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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창조의 기둥'이 6000년 전에 사라졌다고?

2007년 등장한 '파괴썰'과 달리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근황 확인

2022.10.31(Mon) 09:55:31

[비즈한국] 1995년 4월 1일 허블 우주 망원경은 밤하늘의 한 곳을 바라봤다. 허블의 시선은 뱀자리 방향으로 약 7000광년 거리에 놓인 거대한 성운을 향했다. 허블 망원경의 광각 행성 카메라 2(WFPC2, Wield Field and Planetary Camera 2)는 독수리성운의 한쪽 구석을 포착했다. 그곳엔 거대한 손가락 세 개가 솟은 듯한 형체가 있었다. (옛날 사람이라면 호미곶의 손바닥 조형물이, 요즘 사람이라면 타노스의 인피니티 건틀릿이 떠오를 것이다.) 높은 밀도로 먼지가 반죽되며 그 속에서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세계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다. 

 

1995년 허블이 WFPC2로 1600×1600 픽셀에 담은 창조의 기둥 사진은 허블 망원경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거대한 사진은 일반 디지털 카메라로 치면 무려 2.5메가픽셀에 달한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처음 포착한 창조의 기둥. 사진=NASA, Jeff Hester, and Paul Scowen(Arizona State University)


그로부터 27년 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다시 허블이 향했던 곳을 바라봤다. 짙은 먼지 구름에 가로막혀 그 속을 꿰뚫어보기 어려웠던 초기 허블의 사진과 달리, 제임스 웹은 근적외선 관측을 통해 먼지 구름 속에서 태어나는 어린 별들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담아냈다. 

 

그런데 창조의 기둥 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창조의 기둥이 사실 오래전에 파괴되어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먼 거리에서 빛이 날아오다 보니 우리가 여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재밌는 이야기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창조의 기둥이 수천 년 전에 사라지고 없다는 오래된 이야기는 근거가 부족하다.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최근의 결과를 소개한다.

 

창조의 기둥이 이미 사라지고 없을 거란 루머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스피처 우주 망원경을 통해 독수리성운 속 적외선 빛의 분포를 관측했다. 그리고 약 24마이크로미터 파장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2009년 일부 천문학자들은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초신성 폭발의 흔적이라 생각했다. 폭발로 인해 주변 먼지와 원자들이 이온으로 쪼개지는 광해리(또는 광분해, photo-dissociation) 현상이 일어나면서 방출된 빛의 흔적이라고 추정했다. 

 

적외선을 방출하며 달궈진 먼지 구름의 온도와 에너지 분포를 보면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언제쯤 먼지 구름이 달궈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0~9000년 전 무거운 별이 초신성으로 폭발했고, 독수리성운이 둥글게 사방으로 불려나갔다고 추정했다. 

 

스피처 우주 망원경을 통해 적외선 영역으로 관측한 독수리성운. 사진=NASA/JPL-Caltech/N. Flagey(IAS/SSC & A. Noriega-Crespo(SSC/Caltech)

 

초신성 폭발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속도를 추정했을 때, 당시의 충격파는 2000~3000년 뒤 독수리성운 외곽 창조의 기둥까지 닿았을 거라 추정했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 이미 거센 충격파가 창조의 기둥을 휩쓸고 지나갔을 거란 뜻이다. 다만 지구에서 창조의 기둥까지 거리가 7000광년이기 때문에 우린 7000년 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창조의 기둥이 실제론 6000년 전에 이미 파괴되었지만 우리는 파괴되기 1000년 전, 즉 7000년 전의 모습을 아직 보고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1000년이 더 지나야 지구의 하늘에서도 창조의 기둥이 붕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먼지 구름 조각상 중 하나가 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상태였다니. 우주의 광막한 스케일을 느끼게 해주는 참 매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썰’은 근거가 부족하다. 이후 더 최근의 연구를 통해 반박당하고 있다.

 

초신성 폭발은 우주에서 아주 강력한 현상 중 하나다. 무거운 별이 터지면 주변 우주 공간에는 전파나 엑스선 영역에서도 아주 강한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독수리성운 속 전파와 엑스선은 일반적인 초신성 폭발 현장에서 관측되는 것에 훨씬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2015년 발사 25주년을 앞두고 허블 망원경은 2014년에 창조의 기둥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이 관측에서 ‘창조의 기둥 파괴설’을 정면 반박하는 놀라운 증거를 발견했다. 허블이 처음 창조의 기둥을 본 1995년에서 다시 바라본 2014년까지. 20년의 세월은 거대한 우주 먼지 구름의 아주 미세한 변화를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얼핏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조의 기둥은 미세하게 달라졌다. 예를 들어 가장 두꺼운 먼지 기둥의 둥근 끝 부분을 확대해보면 먼지 띠의 자리가 살짝 달라졌다. 사진 속 길게 흐르는 먼지 띠의 실제 길이는 약 1000억 km, 지구-태양 사이 거리의 약 1000배나 된다. 이 실제 스케일과 20년이란 시간을 적용하면 이 기간 동안 먼지 띠가 흘러간 속도를 유추할 수 있다. 대략 초속 200km다. 이는 강력한 초신성의 충격파로 인해 순식간에 먼지 기둥이 불려나갔다고 보기에는 턱없이 느린 속도다. 그저 먼지 기둥 속 새롭게 태어난 별의 항성풍으로 인해 먼지 띠가 천천히 밀려나가는 정도에 불과하다. (초신성 폭발 순간 방출되는 물질의 분출 속도는 초속 5000~1만 km 정도인 반면, 일반적인 별의 항성풍과 물질 분출 속도는 초속 100~1000km 정도다.) 

