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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비값 vs 기술값", 에릭슨코리아 148억 법인세 불복 소송 패소 이유

법원 "소프트웨어 거래는 상품 아닌 기술 사용료"…향후 통신장비 업계 과세 기준점 될 듯

2026.03.12(Thu) 17:36:32

[비즈한국]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하나의 제품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세금 문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비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대가가 단순 ‘상품가격’인지 아니면 고도의 ‘기술 사용료(로열티)’인지에 따라 과세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이 스웨덴 통신장비 거물 에릭슨의 한국 법인과 국세청 사이에서 벌어진 140억 원대 세금 소송에서 국세청 손을 들어줬다. 통신장비 산업에서도 장비 판매와 기술 사용의 경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재점화될 전망이다.

 

통신장비기업 에릭슨 한국 법인이 148억 원대 법인세 불복 소송에서 패소했다. 스웨덴 에릭슨 본사 전경. 사진=에릭슨파트너스코리아 제공


#“1년은 가르쳐야 능숙”…단순 상품 아닌 ‘노하우’ 집합체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나진이)는 지난달 27일 에릭슨파트너스코리아(에릭슨코리아)가 역삼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에릭슨코리아는 LG전자와의 합작법인으로 출발해 국내 통신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통신장비 회사다. LG전자와 스웨덴 에릭슨 본사가 지분 절반씩을 투자해 만든 ‘LG에릭슨’을 전신으로 한다. 이후 에릭슨이 지분율을 높이고 LG전자 지분이 낮아지면서 ‘에릭슨LG’로 사명을 바꿨다. 현재 지분은 에릭슨 본사가 75%, LG전자가 25%를 보유하고 있다.  

 

사건은 에릭슨코리아의 소프트웨어 판매 구조에서 시작됐다. 한국 법인은 스웨덴 본사(에릭슨 AB)로부터 3G·LTE·5G 네트워크 장비용 소프트웨어를 공급받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에 판매한다. 에릭슨코리아는 이를 ‘상품 구입대금’으로 규정하고 원천징수하지 않았지만, 국세청은 한국 법인이 스웨덴 법인에 지급한 소프트웨어 대가를 ‘기술 사용료’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총 148억 4208만 원의 원천징수 법인세(가산세 포함)를 부과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이 소프트웨어가 단순 판매되는 제품인지, 아니면 기술과 노하우 사용에 따른 라이선스인지였다. 에릭슨 측은 재판에서 “자사 소프트웨어는 통신장비와 함께 판매되는 표준화된 상품일 뿐”이라며 본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은 “개별 사용자에 맞춤화돼 소프트웨어 상태 그대로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된다고 보기 어렵고, 사용방법 자체가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해 관련 교육이 필요한 점, 한국 법인이 소프트웨어의 유지 및 관리, 오류시정, 업데이트 등을 책임지고 관련 기술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가진 상품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통신장비용 소프트웨어의 구조와 사용 방식에 주목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여러 기능(피처)으로 구성돼 통신사가 필요한 기능을 선택해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공급된다. 가격 역시 기능 구성에 따라 달라져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대에 이른다.

 

​2010년 설립된 에릭슨코리아는 국내 이동통신 인프라 시장에서 주요 장비 공급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MWC 2025에서 선보인 에릭슨 부스. 사진=에릭슨파트너스코리아 제공


설치와 운영 과정에도 상당한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 장비를 팔기 전 통신사 고객사와 설계협의(CDR)를 하고 제품 설명서 분량만 약 9.6GB에 달한다. 실제 장비 설치와 운영 역시 에릭슨코리아 엔지니어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릭슨코리아 직원들은 소프트웨어 운용과 기술 지원을 위해 스웨덴 본사 연구소에서 교육(OJT)을 받았고 이를 다시 국내 통신사 엔지니어들에게 전수했다. 에릭슨 소속 직원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우리 장비는 가전보다 복잡해 고객사 엔지니어를 1년은 가르쳐야 능숙해진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계약 구조 역시 단순한 제품 판매와는 차이가 있었다. 계약서에는 소프트웨어 ‘판매’가 아니라 ‘라이선스 허여(사용을 허락)’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통신사에는 비독점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사용권이 부여되는 형태였다. 소프트웨어가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의 결정체라는 점도 고려됐다. 실제로 에릭슨그룹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매출액의 14~18%(현재 환율 기준 약 5조~6조 원) 규모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재판부는 이런 요소들을 종합할 때 관련 소프트웨어 거래가 단순한 상품 수입이 아니라 기술과 노하우 사용 대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통신장비 산업 과세 기준 쟁점 부각

 

​이번 판결의 쟁점은 통신장비 산업 특유의 사업 구조와 맞닿아 있다. ​2010년 설립된 에릭슨코리아는 국내 이동통신 인프라 시장에서 주요 장비 공급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이 핵심 기술은 본사에 두고 현지 법인은 장비 공급과 기술 지원을 담당하는 사업 구조가 국내 합작 형태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통신장비가 단순한 하드웨어 제품이 아니라 네트워크 운영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능이 결합된 복합 기술 제품이라는 점에서, 장비 판매와 기술 사용이 사실상 동시에 된 것으로 해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통신장비 산업에서 하드웨어 판매와 기술 사용의 경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논의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통신 인프라 장비가 갈수록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장비 가격과 기술 사용료의 구분은 과세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릭슨코리아 측은 이번 판결과 관련된 질의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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