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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기가 죽기보다 어려웠다" MZ 직장인 10명 '직장 내 괴롭힘'을 이야기하다

여성과 10~30대, 산재 자살도 증가 추세…'어딜 가나 똑같다' 절망감에 퇴사도 어려워

2023.06.14(Wed) 11:09:30

[비즈한국] ‘일’하다 죽는 사람이 늘고 있다. 네이버 개발자로 일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30대 워킹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이 인정된 전북 농협의 30대 여성 직원 등 직장인의 자살 사건은 매일 쏟아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후에도 지장 내 괴롭힘을 줄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2020년 기준 10만 명당 24.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11.1명)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2021명 자살자 수는 1만 3352명으로 하루에 36명 이상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셈이다. 특히 여성 자살률과 10~30대 자살률이 증가했다.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발표에 따르면 여성 자살률은 2019년 15.8(10만 명당)에 비해 2021년 16.2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2017년 이후부터는 10~30대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은 익히 알려진 문제지만,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가 자살로 이어진 경우가 늘었다.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이 근로복지공단, 인사혁신처, 국방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재로 인정된 자살사망은 473명이다. 2020년 87명이었는데 2021년에는 114명으로 31% 증가했다. 용혜인 의원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신청했지만 인정되지 않은 비율이 82.3% 정도다. 이는 은폐된 자살 산재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죽음으로 내모는 범죄”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는 데 크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3월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직장인 1000명에게 1년 동안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설문을 실시했다. 응답자 가운데 18.9%가 모욕·명예훼손, 14.4%가 폭행·폭언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28%였다.

 

비즈한국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20~30대의 사회초년생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그들이 겪은 고충은 비슷했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기 어려웠어요. 하루라도 더 있었으면 그냥 뛰어내렸을 거예요”. 20대 여성 A 씨는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지난달에 직장을 그만뒀지만 지금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A 씨는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어떻게 죽을까 생각한 적도 많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 첫 직장을 그만둔 20대 여성 B 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목숨을 끊은 또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B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뉴스나 자살 뉴스를 들으면 무기력해진다.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발버둥 쳐서 다른 곳에 가도 똑같을 것 같다”고 말했다. B 씨는 ‘법률 상담’을 받았지만, 현실은 상담 매뉴얼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B 씨는 “막상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을 당하니 법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만둘 때도 가해자를 고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체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며 “퇴사 후에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종종 멍하니 있거나 울었다. 우울증도 생겼다. 아직도 후유증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래 사건 보면서 무력감…“어딜 가도 똑같다는 절망감”

 

30대 남성 C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첫 직장에서 이직한 지 3년이 지났다. ​“처음 그만둘 때는 아무런 의욕이 없었는데, 이직 후에는 만족하고 다닌다. 환경이 더 좋아져서 그런 게 아니다. 어차피 어디든 똑같으나 대충 일하자고 생각해서다. 아무리 나를 갈아 넣어도 인정받는 구조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나면 후회만 남는다”고 자조했다. 

 

앞서 A 씨는 “주변에서는 어디에라도 고발하라고 말했지만, 최대한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온 후에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같은 업계에 있는 이상 다른 회사로 옮겨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씨는 “지금은 직무를 바꿨지만, 첫 직장은 신문사였다. 상하관계가 엄격하고 퇴근은커녕 주말도 없었다. 365일 내내 일했다.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장애가 생겼다. 조금만 실수해도 욕을 퍼붓는 선배들도 많았다. 좀 괜찮은 선배는 금방 다른 데로 가버려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견디기 쉽지 않았다. 지금 있는 곳도 편하지는 않다. 컴퓨터 엑셀로 함수 계산을 하면, 부장이 와서 ‘계산기를 쓰면 어떡해. 직접 손으로 해야지’라고 핀잔을 준다. 이젠 기대 없이 회사에 다닌다”고 말했다. 

