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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우주의 끝에서 별을 포착하다

극단적인 중력 렌즈 효과 통해 100억 광년 너머 성단과 별 관측

2022.11.28(Mon) 09:46:35

[비즈한국] 작년 크리스마스에 우주로 올라간 제임스 웹. 벌써 만 1년이 되어간다. 제임스 웹은 쉬지 않고 열심히 관측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듯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겉보기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사진에만 주목할 뿐, 까만 배경에 별과 은하가 박힌 평범해 보이는 딥필드 이미지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한다. 하지만 제임스 웹이 가장 먼저 공개한 이미지가 딥필드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딥필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열일하고 있는 제임스 웹이 보내온 새로운 딥필드 이미지 속 비밀을 소개한다.

 

최근 제임스 웹은 고래자리 방향으로 약 3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아주 작은 Wolf–Lundmark–Melotte(WLM) 왜소은하의 한 구석을 관측했다. 이 은하의 크기는 8000광년. 우리 은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은하다. 별도 적고 크기도 작은, 얼핏 보면 그저 작고 재미없는 시시한 왜소은하인 이곳을 제임스 웹은 왜 관측했을까? 

 

이 작은 은하는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와 함께 국부은하군을 떠도는 멤버 중 하나다. 보통 이렇게 덩치 큰 은하 주변을 떠도는 작은 왜소은하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주변의 다른 은하와 충돌한 흔적을 남긴다. 덩치 큰 은하에 물질을 빼앗기면서 기다란 별과 가스 흐름을 흘리기도 하고, 또 다른 주변의 작은 은하와 부딪히면서 다양한 종류의 별들이 혼합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국부은하군 우주 공간을 떠도는 왜소은하 Wolf–Lundmark–Melotte. 사진=VST/Omegacam Local Group Survey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밋밋해 보이는 WLM 은하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곳은 은하가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은하와 충돌하거나 상호작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누구와도 접촉한 적 없는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은하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은하는 주변에 흐트러진 별의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놀라운 건 은하 질량의 무려 98%가 암흑물질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암흑물질만으로 이루어진 암흑 덩어리에 별 조금이 섞인 상태라 볼 수 있다. 은하 자체가 우리 은하의 1000분의 1 질량밖에 안 되는 아주 왜소한 은하이지만, 그 작은 질량이 사실상 거의 다 암흑물질만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보통 작은 은하들은 큰 은하와 충돌하고 잡아먹히는 과정에서 암흑물질을 상당 부분 빼앗기고 잃어버린다. 그래서 암흑물질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를 통해 얼마나 많이 상호작용을 당했는지의 지표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렇게 많은 암흑물질을 품고 있다는 건 이 은하가 빚어진 이래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사실 은하들 간의 충돌은 정말 자주 일어난다. 우주에 있는 은하 대부분이 최소 한 번 이상의 충돌과 병합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충돌하고 병합하면서 원래 은하가 품고 있던 성질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충돌/병합 과정에서 한꺼번에 막대한 양의 가스 물질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서서히 죽어가던 은하에서 다시 폭발적인 별 탄생이 벌어진다. 갑자기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왕성하게 물질을 집어삼키며 다시 새롭게 깨어나기도 한다. 은하끼리의 상호작용은 충돌 전 은하가 품고 있던 원래의 특성을 덮어버리고 오염시킨다. 

 

천문학자들은 순수하게 은하가 홀로 진화할 때 어떤 식으로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지를 알고 싶지만, 우주에 있는 은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수많은 상호작용을 겪으며 뒤섞이고 오염된 결과다. 다른 은하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은 정말 순수한 외톨이 은하를 찾는 건 정말 어렵다.

 

제임스 웹으로 WML 은하의 한 구석을 크게 들여다봤다. 사진=NASA/ESA/CSA/STScI/K. McQuinn, Rutgers University/A. Pagan, STScI.


그런데 지금껏 이렇다 할 충돌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 은하에는 오래전 태어난 별들이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른 은하에게서 물질을 빼앗기거나, 외부에서 물질이 유입되며 별들이 때묻지 않았다. 수십억 년째 원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직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은하 버전의 DMZ라고 볼 수 있다. 외부의 방해 없이, 은하 속 별들의 탄생과 죽음의 순수한 과정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정말 귀한 곳이다. 은하 속 개개의 별까지 하나하나 분해해서 보여주는 제임스 웹을 통해 별들의 순수한 진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제임스 웹이 찍은 거대한 은하단 딥필드 속에도 놀라운 보물들이 숨어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은하들이 모인 거대한 은하단은 그 육중한 질량으로 주변 시공간을 휜다. 이 때문에 그 너머 머나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도 경로가 휘어져 지구로 들어온다. 중력이 렌즈처럼 빛의 경로를 휘게 하는 ‘중력 렌즈’ 효과다. 중력 렌즈를 활용하면 먼 우주의 빛이 사방으로 휘어져 다시 지구를 향해 모이면서 실제 밝기보다 더 밝아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밝기 증폭 효과를 활용하면 너무 거리가 멀어서 원래는 볼 수 없는 아주 어두운 먼 천체까지 볼 수 있다. 

 

제임스 웹이 가장 먼저 공개한 은하단 SMACS J0723의 딥필드 이미지. 사진=NASA, ESA, CSA, and STScI


제임스 웹이 찍은 딥필드 곳곳 밝은 은하들 사이에는 훨씬 먼 거리에 숨은 흐릿한 은하들의 왜곡된 허상이 섞여 있다. 그런데 여기엔 단순히 먼 배경 우주의 은하만 담긴 게 아니다. 은하보다 훨씬 작은 개개의 성단, 심지어 우주 끝자락에서 빛나는 개개의 별까지 담겼다! 