 

1995년과 2014년에 관측한 창조의 기둥 속 먼지 띠의 위치를 비교한 사진. 사진=NASA, ESA, and the Hubble Heritage Team(STScI/AURA)

 

특히 허블 망원경에 적외선 관측이 가능한 새로운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하면서, 1995년 초창기 관측에선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적외선 관측 덕분에 이제 허블도 두꺼운 먼지 기둥 속에서 갓 태어나는 뜨겁고 어린 별들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길게 솟은 먼지 기둥의 둥근 끝 부분에서 유독 푸른 빛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먼지 기둥 끝에서 갓 태어난 어린 별의 항성풍이 먼지 기둥을 사방으로 천천히 불어내고 있는 장면이다. 지상의 초거대 망원경 VLT를 통해 적외선으로 관측한 사진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초신성 폭발 충격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최근 관측에 따르면 창조의 기둥을 파괴시켰다던 강력한 초신성 폭발은 없었다.

 

또 다른 최근 연구 역시 이를 지지한다. 넓은 면적에 걸쳐 세밀한 분광 관측을 할 수 있는 IFU(Integral Field Unit) 관측을 통해 창조의 기둥 속 이온화된 가스 구름을 관측했다. 지구 쪽으로 다가올 때는 빛의 파장이 짧아지고 지구에서 먼 쪽으로 이동할 때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도플러 효과를 활용해 성운 속 먼지 구름들이 얼마나 빠르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함께 활용해 관측된 가스 먼지들의 흐름 속도를 가장 잘 재현하는 상황을 찾아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창조의 기둥은 100만 년에 겨우 태양 질량 70배 정도꼴로 먼지 기둥이 불려 날아가며 아주 느린 질량 손실만 꾸준히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창조의 기둥이 완벽히 파괴되기까지 앞으로도 약 300만 년 가까운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봤을 때 창조의 기둥이 이미 파괴되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철 지난 썰이다. 다행히 이 멋진 먼지 기둥은 아직 잘 살아 있고 앞으로 수백만 년에 걸쳐 아주 느리게 흩어져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창조의 기둥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번 제임스 웹 이미지를 통해서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웹은 시야를 가로막는 우리 은하 원반의 먼지 구름과 창조의 기둥 자체의 두꺼운 먼지 기둥을 모두 꿰뚫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붉은 진실’을 포착했다. 

 

둥글게 뭉쳐 있는 거대한 먼지 기둥 끝 부분을 잘 보면 유독 붉은 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그 안에서 이제 막 탄생하며 밝게 빛나는 어린 별의 흔적이다. 어린 별이 방출하는 자외선으로 인해 주변을 감싼 두꺼운 먼지 구름이 뜨겁게 달궈지면, 그 먼지 구름은 다시 적외선 영역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밝게 빛나는 불빛을 주먹으로 꽉 쥐어도 손가락 틈과 피부로 붉은 빛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특히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약간 꺾인 듯한 모습의 먼지 기둥 끝 부분을 보면, 그 안에 숨겨진 강렬한 별빛으로 인해 이미 먼지 기둥 상당 부분이 서서히 불려나간 상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웹의 예리한 눈으로 이제 더 이상 거대한 우주 먼지 기둥은 자신의 비밀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제임스 웹으로 새롭게 포착한 아름다운 창조의 기둥. 사진=NASA, ESA, CSA, STScI; Joseph DePasquale(STScI), Anton M. Koekemoer(STScI), Alyssa Pagan(STScI).

 

물론 수백만 년 이상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창조의 기둥은 지금처럼 높이 솟은 위엄을 뽐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태어난 뜨겁고 어린 별들의 별빛으로 인해 완벽하게 흩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6000년도 더 전에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창조의 기둥의 붕괴를 이야기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머나먼 거리로 인해 지금 우리가 보는 창조의 기둥이 약 7000년 전의 모습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은 지구의 밤하늘에서 이미 파괴되고 없어진 우주 조각상의 잔상만을 보고 있는 건 아니다. 7000년 전의 과거의 모습을 뒤늦게 보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독수리성운 속에선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아름답게 창조의 기둥이 솟아 있을 것이다. 물론 살짝 더 흐트러져 있겠지만…. 

 

만약 누군가 창조의 기둥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면, 15년 전 옛날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 그에게 더 최근의 소식으로 위로해주길 바란다. 저 멋진 우주의 조각상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참고 https://www.eaobservatory.org/jcmt/2018/06/first-observations-of-the-magnetic-field-inside-the-pillars-of-creation-results-from-the-bistro-survey/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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