 고려하면 하루 최소 20조 원에서 30조 원 규모의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파업 현실화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감시가 필수적인데, 3만 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동시에 연차 투쟁이나 파업에 돌입한다면 라인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3개월 이상의 긴 공정이 필요한 HBM의 경우, 라인이 한 번 멈추면 해당 구간의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해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막심하다.
업계 관계자는 “성과급을 이유로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라인을 멈추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삼성이 파업으로 흔들리는 사이 대만 TSMC 등 경쟁사들이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창사 15년 만의 파업 위기 맞은 삼성바이오로직스
K-바이오의 선두주자이자 삼성그룹의 또다른 핵심 성장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노사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011년 설립 이래 15년 만의 첫 총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노조와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과도하다는 사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동조합(노조)은 5월 1일 전면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파업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는 22일 대규모 사업장 집회 개최도 앞뒀다. 노조는 지난 3월 말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95.5%의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했다. 현재 전체 임직원의 75%가량인 3700여 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어 파업이 이뤄지면 생산라인 가동에 치명적인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간 갈등의 핵심도 단연 성과급이다. 노조는 평균 14% 수준의 임금 인상과 임직원 1인당 3000만 원의 격려금 지급, 3년간 자사주 배정,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OPI)으로 상한 없이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매년 실적을 갱신하며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직원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출 4조 5570억 원, 영업이익 2조 692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산업 특성상 선제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에 위치한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에 5216억 원을 쏟아부었고 향후 생산케파 확대를 위해 제6~8공장 건설 등 조 단위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향후 3년간 무배당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측으로서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주주들에게도 양해를 구하는데 노조가 주주들의 희생과 괴리된 대규모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는 셈이다.
이에 대해 박재성 상생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1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부에서 노조의 요구가 주주배당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는데 글로벌 빅테크기업 주주들은 당장의 배당금이 아니라 압도적인 기술력을 통한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한다”면서 “그러려면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보상이 필요한데 이는 소모적인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반박했다.
#막으려는 사측, 강경한 노조…바이오도 평행선
업계 일각에서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CDMO 사업도 파업으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하기 때문에 공정이 멈추면 단백질 및 항체 전량을 폐기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품질 보증 및 납기 준수라는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가 깨져 글로벌 수주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사측은 최근 인천지방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현재 하루 작업하는 배치가 100여 개에 달해 최소한의 공정이 멈출 경우 하루 최소 6400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조는 사측이 생산 차질에 따른 손실 규모를 볼모로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박 노조위원장은 “손해를 보는 건 파업의 필연적인 결과이고 이를 토대로 상대방을 교섭에 끌어들이는 것인데 손실이 커서 위협적인 상황이 된다면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노조는 파업이 무조건적인 목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측은 임금과 복지 등의 각종 제도를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조를 경영 파트너가 아닌 통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면서 “독립법인인 각 계열사가 사업지원실 및 각종 TF의 지시를 받는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로 운영되고 있어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마주한 파업 국면 책임은 전적으로 사측에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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