 

딥필드 이미지에 담긴 배경 은하 속 노란 점들이 은하에 살고 있는 구상성단이다.


제임스 웹이 공개한 첫 번째 딥필드의 무대가 된 은하단 SMACS J0723을 찍은 사진 속에도 다양한 배경 은하들이 중력 렌즈를 통해 그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중에는 우연한 중력 렌즈를 통해 무려 100배나 더 밝게 보이는 배경 은하가 있다. 놀라운 건 기다란 막대 모양으로 보이는 이 배경 은하 곳곳에 노란 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이 은하에 살고 있는 개개의 구상성단이다! 

 

구상성단은 100~200광년 정도의 좁은 범위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개나 되는 별들이 바글바글 모인 곳이다. 특히 구상성단에는 우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가장 나이 많은 별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구상성단의 나이는 우주의 실제 나이의 하한선이 된다. 구상성단의 나이를 정확히 파악해야 우리 우주가 최소한 몇 살인지 알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구상성단이 노란 점처럼 찍힌 이 배경 은하에게 기다란 불꽃놀이 폭죽을 의미하는 ‘스파클러(Sparkler)’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워낙 거리가 멀어서 구상성단이 통째로 작은 노란 점으로 뭉뚱그려서 보이지만, 별 진화 모델을 적용해 비교한 결과 이 구상성단이 무려 125억 년이나 됐음을 확인했다. 

 

최근엔 더욱 놀라운 발견도 이어졌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약 97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또 다른 은하단 ACT-CL J0102-4915 쪽을 관측했다. 이곳은 태양 질량의 3000조 배나 되는 아주 육중한 질량을 갖고 있는 은하단이다. 지금껏 발견된 가장 무거운 은하단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뚱땡이를 의미하는 ‘엘 고르도(El Gordo)’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육중한 질량에 걸맞게 주변 곳곳에 강력한 중력 렌즈의 허상을 보여준다. 

 

중력 렌즈 효과를 통해 포착된 먼 배경 은하 가운데 붉은 점이 보인다. 적색 거성으로 추정된다.


천문학자들은 이 허상 속에서 우연히 여러 번의 중력 렌즈가 겹쳐 벌어진 현장을 발견했다. 그 덕분에 배경 은하가 무려 4000배나 더 밝게 보였다. 그런데 중력 렌즈로 증폭된 일그러진 은하의 허상 한가운데 유독 붉게 빛나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은하는 107억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그 밝기와 색깔을 분석한 결과 이것이 심지어 성단도 아닌 단 하나의 별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표면온도 대략 3500도의 미지근한 온도로 달궈진 적색 거성이다! 별의 밝기로 비춰봤을 때 이 별은 태양보다 7~40배 사이 질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질량 추정치의 오차가 큰 편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번에 새로 발견된 이 놀라운 별에게 잉카 케추아족 말로 별을 의미하는 단어 ‘퀼러(Quyllur)’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곳이 더욱 특별한 것은 미지근한 적색 거성이어서다. 죽음을 앞두고 크게 부푼 채 미지근하게 빛나고 있는 베텔게우스와 비슷한 별이다. 사실 이번 발견 이전에도, 극단적인 중력 렌즈를 통해 우주 끝자락에서 개개의 별이 포착된 적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허블 망원경으로 발견된 이카루스와 에렌델이 있다. 이 두 별은 모두 태양보다 훨씬 크고 뜨거운 푸른 별들이었다. 사실상 우주 최초의 별, Pop III 별로 의심되는 아주 밝은 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퀼러는 전혀 다르다. 훨씬 미지근한 별이다. 뜨겁고 밝은 Pop III 별에 비해서 관측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제임스 웹은 우주 끝자락에서 눈부시게 밝게 빛나고 있는 푸른 별뿐 아니라, 훨씬 미지근하게 빛나고 있는 적색 거성까지 포착했다. 퀼러는 역사상 처음으로 100억 광년이 넘는 먼 거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적색 거성이라는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임스 웹은 우주 끝자락, 빅뱅 직후의 우주에서 벌어진 태초의 역사를 들춰내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착실히 수행해나가고 있다. 한때 오작동을 일으켜 천문학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MIRI 분광 장치의 부품 문제도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 다시 모든 부품이 잘 작동해 예정되었던 관측을 하나하나 수행해나가고 있다. 

 

제임스 웹이 보내온 멋진 관측 사진 갤러리를 구경하다보면 알록달록하고 화려하게 보정된 가스 구름 사진에 먼저 눈이 갈지 모르겠다. 그 옆 그저 까만 풍경에 작은 은하들과 별들이 빽빽하게 담긴 딥필드 사진은 얼핏 보면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심심해 보이는 풍경 속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보물들이 가득 숨어 있다. 그 안에는 중력 렌즈의 물리학적 마법과 제임스 웹의 압도적인 성능이 만나며 새겨진 130억 년 우주 탄생 순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참고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22/04/aa43307-22/aa43307-22.html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90ca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2arXiv221006514D/abstract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2arXiv220711658C/abstract

https://preview.redd.it/6pqsjq8q5o1a1.jpg?width=4244&format=pjpg&auto=webp&s=ed6682a05e75e4588e9ee6b6037bae3c0fdf7db5

https://www.sci.news/astronomy/webb-blue-supergiant-star-11157.html

https://www.sci.news/astronomy/quyllur-11357.html

https://www.sci.news/astronomy/sparkler-globular-clusters-11098.html

https://astronomynow.com/2015/09/10/dwarf-galaxy-wlm-becomes-star-forming-powerhouse/

https://www.iaa.csic.es/en/news/isolated-dwarf-galaxy-unexpectedly-affected-its-environmen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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