 

업무 외에 챙겨야 할 것들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영업직으로 일하는 30대 여성 D 씨는 “작년 4월 입사한 회사는 규모가 작아 소수 임원이 직원들을 좌지우지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임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일 회의실로 불려가 몇 시간 동안 폭언을 들었다. 매일 식사 장소를 정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신입 직원들이 매일 물어봐야 했는데, 오죽하면 상사별로 선호하는 식당 리스트까지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대 초반 여성 직원들은 전부 퇴사했다. 결국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 중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농담’처럼 던지는 성희롱도 예삿일이다. 방송계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E 씨는 “4년 전 국회 인턴을 했었는데, 그때 남성 보좌관(상사)이 차로 집을 데려다주면서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라고 물었다. 그 상황에서 화를 내거나 정색할 수 없어 적당히 웃으면서 넘겼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F 씨는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했는데, 남자 부장이 밥을 먹으면서 룸살롱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날 빤히 쳐다보면서 뭔지는 아느냐고 물어봤다. 불쾌했지만, 인턴이 감히 화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식의 농담과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처음에는 ‘퇴근 후 술을 먹자’는 요청이 시작이었다. 이를 몇 번 거절하니, 이후 노골적인 괴롭힘이 이어졌다. 매일 회의실로 불러 한 시간씩 폭언을 하거나 사소한 걸로 꼬투리를 잡아 망신을 주는 등 숨도 못 쉴 정도로 괴롭혔다. 의원실 직원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회 비서관인 20대 여성 G 씨는 “이전 의원실에 있을 때 ‘G 비서관, 자리에 없을 땐 리얼돌 놓고 가’, ‘제모는 해봤냐’ 등 상상도 못할 발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어깨나 허리를 만지는 보좌관도 있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국회에서 다시는 ​일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컸다. 주변에서 알아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잊고 넘어가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B 씨는 “‘야동 본 적 있냐’, 가슴을 보면서 ‘작다’는 등의 발언을 매일 하는 사람이 직속 상사였다. 그만두기도 힘들었다. 주변에서 왜 그만두냐고 물어보면 직무를 바꾼다고만 얼버무렸다. 나가는 입장에서 전부 뒤엎고 나오겠다고 결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을 그만두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살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두기보다 죽음 선택하는 이유는

 

“그만두면 되지, 죽기는 왜 죽냐”. 직장 내 괴롭힘과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뉴스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회초년생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토로한다.

 

올해 방송사에 입사한 20대 여성 H 씨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오래 하다 방송국에 입사했다. 규모가 큰 곳이지만, 생각보다 열악했다. 새로 생긴 미디어 채널 부서에 투입돼 업무량이 많다. 일만 힘들면 괜찮다. 최근 유명인을 섭외해 촬영을 진행했는데, 내 나이를 듣더니 ‘여자는 결혼해서 애 낳아야지. 지금이 꽃이다, 빨리 남자 만나서 화분에 꽃을 피워라’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때문에 촬영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를 제지하는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 한다. 힘들게 들어갔으니까 버텨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투신 사건이 일어난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I 씨는 “동기들 모두 그만두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좋은 대학 나와 취업 준비해 힘들게 들어온 곳을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 또 이미 한번 직무를 바꿨기 때문에 더더욱 그만두기가 어렵다. 주변에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부러워하는데 이런 곳을 그만두면 인생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 출범식. 비즈한국이 만난 2030 사회초년생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안전장치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는 30대 남성 J 씨는 “취업이 힘든 여건에서 퇴사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문화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다. 이 상황 자체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거다. 간신히 주어진 일을 마무리했는데, 또 다른 일이 들어오니 번아웃도 쉽게 오는 구조다. 또 취업 준비가 길어지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만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보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 같다. 동료가 자살로 떠나고 한동안 힘들었는데,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어디에서 일하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구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J 씨는 “어제만 해도 지청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뇌출혈로 돌아가셨다는 공지를 봤다. 이런 일을 상담해주는 것이 우리 일인데, 막상 우리가 문제 상황에 직면하면 호소하기가 어렵다. 본부에서는 고용노동부에 진정만 넣으면 다 해결될 거라고 홍보하지만, 그만큼 현장 직원들이 과로하고 있다. 수많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처리하지만,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한다. 직장이라는 공간이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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