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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카메라를 벗어난 배우가 보는 시선, '언프레임드'

MZ 배우들의 연출 도전 프로젝트…외연 확장 꿈꾸는 배우 출신 감독 더 많아지길

2021.12.17(Fri) 14:42:36

[비즈한국] 좋아하는 배우가 넷이나 모였다.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섰던 이들이 이번에는 카메라 밖에 섰다. 왓챠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에서 각자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해 감독으로 나선 것. 배우들의 연출 도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배우 조은지가 영화 ‘장르만 로맨스’로 연출 데뷔를 하며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독특한 색깔을 자랑하는 젊은 배우 넷의 작품을 모아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 ‘언프레임드’ 같은 시도는 처음 보는 듯하다.

 

네 명의 배우가 연출한 네 편의 단편 영화를 옴니버스로 엮은 왓챠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다양한 영화 라인업이 강점인 왓챠에 잘 어울리는 프로젝트다. 사진=왓챠 제공

 

‘언프레임드’는 박정민의 ‘반장선거’, 손석구의 ‘재방송’, 최희서의 ‘반디’, 이제훈의 ‘블루 해피니스’로 구성된다. 포문을 여는 ‘반장선거’는 ‘초등학생 누아르’란 수식어가 붙여질 만큼 어른의 세계처럼 치열한 5학년 2반 반장선거 풍경을 그려낸 작품. 초등학생 반장선거에 누아르가 웬 말인가 싶겠지만,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이가 박정민이란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두컴컴한 창고 같은 문을 사이에 두고 소년 인호(김담호)에게 누군가 “인호야, 너 반장할래?”라는 대사를 건네며 극이 시작된다. 곧바로 이어지는 치열한 선거 유세의 모습이 리드미컬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펼쳐지는데, 이미 이때부터 확 느껴진다. 박정민이 직접 래퍼 마미손을 섭외해 음악을 부탁했다는데, 절묘한 수가 아닐 수 없다(‘우리 집에 왜 왔니’라니). ‘반장선거’는 24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뚜렷한 서사와 반전, 재미와 씁쓸함을 고루 담아낸 재기 발랄한 작품으로, 영민한 배우 박정민이 영민한 감독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친구가 없는 조용한 소년 정인호가 모종의 이유로 반장선거에 나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린 ‘반장선거’. 래퍼 마미손의 음악이 곁들어진 센스 있는 연출이 흥을 돋운다. 사진=왓챠 제공

 

손석구의 ‘재방송’은 조금 의외다. 배우 손석구는 선역과 악역을 오가면서도 뭔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인물인데, 감독 손석구의 시선은 굉장히 여운이 있고 따스한 느낌이다. 결혼식장에 동행하게 된 무명배우 조카 수인(임성재)과 나이 든 이모(변중희)의 하루를 그린 로드무비로, 앨범 속에서 꺼낸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따스함과 우리집 거실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한 듯한 리얼함이 잘 녹아 있다. 아들과 엄마의 수위를 넘나드는 통화 신은 웃음 포인트.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엄마도 아들도 아니고 이모와 조카가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동행하는 반나절 간의 로드무비 ‘재방송’.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손석구의 따스한 감정이 어우러진다. 사진=왓챠 제공

 

최희서의 ‘반디’는 다른 작품과 다르게 최희서가 카메라 밖의 지휘는 물론 카메라 안에서도 연기를 선보였다. 싱글맘 소영(최희서)이 아홉 살 딸 반디(박소이)에게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알려주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언프레임드’ 프로젝트 전부터 싱글맘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 시나리오로 쓰곤 했다는 최희서는 이 이야기를 연출하기로 결심하며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호흡을 맞췄던 아역배우 박소이를 떠올렸다고. ‘반디’는 서사보다는 장면에 담긴 감정에 힘을 준 작품인데, 박소이가 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 눈길을 끈다.

 

딸에게 밝히지 못한 비밀을 말해야 하는 엄마가 딸과 보내는 하루를 보여준 ‘반디’. 연출을 맡은 최희서가 엄마를 연기했다. 아역 배우 박소이의 세심한 연기가 돋보인다. 사진=왓챠 제공

 

마지막 작품인 이제훈의 ‘블루 해피니스’는 배우 라인업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안한 이 시대 청춘의 현재를 소재로 해, 주인공 찬영으로 흔들리는 청춘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 정해인이 출연한다. 찬영과 우연히 조우하는 동창 승민 역에 이동휘가 등장해 특유의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이고, 탕준상과 표예진도 작은 롤이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제훈은 ‘블루 해피니스’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을 뿐 아니라 ‘언프레임드’를 제작한 제작사 하드컷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감독 양경모, 제작자 김유경과 공동 창립). 배우들이 연출하는 작품을 해보자는,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을 완성시킨 공로가 그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훈이 연출한 ‘블루 해피니스’에는 흔들리는 청춘의 눈빛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배우 정해인이 주인공 찬영을 맡아 이 시대 청춘들과 감응한다.

 

앞서 말했듯 배우들의 연출 도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멀리 바다 건너에는 ‘배우 출신 감독’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옹이 있고, 그 외에도 멜 깁슨, 조디 포스터, 벤 애플렉 등 많은 이들이 연기와 연출 두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국내에도 방은진 감독이 꾸준히 영화를 만든 가운데 유지태와 하정우가 여러 편을, 김윤석과 정진영, 문소리 등이 연출작을 선보인 바 있다. 이정재와 정우성 등 영화 연출을 준비 중인 배우도 숱하다. 물론 아직까지 확실한 성과를 보인 이는 없다(방은진 감독은 흥행이 조금 아쉽다). 올해 연말에 ‘언프레임드’가 공개된 것을 비롯, 배우 출신 감독의 작품이 두 편(조은지의 ‘장르만 로맨스’와 유태오의 ‘로그 인 벨지움’)이나 개봉한 것을 보면 코로나라는 재앙에 굴하지 않고, 외연의 확장을 꿈꾸는 배우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유태오는 코로나로 유럽의 호텔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직접 촬영했을 정도.

 

‘블루 해피니스’는 배우진이 화려한 편. ‘무브 투 헤븐’ ‘라켓소년단’으로 깊은 연기를 보여준 탕준상이 찬영에게 나이답지 않은 쓴소리를 던지는 학생으로, 뻔지르르한 연기에 최적인 이동휘가 찬영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세계로 이끄는 동창으로 나온다. 사진=왓챠 제공

 

도전하는 사람이 많다 보면 결국 화려하게 꽃피우는 사람도 생기고 과실을 수확하는 자도 생길 거다. 그때까지 배우들의 다양한 도전이, ‘언프레임드’ 같은 시도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거대한 자본과 잘 갖춰 놓은 시스템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건 한다는 패기를 ‘언프레임드’는 잘 보여주고 있거든. ‘언프레임드’는 왓챠 오리지널로 독점 공개 중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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