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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가 회진을?' 어느 정신병원에서 생긴 일

입원 중인 환자에게 불법 의료행위 동원 의혹 인권위 진정…병원 "확인해줄 수 없다"

2019.06.07(Fri) 19:13:09

[비즈한국] ​지방의 한 대형 정신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입원 중인 ​조현병 환자가 다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회진을 하는 등 불법 의료행위에 동원됐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충청도의 A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조현병 환자 B 씨가 지난해까지 같은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한 후 포스트잇에 적어 이를 의료진에게 반복적으로 보고해온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충청도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조현병 환자가 다른 환자의 상태를 체크한 충격적인 일이 드러났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틸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네이버 영화


사건이 발생한 곳은 A 정신병원의 ‘10X병동’. 이 병동에는 조현병 환자를 비롯해 약 50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수간호사와 간호사(혹은 간호조무사), 보호사 총 3명. 이들은 10X병동 이외에도 약 40명의 환자가 있는 바로 위 병동을 함께 책임진다. ​이들 중 낮 근무만 하는 수간호사를 제외하면​ 90명의 환자 상태를 24시간 확인하는 업무는 간호사와 보호사 각각 3명의 인력이 3일에 한 번씩 교대 근무하는 방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병원 관계자 C 씨에 따르면 ​ 조현병 환자가 회진을 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6월 같은 병동에 있던 환자 D 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으면서부터다. 알코올 중독으로 이 병원에 입원한 D 씨는 ‘간호사가 라운딩(회진)을 하지 않고, 보호사가 조현병 환자에게 환자 부림(환자에게 잡다한 일을 시킨다는 뜻의 은어)을 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C 씨 역시 근무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치매를 앓던 노인 환자의 차트를 검토하던 중 실제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 차트에는 ‘환자가 면도칼로 한쪽 팔에 2~3회 자해한 흔적이 있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해 보니 반대쪽 팔에 20~30회 자해 흔적이 나 있었던 것. 이 병원에서는 환자가 자해할 경우 별도의 환자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는데,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의문을 가지게 된 C 씨는 조현병 환자 D​ 씨를 포함한 여러 환자들을 통해서 실제로 의료진 대신 B​ 씨가 회진을 돌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 불법 의료행위 동원된 조현병 환자 녹취 입수

 

‘비즈한국’​이 단독 입수한 조현병 환자 B 씨​​의 육성이 담긴 녹취에는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발견된다. B 씨는 “처음에는 선생님(간호조무사)이 감기몸살 때문에 출근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날 (간호조무사가) 무지 아프셨다. 그래서 (회진을 돌아달라고) 처음에 (부탁을) 했는데 계속 부탁을 하더라”며 “몇 년 전부터 그런 건 아니고, 한참 됐다. 힘들지는 않았다. (당 체크할 때 보조하는 것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간호사님이 있을 때부터 도와줬다”고 밝혔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냐는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해당 녹취에는 환자에게 불법 의료행위 이외에도 각종 잡일을 꾸준히 지시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B 씨는 “보호사님이 처음 왔을 때도 식당 쪽에 앉아 있었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그러고 할 수 있는 것만 도와준다고 했는데, 조금씩 하다 보니까 늘어났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잡일은 보호사의 이부자리를 개거나 보호사가 샤워할 때 수건을 건네주는 등의 일이었다.

 

