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는 3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전사적인 노사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에 나섰다. KAI는 전·현직 임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노사 긴장이 고조된 상황인데, 쟁의행위 관련 분쟁 대응 전략을 고도화하고 기존 하도급 구조 내 리스크를 선제 방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원·하청 ‘사용자성’ 리스크 전면 점검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AI는 내달 중 노사 분쟁 발생 시 책임 판단과 대응 절차 등을 정비하기 위한 용역을 전문 업체에 맡길 예정이다. KAI는 지난달 29일 ‘노란봉투법 대응 컨설팅 용역업체 선정’이라는 이름으로 입찰공고를 냈다. 오는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시행에 앞서 법적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고 실질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해당 컨설팅은 4월 중순까지 한 달여간 진행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회사가 법적으로 사내·외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로 인정되는지를 점검하고 업무 지휘·통제 구조 개선안을 마련하는 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사내하도급, 파견, 위탁 등 계약 전반에 대한 현황 파악과 계약별 법적 성격 및 실질적인 지배력 진단 등이 포함된다. 제안서에는 ‘불법파견 리스크 점검’도 과업 중 하나로 명시됐다.
항공우주 분야는 산업 특성상 하도급 비중이 높아 사용자성 판단 기준 변화에 따른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여러 협력업체 인력이 한 공정에서 함께 일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어서다. KAI는 이번 컨설팅을 통해 협력업체 선정, 평가, 계약 해지 프로세스의 법적 적정성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이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고,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다. 법이 시행되면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에는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돼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되는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KAI 노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법 시행에 대비한 내부 검토로 보고 있다”며 “노사 간 개별 현안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내부 갈등 여전…분쟁 대비 체계 구축
이번 용역은 KAI 내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갈등 국면과도 맞물려 주목된다. KAI는 대형 디지털 전환 사업인 ‘스마트플랫폼’ 사업 중단 책임을 물어 협력업체와 일부 전·현직 임직원을 상대로 법적 공방을 벌여왔다. 스마트플랫폼 사업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안현호 전 사장 체제에서 추진되다가 윤석열 정부 시기 강구영 전 사장 체제에서 전면 중단됐다.
KAI는 미지급 대금을 요구하는 협력업체를 상대로 379억 원 규모의 부당이득 반환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지난해 9월 1심에서 양측의 청구가 모두 기각돼 현재 항소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사 관계 역시 소송을 둘러싼 감정의 골이 깊다. 회사 측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리·감독 책임이 있었다는 이유로 일부 임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민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회사가 보낸 내용증명에는 379억 원대 손해 규모가 거론됐으나, 법원에 낸 소장에는 청구액이 5억 원 규모로 축소됐다.
예민한 문제인 만큼 쟁의행위 대응과 손해배상 입증 체계 구축도 주요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단순히 법령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 상황에서 손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구체적인 매뉴얼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가령 파업 등으로 생산이 멈췄을 때 얼마나 손해가 발생했는지 계산하는 기준을 만들고, 그 손해가 누구의 어떤 행위 때문에 생겼는지 입증할 수 있도록 증거를 확보하는 절차를 정리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아울러 파업 시 시설관리권 행사 범위와 대체근로 투입이 가능한 법적 경계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도 병행된다.
사용자 범위 확대 가능성과 맞물려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비한 가이드라인도 정비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교섭 진행 방식 등 세부적인 대응 전략이 수립될 예정이다. 예상되는 다양한 갈등 시나리오별로 사측이 취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미리 마련해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대응, 손해배상 입증 체계까지 포괄하는 컨설팅은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달라질 수 있는 분쟁 구조에 대비한 사전 정비 성격이 짙다. 특히 사용자 범위 확대와 손해배상 책임 판단 구조 변화가 기업의 노사 대응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 기준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다만 KAI 측은 확대 해석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KAI 관계자는 “법 시행에 따른 영향 분석과 내부 점검 차원에서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는 것”이라며 “통상적인 사전 준비 절차”라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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