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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정조의 꿈, 정약용의 학문, 수원화성

왕조국가 이상향 꿈꾸던 정조, 급사로 뜻 이루지 못해…정약용, 중국·서양 건축기술 활용

2021.03.23(Tue) 18:18:12

[비즈한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의 백미다. 서울 성곽이 산을 따라 일부만 남은데 반해, 화성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은 것이 장점이다. 유네스코는 화성이 18세기 조선 사회의 번영과 변화, 기술 발달을 보여주는 새로운 양식의 성곽이라는 점, 성벽과 4대문 등이 잘 보존되었다는 점, 축조 당시의 특성이 잘 남았다는 점 등을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유로 꼽았다. 

 

화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남쪽의 팔달문은 반달 모양의 옹성이 특히 아름답다. 사진=구완회 제공


화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남쪽의 팔달문은 반달 모양의 옹성이 특히 아름답다.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서장대는 화성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을 자랑하고, 화서문 옆 서북공심돈은 성곽과 전축 및 누각 등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축조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조가 화성을 쌓은 까닭

 

수원에 화성을 지은 것은 정조였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뒤 자주 드나들다 성까지 지은 것이다. 명목상 효심으로 지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마치 프랑스의 루이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은 것처럼, 정조는 자신이 꿈꾸는 도시를 화성으로 완성했다. 

 

정조는 화성을 짓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화성을 쌓은 것은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을 성취하는 날이 올 것이다.”

 

화성에서 정조의 흔적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은 그가 머물던 행궁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어떤 학자들은 정조가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음, 상왕으로서 화성에 거주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자신이 키운 친위부대인 장용영과 함께 순조의 뒤를 지키면서, 자신이 꿈꾸던 왕조국가의 이상향을 이루려 했다는 것이다. 전국의 물산을 화성으로 모아 상업 중심지로 키우려고도 했단다. 

 

하지만 이는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종기가 덧난 지 며칠 만에 정조가 죽자 독살설이 나왔다. 정조와 대립했던 노론 세력이 어의를 사주해 임금을 죽였다는 것이다. 21세기에 정조가 노론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들이 발견되면서 독살설은 근거를 잃었다.

 

화성에서 정조의 흔적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은 그가 머물던 행궁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보기 위해 화성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묵었다. 때로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와 함께였다. 정조는 화성 행성의 낙남헌에서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 복원되어 있는 행궁은 건립 당시보다 축소된 모양이다. 원래는 훨씬 크고 아름다웠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낙남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훼손되고 말았다. 다행히 앞으로 복원이 계속될 예정이다. 

 

#정약용의 실학이 빛을 발하다

 

화성을 설계한 인물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이다. 31세의 젊은 관리 정약용은 정조가 능행 때 이용한 배다리를 만들어 실력을 입증했다. 화성 설계를 맡은 정약용은 실학자 유형원이 주장한 축성의 필요성과 이론을 받아들여 화성을 설계했다. 또한 조선과 중국의 건축기술은 물론, 서양의 과학기술까지 참고했다.

 

화성과 이웃한 수원화성박물관. 사진=구완회 제공


여기에는 정조의 도움이 컸다. 정조는 청으로부터 5000여 권의 ‘고금도서집성’을 들여온 뒤, 그중 스위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 테렌츠 창이 서양의 과학기술을 처음 중국에 소개한 ‘기기도설’을 직접 읽고 정약용에게 소개했다. 덕분에 정약용은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어 화성 축조에 이용할 수 있었다.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의 복원품. 사진=구완회 제공

  

수원화성박물관 실내 전시실로 들어가면 화성의 축조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한국전쟁으로 훼손된 화성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수원화성의궤. 사진=구완회 제공


화성과 이웃한 수원화성박물관 마당에는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와 녹로의 복원품이 있다. 실내 전시실로 들어가면 화성의 축조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훼손된 화성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수원화성의궤가 눈길을 끈다. 이 책에는 당시 수원성의 모습뿐 아니라 거중기와 녹로 같은 건축 장비까지 상세히 실려 있다. 

 

<여행메모>


수원화성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화성행궁)

문의: 031-228-4480(화성행궁 안내소)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수원화성박물관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21

문의: 031-228-4242

이용시간: 09:00~18:00, 매월 첫째 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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