조현병 환자 B 씨 이외에 다른 환자의 증언도 눈길을 끈다.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는 또 다른 환자는 의료진이 라운딩을 돈 횟수를 묻는 질문에​ “꼽을 게 있어야 꼽지. 라운딩을 안 돌았는데. 3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조사 나온 이후에) 라운딩을 돌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C 씨는 “환자가 적어온 것으로 기록하거나 보편적으로 ‘특이 변화 없음’, ‘병동 왔다 갔다 함’으로 루틴 차팅(간호기록)을 놓으면 회진을 제대로 돌지 않고도 기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병원 관계자 C 씨는 환자 차트가 잘못 기록된 것을 보고 의심을 품게 됐다고 얘기했다.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이러한 가운데 환자들에게 지목된 해당 간호조무사와 보호사는 ‘비즈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조현병 환자 B 씨가 몇 차례 다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업무를 도와준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 ‘자발적’으로 했을 뿐이며 강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회진을 돌지 않았다는 이야기 역시 오해라고 반박했다. 해당 간호조무사는 “환자 본인이 도와준다며 다른 환자의 상태를 한두 번 정도 얘기해줬고, 다시 가서 라운딩을 돌았다. 또 하지 말라고 얘기는 했다. 그러나 환자가 그런 걸 예민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분이라서 환자의 기분을 생각해서 ‘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보호사는 “환자가 50명인데 (보호사가) 한 명씩 케어를 못 한다. 그럴 때 환자가 병동에 오래 있다 보니까 습관적, 자발적으로 일을 도와주는 경우가 있었다. 샤워할 때 (조현병 환자가)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는 것도 다른 환자가 내 수건을 들고가는 것을 보고 (조현병 환자가 자발적으로) 갖다 준 것”이라며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환자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는데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의료적인 행위를 도와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호조무사가 다시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고 해도, 환자가 환자 상태를 체크해 포스트잇에 적고 그 기록을 간호조무사에게 넘긴다는 것 자체가 자발적이든 아니든 말이 안 된다”며 “환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못 누린 것이다. 병원에서 인력을 동원하거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업무 영역을 환자에게 미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환자에 의한 환자의 관리인 셈이다. 예전에도 정신요양시설을 군대 내무반처럼 만들고 환자가 환자를 감독하고 관리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서비스를 받으러 간 환자가 서비스를 제공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법 위반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이동찬 변호사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회진은 의사의 지시를 토대로 이뤄져야만 한다. 간호조무사와 의사는 물론 환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이원 변호사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간호조무사는 무면허의료행위 교사로 처벌받아 자격 박탈이 될 수 있고, 의사가 알고도 묵인을 했다면 의사도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며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은 의료인들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경계심을 풀려고 환자 중 한 명을 시켜 보조하게 하거나 일을 시킨 것 같은데 이는 법률적으로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고 지적했다.


# 병원은 말 바꾸며 책임 회피…감독기관의 실태 파악 ‘절실

 

A 병원은 쉬쉬하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5일 만난 A 병원 관계자는 “인권위에서 조사를 다 했다. 결격사유가 없다고 나왔다. (아예 환자에게 라운딩이나 잡일을) 시킨 적 없다”며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권위에서 조사를 다 해서 혐의가 없다는 게 다 증명됐는데 이것을 또 다시 얘기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무혐의가 나왔으니 관계가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 쪽의 말은 달랐다. 같은 날 ‘비즈한국’이 인권위에 확인 결과 ‘간호조무사가 회진을 돌지 않았고, 보호사가 조현병 환자에게 잡일을 시켰다’는 내용의 진정은​ 아직 조사 중이다. 다만 D 씨는 인권위에 두 건의 진정을 넣었고, 종결된 사안은 강제 퇴소와 관련된 부분으로 확인됐다. 인권위 대전사무국 조사관은 “조사 진행 중인 사건이라 세부 내용은 알려주기 어렵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진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위원회 결과가 나와야지 결과 통지서를 보내주는데 통지서를 보낸 적 없다. (병원이) 다른 사건과 착각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확인 이후인 7일 A 병원에 재차 문의하자 이번에는 말이 바뀌었다. 앞서의 A 병원 관계자는 “(인권위에서 이상 없음으로 통보받은 것에 대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인권위에서 통보가 온 게 한두 건이 아니라서 그렇다”라며 “종결됐다고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통보받은 자료에 대해 찾아본 후 연락을 달라고 재차 얘기했지만 “자료를 줄 이유가 없다. 알려줄 의무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정신병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범중 중앙대 교수는 “지방에서는 공권력의 영향이 수도권보다 덜하고 그러다 보니 환자의 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도 수준이 낮을 수 있다”며 “정신병원 환자들은 판단이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보호자들도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서 노인이나 아동 인권에 비해 보호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정신병원 환자들의 인권보호기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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