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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원 비만청구서] ① '민원'에 망가진 급식판, '알고리즘'에 건강 망치는 아이들

소아청소년 덮친 '이중 영양 부담' 딜레마…비만은 의지 아닌 질병, 환경 개선 이뤄져야

2026.04.21(Tue) 17:31:55

[비즈한국]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연간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낳는 ‘구조적 재난​이다. 비즈한국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만 청구서의 근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만 치료제 급여화와 설탕세 도입을 둘러싼 첨예한 정책적 딜레마를 살펴본다. 나아가 약물 만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100조 원 시장의 판도를 바꿀 K-바이오의 혁신 현장까지 조명한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이제 개인의 식탐이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구조적 재난이다. 지난달 13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63차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 현장에서는 붕괴하는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비만과 저체중이 동시에 증가하는 ‘이중 영양 부담’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학교 공공 급식이 아이들 입맛에 맞춰달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무너지면서 건강은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한 여자중학교의 점심 급식. 사진=독자 제공

 

#‘민원 방패막이’가 된 단맛…무너지는 공공 급식

 

학교 급식은 아이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학술대회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선호도를 맞추려다 보니 중복된 식품군이 한꺼번에 나오거나 조리 편의성을 이유로 가공식품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늘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 민원이다.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단에 불만을 쏟아내면서 학교 측은 행정 편의를 위해 단맛 위주의 식단과 타협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음료수와 빵이 간식으로 추가되는 상황은 이제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됐다. 학교가 비만 유발 환경의 온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비만학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데 왜 넣어주지 않느냐 하면서 학교는 이러한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점점 건강하지 못한 식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한 현실을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정소정 건국의대 건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학회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 정책에 반영하는 연계 사업이 보다 강화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환경과 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저체중도 비만 못지않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생성형AI

 

#한쪽은 비만, 다른 한쪽은 뼈말라족…알고리즘이 낳은 영양 양극화

 

현실의 공공 급식이 단맛에 무너지는 사이 아이들이 갇혀 있는 디지털 환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최근 교실 한쪽에서는 고도비만 환자가 늘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식증에 시달리는 ‘영양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영양 과잉으로 인한 비만과 달리 저체중은 사춘기 청소년의 신체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영양 부족으로 골량 축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향후 골절이나 골다공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염 위험을 높이거나 우울, 불안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홍용희 순천향의대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과체중과 저체중은 영양불균형(malnutrition) 스펙트럼 안에 있어 서로 반대되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저체중인 아이가 성장하면서 체중이 증가하면 지방을 좀 더 쉽게 축적하게 돼 오히려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만과 저체중 현상이 점차 심화하는 배경에는 유튜브와 틱톡의 알고리즘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고리즘은 하루 2~4시간 이상 휴대폰 화면에 갇힌 아이들에게 두 개의 극단적인 세계를 주입한다. 한쪽에게는 자극적인 먹방과 배달 음식 광고를 쏟아내며 폭식과 비만을 유도하고 다른 쪽에게는 비정상적으로 마른 연예인의 몸매를 찬양해 ‘뼈말라’ 챌린지를 강요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2023년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통해 스크린 타임 감소를 강력히 권고하기도 했다. 디지털 기기는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뺏는 데 그치지 않고 왜곡된 식사 강박을 심어주어 아이들이 건강하게 먹는 법 자체를 잊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부모의 자녀 체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저체중으로 이어질 수 있어 아이들에 대한 정확한 성장 평가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 교수는 “건강체중인 자녀를 둔 부모가 비만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18%에 이르기도 한다는 한 연구결과도 있다”면서 “부모의 정확한 성장 평가와 건강체중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변 환경과 부모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만에 대한 걱정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사진=생성형AI

 

#사회경제비용 15조 원인데…환경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소아 비만의 약 80%는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늘어난 비만 세포는 성인이 된 후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을 만든다. 이는 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각종 만성 질환의 조기 발병으로 이어져 연간 15조 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비만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치부하는 비만 낙인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초가공식품의 유혹과 왜곡된 미의식의 디지털 환경에 아이들을 방치한 채 ‘적게 먹고 운동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가 등장했다고 환호하기에 앞서 단맛에 굴복한 학교 급식판을 바로잡고 아이들이 마주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장벽을 낮추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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