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통 멜로 드라마 ‘우리영화’의 시청률이나 시청자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12부작 드라마에서 8회까지 방영했으니, 냉정히 말해 남은 4회차에서 갑자기 시청률이 급등하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영화’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낮은 시청률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멜로라는 원줄기 외에 곁가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영화’는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다음 작품을 내놓지 못한 영화감독 이제하(남궁민)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는 시한부 배우 이다음(전여빈)의 사랑 이야기다. 장르물과 가벼운 로코물이 대세인 시대에서 시한부 환자를 연기하는 시한부와 그를 사랑하는 영화감독의 정통 멜로라니.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감정은 무거운데,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당연하다. 이다음은 몇 개월 안에 죽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장르가 판타지가 아닌 이상 죽음이 확정된 시한부를 살려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될 순 없으니까.

결국 승부를 걸어야 하는 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진한 감정선인데, 이제하와 이다음이 사랑에 빠지는 감정선에 이입이 되지 않는다.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다. 거장의 아들이란 수식어의 무게와 소포모어 징크스에 얽혀 5년을 처박혀 있던 이제하가 시한부 환자의 멜로 이야기를 찍으려 하다 진짜 시한부를 주연으로 만나게 된다. 이다음이 원했다지만 도의적으로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캐스팅하는 이유? 이다음의 연기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노이즈 마케팅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다? 감독과 주연 배우는 가까워야 하지만 그만큼 선을 확실하게 지켜야 하는 관계다. 물론 그럼에도 사랑에 빠질 순 있지. 그런데 끝을 알고 시작하는 사랑? ‘우리영화’ 속 제하가 찍는 영화 ‘하얀사랑’의 대사처럼 “싸구려 동정이랑 사랑을 구별 못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이런 경우 연기로 개연성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쉽게도 남궁민과 전여빈의 연기 케미가 그리 썩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다.

공감을 사지 못하는 멜로 대신 궁금한 건 이제하의 영화감독으로의 서사다. 이제하의 아버지는 ‘칸이 사랑한 거장’으로 불리는 이두영 감독(김재철). 그러나 제하에게 아버지는 아픈 엄마를 두고 젊은 배우와 염문을 일으킨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인물일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인연을 끊었던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 인물이 하필 아버지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영화감독이 된 서사. 아버지와는 다른 감독, 다른 사람이 되겠단 생각이 강박적인 나머지 첫 영화의 주연 배우 채서영(이설)과 스캔들이 터지게 되자 “영화를 위해 너를 이용했을 뿐”이라며 선을 긋게 되는 서사. 그리고 첫 영화 이후 5년간 두문불출했으나 결국 차기작으로 아버지의 영화 ‘하얀사랑’의 리메이크를 선택하게 되는 서사. 궁금하지 않나?

특히 제하가 내내 거부하던 ‘하얀사랑’의 리메이크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드라마를 궁금하게 만드는 큰 요소 중 하나다. 이두영 감독의 역작으로 꼽히는 ‘하얀사랑’은 염문설의 주인공인 배우 김진여(예수정)가 주연인 멜로 영화로,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한 제하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김진여가 제하에게 “영화의 초고를 찾아 읽어 보라”며, 사실 ‘하얀사랑’ 시나리오를 제하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유은애(이상희)가 썼음을 넌지시 알리며 상황은 반전된다. 아들이자 영화감독인 제하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거장이란 아버지의 명성은 사실 어머니의 재능에 기댄 것일지도 모른다는 혼란. 그리고 어머니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 게다가 아버지와 김진여의 염문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단다. 그렇다면 대체 왜? 멜로보다 이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더 재미있으리란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또 다른 곁가지 궁금증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속내다. 흔히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 말하지만, 영화는 영화감독 한 사람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십 수백의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력이 들어가고, 수십 수백 억의 자본이 들어간다. 다음이 없던 제하와 다음에겐 ‘하얀사랑’이란 영화를 완성시켜 개봉하는 것 자체로도 어느 정도 얻는 것이 있다지만 제작자인 부승원(서현우)이나 ‘하얀사랑’에 60억원 투자를 추진한 창업 투자회사 상무 한성호(한종훈)에겐 영화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톱스타인 소속 배우 서영이 주연을 마다하고 조연으로 출연을 감행한 것을 지켜봐야 하는 매니지먼트 대표 고혜영(서정연), 시한부인 딸이 병원을 박차고 나가 영화를 찍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다음의 아버지 이정효(권해효) 교수, 자질이 뛰어나지만 영화감독이 되는 것엔 관심이 없는 조감독 유홍(김은비) 등등. 방송사 드라마국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다뤄 호평을 받았던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영화판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상황과 심리만 잘 쫓아도 재미날 것 같은데, 역시 멜로에 뒤쳐져서 단선적으로만 그려지는 게 안타깝다.

‘우리영화’는 어떻게 끝날까. 개인적으론 ‘우리영화’ 속 ‘하얀사랑’은 무사히 끝을 맺고 개봉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영화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제하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고 어머니의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지, 그걸 보기 위해 남은 방영분까지 시청할 생각이다. 사랑이야 뭐, 알아서들 잘 하겠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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