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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742번 시내버스를 아십니까?"

노선 연장되면서 4~5시간 운행·화장실도 못가…안기효 위원장 "절차상 하자, 원점 재논의 해야"

2021.05.03(Mon) 17:06:20

[비즈한국] “도로에 한번 나가면 5시간이 넘게 운전합니다. 화장실 이용과 같은 기본권은 지켜지나요? 못 배운 운전기사라도 사람답게 일하고 싶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한 시내버스 기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기사는 742번(옛 751번) 버스 기사로 추정된다. 지난 1월부터 742번 버스 운행거리가 10.6km 늘어났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출발하는 이 버스는 종점이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에서 서초구 교대역으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기사들의 정신적·신체적 피로는 극에 달했다.

 

한번 운행에 나서면 길 위에 머무르는 시간만 최소 4~5시간.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운행 중간에 화장실을 가면 자리를 이탈했다는 승객들의 민원이 접수된다. 종점에서도 충분히 쉬지 못하고 화장실만 갔다 바로 돌아온다. 배차 간격이 늘어날까 봐서다. 현재 742번 버스 30대를 기사 80여 명이 운행 중인데, 기사들 사이에서 ‘기피 버스’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지난 1월부터 742번 버스 운행거리가 10.6km 늘어났다. 서울 은평구 선진운수 차고지에 주차된 742번 버스. 기사들의 정신적·신체적 피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김명선 기자


#스페어 기사들마저 742번 버스 기피

 

“‘스페어(spare·예비용) 기사’도 742번에 배치되면 타기 싫다고 하니까요.” 3일 오전 만난 안기효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선진운수지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버스 기사에는 고정 기사와 스페어 기사가 있다. 고정 기사는 전담 차량과 노선을 가진다. 스페어 기사는 정해진 노선과 차량이 없는 ‘수습 기사’다. 고정 기사가 쉬는 날 혹은 퇴직했을 때 스페어 기사가 버스를 운행한다. 일당을 받는 스페어 기사 입장에선 버스 운행 자체가 이득이다.

 

742번 버스 고정 기사의 경우 오후에 연차를 내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오후에는 교통량이 많아 버스 운행 시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 이런 날 742번 버스를 운행하게 된 스페어 기사들은 불만이 상당하다. “왜 자꾸 742번 버스만 배치되느냐”고 하면서다.

 

742번 버스가 기사들 사이에서 ‘기피 버스’로 찍히고 있다. 기존에도 운행 거리가 47.3km에 달하는 장거리 노선이 지난 1월 15일부터 57.9km로 늘어나면서다. 선진운수가 책정한 1회 운행 시간은 최소 253분, 4시간이 훌쩍 넘는다. 안기효 위원장은 “시행한 지 4개월이 됐다. 지금까지는 위태롭게 잘 버텨왔을지 몰라도 앞으로가 더 문제다. 사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기효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선진운수지부 위원장. 사진=김명선 기자


#서리풀터널 거치는 버스 필요했다

 

왜 갑자기 742번 버스의 운행 거리가 늘어난 걸까. 이야기는 202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선진운수의 752번 버스 노선을 조정한다고 통보했다. 기존 노선이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동작구 노량진동이었다면, 9월 22일부터는 종점이 교대역으로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종점부 권역이 동작구에서 서초구로 바뀌면서 노선번호도 752번에서 742번으로 변경된다고 9월 2일 통보했다.

 

당시 선진운수 버스 기사들 사이에서는 큰 반발은 없었다고 한다. 기존 일부 노선을 없애고 2019년 개통된 ‘서리풀터널’을 거치도록 변경된 것이어서 운행 시간에 큰 차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752번 노선 변경안은 없던 일이 된다. 노선이 변경돼 강북 방면으로 가는 길이 사라졌다는 흑석동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됐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는 9월 10일 “노선 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다시금 논란이 된 건 지난해 10월. 서울시는 752번 버스 노선 변경 대신 ‘751번 버스 노선 연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10월 8일 서울시는 △단축 구간 없이 기존 종점이던 숭실대에서 교대역까지 구간을 연장하는 방안 △동작구 관내 일부 노선 단축 후 교대역까지 연장하는 방안 △강북 지역 노선을 일부 단축하고 연장하는 방안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선진운수는 강북 지역 노선을 단축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봤다. 신촌 기차역 굴다리 부근이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구간이라 부담이 적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12월 10일 선진운수는 751번 버스를 노선 단축 없이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운행 사원의 근무시간이 증가하고 충분한 휴식 시간이 부여되지 못한다. 또 배차 간격이 기존 대비 2~3분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시민 불편이 초래될 것”이라는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

 

​12월 10일 선진운수는 751번 버스를 노선 단축 없이 연장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검토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채택된 건 단축 구간 없이 노선을 연장하는 안이었다.​ 사진=김명선 기자


그러나 채택된 건 단축 구간 없이 노선을 연장하는 안이었다. 서울시는 12월 22일 “시내버스 751번이 서리풀터널을 경유해 동작구와 서초·교대 지역을 연계하도록 변경된다”고 통보했다. 그렇게 742번으로 번호를 바꾼, 운행 거리가 10km가 늘어난 751번 버스가 지난 1월 15일부터 운행됐다.

 

시행 초기부터 반발이 적잖았지만 서울시 통보를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게 선진운수 이야기다. 서울시는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가 노선 결정 권한을 가진다. 지자체가 버스업체 운영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어찌 됐든 갑과 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명령 위반으로 행정조치 등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점에서 기사 교체하는 방안은 비현실적, 원점 재논의 필요”

 

서울시는 동작구와 서초구를 연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일부 동작구민들이 서리풀터널을 통과하는 버스가 없다며 편의성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대신 다른 노선의 버스 3대를 이 노선으로 투입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운전기사의 화장실을 확보하기 위한 개선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선진운수 측은 노선 연장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보고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위를 벌이는 버스 기사들. 사진=안기효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선진운수지부 위원장 제공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선진운수 측 이야기다. 안기효 위원장은 “버스를 투입해도 한 번에 4~5시간을 운행해야 하는 점은 같다. 또 다른 노선의 버스를 투입하면 그 노선 주민들은 어떡할 거냐. 버스가 줄어들어 배차 간격을 좁히려는 기사들이 늘어나다 보면 사고 위험도 크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종점에서 기사를 교체하는 게 대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742번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들은 대다수가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는데, 교대를 위해 종점인 서초구까지 가는 게 더 비효율적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서초구로 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안 위원장은 “버스마다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을 정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다. 지금은 따로 정해진 시간이 없어 기사들이 배차 간격을 줄이려 종점에 가서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출발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사들은 근본적으로 노선 연장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보고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 위원장은 “장거리 노선을 또 연장한 ‘특이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채택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기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안전속도 5030정책 등을 필두로 시민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흐름에 역행하는 꼴이다. 단체행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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