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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코로나 시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국립4·19민주묘지

"민주주의로 코로나 대응 성공" 평가…4·19혁명 60주년 사진전 보며 그날 되새기길

2020.04.14(Tue) 10:34:52

[비즈한국]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이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대중교육, 시민참여가 중국과 다른 방식의 성공적 방역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시작은 이곳이 될 수도 있겠다. 서울 수유리의 ‘국립4·19민주묘지’. 

 

많은 이들에게 ‘수유리 4·19탑’으로 익숙한 이곳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이들의 안식처다. 1960년에서 2020년까지, 60년 동안 숱한 피를 먹고 자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국립4·19민주묘지의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는 문장으로 탑문은 끝난다. 사진=구완회 제공

 

#고등학생이 이끈 민주 혁명

 

아직 코로나19가 일상을 멈추기 전인 겨울의 끝자락, 국립4·19민주묘지를 찾았다. 하늘은 맑았으나 며칠 전 내린 잔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民主聖地’라 쓰인 표지석의 마지막 글자도 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민주성지’가 된 것은 ‘군부독재’가 막 자리를 잡던 1963년의 일이었다.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 2월 국무회의에서 희생자들의 유해를 모실 공원묘지의 설립을 결의했고, 5·16군사정변으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이 부정 축재자의 수유리 땅을 국고로 환수한 후 1년 만에 묘역을 완성했다. 군부독재가 민주성지를 만든 셈이다. 

 

국립4·19민주묘지 표지석. ‘민주성지’라고 쓰여 있다. 올해로 4·19혁명 60주년을 맞는다. 사진=구완회 제공

 

표지석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벽돌과 철제 빔들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이 도열한 너머로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설 당시 시조시인 이은상이 지었다는 탑문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기념탑 뒤로는 그날의 희생자들이 아직 눈 덮인 무덤 속에 잠들어 있었다. ​

 

무덤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가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 수백 장이 봉안소 내부를 도배하고, 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학생들이 그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올라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김주열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열여섯 살의 민주열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에는 빛바랜 흑백사진 안에서 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학생들이 여전히 웃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그때는 데모가 대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아니, 4·19혁명은 고등학생들이 시작하고 이끌었다. 4·19의 마중물이 되었던 대구 2·28의거는 경북고와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학생들이 주도했다. 대학생들이 최초로 시위에 나선 것은 4월 4일의 일이었다. 고등학생도 중학생도,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를 향해 발포된 총알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고, 희생자들 중에는 어린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독재를 넘어 세계 민주주의의 성지로

 

흑백사진들을 뒤로하고 잔디광장을 지나면 ‘자유의 투사’라는 제목을 단 거대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총을 든 경찰들이,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맨주먹 뒤로 학생과 시민들이 맞서고 있다. ‘자유의 투사’라는 청동상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총을 든 저들보다 맨주먹으로 맞선 우리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 지금은 우리가 피를 흘릴지라도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자유의 투사’ 조형물. 한쪽에는 총을 든 경찰들이, 다른 한쪽에는 거대한 맨주먹 뒤로 학생과 시민들이 맞서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자유의 투사’에서 연못을 지나면 4·19혁명 기념관이 보인다. “4·19혁명의 배경과 내용 및 역사적 의의를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다”는 기념관에서는 당시 역사적 상황을 여러 자료를 동원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 중 낡은 선거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에 리승만 박사를’이란 문구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다. 그 위로는 처음 보는 선거 구호가 적혀 있었다. “나라 위한 80평생 합심하여 또 모시자.” ​

 

포스터에는 3.15부정선거의 주인공(?)인 이기붕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그 아래 달아 놓은 표어가 눈에 익었다. “트집 마라 건설이다 – 자유당”. 십여 년 전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고 싶다던 정부의 대통령도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다행히 우리의 민주주의는 “트집 마라 건설이다”를 지나, 국정농단과 탄핵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코로나19 앞에서 무력해진 유럽 대신 우리가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

 

4·19혁명 기념관에 전시된 3·15부정선거 당시 이승만, 이기붕의 선거 포스터. 사진=구완회 제공

 

4·19혁명 기념관 내부 전시물. 기념관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당분간 문을 닫지만 유영봉안소는 둘러볼 수 있다. 4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기념관 앞에서 ‘제60주년 4·19혁명 기념 특별 사진전’을 연다. 사진=구완회 제공

 

아쉽게도 4·19혁명 기념관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당분간 문을 닫는다. 대신 흑백사진이 가득한 유영봉안소는 둘러볼 수 있다. 4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기념관 앞에서 ‘제60주년 4·19혁명 기념 특별 사진전’을 하고 있다니 놓치지 마시길. ​

 

<여행메모>


국립4·19민주묘지 

△위치: 서울시 강북구 4.19로 8길 17

△문의: 02-996-0419

△관람시간: 06:00~18: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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