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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미술관에 남아있는 대한민국 근대사, 서울시립미술관

1895년 한성재판소로 지어 대법원으로도 사용…고딕풍 유지한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2021.04.13(Tue) 12:31:29

[비즈한국] 1928년 처음 문을 열고 70년 가까이 법원 건물이었다. 그 전에도 한 30년 재판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니, 이 자리 법원의 역사는 100년이 되는 셈이다. 몇 년에 걸친 리모델링 후에 미술관으로 손님을 맞이한 지 이제 십수 년.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여전히 그 옛날 법원의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오랫동안 자리했던 법원의 근세 고딕풍을 유지해 여전히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페이스북

 

#미술관에서 식민지 법원의 흔적 찾기

 

첫눈에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십여 년 전 서울 서소문 근처 직장에 다니던 시절, 길 하나 건너에 미술관이 있다고 해서 점심 먹고 잠시 들렀을 때, 화강암 아치 정문에 갈색 타일로 마감한 직사각형 파사드가 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어느 서양 도시의 시청사 같은 느낌. 가만, 그러고 보니 옛 서울시청 건물을 닮은 것 같은데, 정문과 창문의 아치 몇 개를 빼고는 딱딱한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모양이 좀 더 위압적인 느낌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정면은 1928년 문을 연 경성재판소의 엄숙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정면을 제외하고는 몽땅 새롭게 짓다시피 했지만,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근세 고딕풍’은 여전히 유지했다. 고딕풍이지만 뾰족한 첨탑 대신 납작하고 곧은 지붕 아래 반원형 아치를 두어 장중한 느낌을 더했다. 건물의 평면은 일(日) 자인데 중앙계단과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 두 개를 두어 좌우대칭을 이루었단다. 엄정한 판결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으로 어울리는 모양새다. 지금은 외벽을 가득 메운 발랄한 전시회 현수막이 장중한 정면과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한성재판소에서 경성재판소, 대법원, 그리고 시립미술관으로

 

이 자리에 재판소가 처음 세워진 것은 1895년.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인 한성재판소가 이곳에 문을 열었다. 한성재판소는 이름처럼 한성(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판했다. 이와 더불어 지금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평리원도 같은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는 한성재판부를 비롯한 지방법원에서 올라온 상소심을 재판하였다.

 

중앙계단과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 두 개를 두어 좌우대칭을 이루었다. 서울시립미술관 내부. 사진=구완회 제공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재판소는 ‘까막소’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글줄깨나 읽은 청년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 그래도 조선 시대의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스타일이 아니라 증거와 법률에 근거해 형량을 정하는 근대 사법제도는 분명 진일보한 측면도 있었다. 이런 근대 사법제도가 계속 우리 손으로 발전해나갔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1907년 일제에 의해 평리원은 대심원으로 개편되었고, 한성재판소는 경성지방재판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1928년 경성재판소 건물을 세우면서 지방법원뿐 아니라 고등법원과 복심법원(일제 강점기에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 위치한 재판소)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 건물을 이어받아 사용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기면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이불의 시작, 천경자의 대표작 상설전시

 

옛 아치 문을 통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정면을 제외한 건물 전체를 완전히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법원에서 첨단의 문화 공간으로, 일종의 타임슬립을 하는 느낌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이불의 초기 10년을 살펴보는 ‘이불-시작’ 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은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초청 전시회와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지금은 세계 현대미술계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 이불의 처음 10년 동안의 작품과 퍼포먼스를 살펴보는 ‘이불-시작’ 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이불이 기존의 조각 전통을 탈피하기 위해 제시한 ‘소프트 조각’부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퍼포먼스 영상, 기록 사진과 미공개 드로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에게 ‘현대 예술의 맛’을 보여주었다면, 2층의 천경자 작가 상설전시관으로 이동해 좀더 전통적인 회화 작품을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해방 후 한국화단에서 독특한 작품세계로 일가를 이룬 천경자 화백은 대표작들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작품들은 이곳에서 1년 365일 동안 전시 중이다. 

 

2층의 천경자 작가 상설전시관에서는 천경자 화백이 기증한 대표작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여행메모> 


서울시립미술관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문의: 02-2124-8800

△이용시간: 10:00~20:00, 월요일 휴관 (토, 일, 공휴일은 3~10월 10:00~19:00, 11~2월 10:00~18:00)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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