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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 생가를 찾아서 ③ 삼성] 만석꾼 넘어선 천석꾼의 '작은' 고택

'부자바위 전설' 호암재단 소유로 전면공개…'부자 기운 받아가시라' 판촉물 곳곳에

2019.05.03(Fri) 16:27:47

[비즈한국]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국내 재계 서열’ 순위에서 상위 5위에 이름을 올린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순이다. 이 대기업들의 총수인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SK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 LG 고 구본무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의 생가는 모두 국내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명당에서 부자 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5대 기업 총수들의 생가는 어떤 모습일까. ‘비즈한국’이 직접 찾아가봤다.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에 흐르는 남강에는 바위섬이 하나 있다. 가마솥을 닮아 ‘​솥 정(鼎)’에 ‘​바위 암(巖)’이 붙어 ‘정암’이라 한다. ‘정(鼎)’은 ‘다리 달린 솥’을 의미한다. 물에 잠긴 부분이 세 개의 다리가 달린 것처럼 생겼다. 

 

조선시대 한 도사가 정암리 남강을 지나다 ‘정암’을 보고, 다리가 뻗은 방향 20리(8km) 내에 세 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거라 예언했다고 전해지는데, 의령군 정곡리 중교리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고 구인회 ​LG그룹 ​회장,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조홍래 ​효성그룹 회장이 태어났다. 의령군, 진주시, 함안군 주민들은 정암을 ‘부자바위’ 혹은 ‘솥바위’라 부르며, 전설을 믿게 됐다고 한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  사진=고성준 기자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난 고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지난 4월 29일 ‘비즈한국’이 찾았다. 정암에서 직선거리로 8km 정도 떨어진 곳. 시기를 특정할 수 없으나 오래 전 이병철 회장 생가 뒷산이 ‘호암산’이라 불렸고, 도로명주소가 생긴 이후 중교리 장내마을도 ‘호암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병철 회장 생가 주변 곳곳에는 ‘부자길’이라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부자의 기운을 받아 가시라’는 내용의 문장이 적힌 판촉물도 눈에 띄었다. 

 

이병철 회장은 조선시대 의령군 내에서 ‘천석꾼’이던 이찬우 씨(1884~1957년)와 부인 권재림 씨(1885~1959년) 사이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00년여 전 한옥 세 개동으로 지어진 이병철 회장의 생가는 그의 친형 고 이병각 삼강유지 사장이 소유하다가 손자 이재곤 제일병원 이사장에게 상속됐으며, 이건희 회장이 2007년 1월 매입해 같은 달 호암재단에 증여했다. 호암재단은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증여받은 지 9개월 만에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했다. 

 

취재팀이 방문한 날은 하필 월요일, 호암재단이 ‘휴무일’로 정한 날이었다. 생가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담벼락이 높지 않아 대문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생가보다는 작았다. 조선시대 후기 구씨 일가는 ‘만석꾼’, 이씨 일가는 ‘천석꾼’으로 불렸다는 걸 생가의 규모로 가늠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대기업 총수 생가를 찾아서 ② LG] 진주 만석꾼의 풍요로움 '생생').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거주하는 한남동 단독주택(건물연면적 3422.94㎡, 1035.44평)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 이병철 회장의 생가 사랑채는 105.68㎡(31.97평), 안채는 46.81㎡(14.16평), 창고는 22.2㎡(6.7평) 규모다. 

 

고 이병철 회장이 결혼하면서 분가해 살았던 고택.  사진=고성준 기자

 

남동쪽 방향으로 골목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이병철 회장이 결혼하면서 분가해 살았던 한옥집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1964년 3월부터 소유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생가와 달리 ​​이건희 회장은 이 집을 호암재단에 증여하지 않고, 일반인에게 공개하지도 않았다. 높은 담벼락에 내부를 들여다보기 힘들었는데, 가까스로 보인 담벼락 내부 풍경은 이병철 회장의 생가보다 넓고 웅장했다. 이 역시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먼 친척이라는 마을주민 이 아무개 씨는 “이병철 회장이 결혼하면서 분가해서 살았던 한옥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30~40년을 살았다. 이건희 회장과는 먼 친척이나 왕래는 없다”면서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전 가족들과 함께 생가를 찾았다. 그때 서울에서 이 마을까지 헬기를 타고 왔는데,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리무진을 타고 생가로 향하더라. 걸어서 5분 거리인데도 말이다. 부자에게는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실감났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편 이건희 회장의 생가인 대구 중구 인교동 주택은 삼성문화재단이 1996년 5월 매입한 후 관리하고 있으며,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이 집은 한옥이 아닌 시멘트 벽돌로 지어진 기와집으로, 규모는 108.61㎡(32.89평)다. ​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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