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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독일에선

틀에 갇힌 그림 강제하는 한국, 정형성 배제하는 독일…예술은 일상에서 느끼는 것

2019.03.21(Thu) 16:36:21

[비즈한국] 지난 주말, 너무나 오랜만에 미테 아우구스트 거리에 갔다.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 거리는 갤러리가 많아 서울의 삼청동 느낌도 나고, 핫한 카페나 숍이 많아 연남동과 비교되기도 한다. 2017년, 베를린살이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도심 구경에 나선 곳이기도 하다.

 

미술 문외한이지만 그림과 예술품 보는 것을 좋아하고, 베를린이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힙’한 도시라는 것을 상기하니 그곳이 ‘베를린의 심장부’처럼 느껴졌다. 한 걸음 떼면 만나는 작은 규모의 수많은 갤러리, 예술작품으로 보이던 무너질 듯한 낡은 무도회장 건물, 지저분하기보다는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던 수많은 종류의 포스터와 그래피티,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아우구스트 거리에 대한 첫인상이다. 

 

‘인피니트’를 주제로 무한의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아들 아이가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오랜만에 아이와 찾은 그곳은 대부분의 갤러리와 숍이 문을 닫은 일요일인 데다, 베를린에서 보기 드문 장대비까지 쏟아져 거리는 한산함 그 자체였다. 목적지로 삼았던 갤러리 카페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문 닫은 몇 개의 갤러리 밖에서 큰 창을 통해 안의 작품들을 구경했다. 

 

궂은 날씨, 거리에 선 채 하는 짧은 감상이었지만 아이는 자신의 감상을 쏟아냈다. “엄마, 이 조각은 여자 아이일까 어른일까? 그런데 드가(Edgar De Gas)가 만들었던 작품이랑 비슷하지 않아?” “저건 나무로 만들었네. 알록달록한 거 보니까 어린이를 위해 만든 거 같아.” 즐거워하는 아이에게 내가 말했다. “이 동네에 살 수도 있었는데 네가 다닐 학교 때문에 멀어진 거야.” 여기 살았으면, 매일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겠다고, 그러면 참 좋았겠다고, 아이가 말했다.

 

베를린 미테 지역의 아우구스투스 거리. 수많은 미술관과 핫한 숍들이 즐비한 이곳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박진영 제공


한국 나이로 열 살 된 남자 아이를 위해 한국에선 유명하다는 특별전에 거액 써가며 ‘교육적’ 목표로 가능하면 다 데리고 다녔지만, 아이의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만들기나 건축에 관심이 많아 ‘르 코르뷔지에’ 정도나 흥미로워했을까, 대부분은 마지못해 따라가 관람이 끝난 뒤 숍에서 물건 하나 ‘득템’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 아이가 이토록 달라지다니.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유럽에 살다 보니 박물관, 미술관을 경험할 기회가 많았고,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를 물들게 했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반 고흐 정도만 알던 아이가 모네와 마네 그림의 차이를 알게 되고,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에 꽂혀 무엇을 그리든 점묘법 스타일로 그리는 등 예술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 데는 ‘공부’가 아닌 스토리와 감상으로 예술을 접하면서 생겨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올해 초 아이 학교에서 열린 2학년 작품 전시회. 개인별, 그룹별로 제작된 회화, 조소, 영상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사진=박진영 제공


또 하나, 이곳의 미술 교육도 큰몫을 했다. 몇 달 전, 학교에서는 2학년을 대상으로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아이들이 개인으로 혹은 팀을 이뤄 만든 회화, 조소, 영상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실제 갤러리처럼 전시하고 부모에게 공개하는 자리였다. 

 

전시 당일,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 앞에 서서 작가가 된 양, 부모, 선생님, 친구 관람객이 작품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인피니트’라는 주제로 무한의 세계를 연필 스케치 추상으로 표현한 우리 아이는 그날 많은 부모·학생 관람객의 ‘폭풍질문’에 대답하며 내내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나는 한국의 일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여름 풍경에 가을 과일을 그려 넣고, 바닷속 그리기에 펭귄을 그려 넣어 ‘지적’을 받았다. 주눅이 든 아이에게 상상력을 칭찬해 주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이곳에 와서 그림이든 만들기든 자신의 생각이나 영감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나는 이런 교육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하는 창의력이자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전시회에 앞서 교장은 학부모를 모아놓고 잠재력의 발굴과 작품을 통한 표현 능력, 다시 언어를 통한 표현 능력, 팀워크 등을 통한 다양한 토의 등을 미술 교육의 지향점으로 설명했다. 이는 우리 학교만의 특징이 아니라 독일 예술이 갖는 힘과 연계돼 있다.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유럽에 살면서 누리는 최고의 축복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람객들과 오르세미술관의 피카소 특별전의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요즘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전역에서는 ‘바우하우스 100주년’ 관련 소식들이 넘쳐난다. 건축가, 예술가 집단이 모여 모든 미술 장르를 통합한 예술교육을 하던 바우하우스에서는 추상화의 대가 칸딘스키를 비롯해 명성 높은 예술가들이 교수로 활동했는데,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그들의 교수법 맥락이 토론과 담론의 공유에 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처럼 정확히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피카소가 말하지 않았나. 예술성을 키우고 죽이고의 문제는 어른들의 교육방식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요즘이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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