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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논란 단통법, 폐지한다는데 별로 '반값'지 않은 이유

삼성 독과점 구조·시장 포화 등 통신시장 달라…시민단체, "잘못된 대책, 폐지 아닌 보완해야"

2024.01.23(Tue) 16:32:41

[비즈한국] 정부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일명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을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다.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소비자 차별을 막는다는 취지로 탄생했던 단통법은 10년에 걸친 논란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급변하는 통신 시장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줄곧 비판을 받아온 단통법이지만, 정부의 폐지 결정이 나오자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1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브리핑에서 단말기 유통법 폐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22일 ‘생활 규제 개혁’을 주제로 개최한 다섯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단통법 폐지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단통법 폐지 △도서정가제 개편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편을 내놨다. 국민이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대표 규제를 선정해 개선한다는 목표다. 세 가지 규제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총선을 앞둔 지금 실제 개편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단통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래창조과학부였던 2014년 10월 1일 시행됐다. 단말기를 통신사에서 구매하는 소비자와 자급제로 구매하는 소비자 간의 비용 차별을 막고, 고가 요금제에만 집중된 지원금을 저가 요금제에도 확대하는 것이 제정 취지였다. 당시 이동통신사 간의 지원금 경쟁이 치열해 유통점마다 제공하는 할인 혜택이 달라, ‘모르면 비싸게 사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으로 이통사가 단말기 유통점(대리점, 판매점)에 지급하는 지원금인 공시 지원금과 추가 지원금(공시 지원금의 15%)에 상한선이 생겼다. 자급제나 중고 단말기를 쓰는 소비자를 위해서는 단말기 지원금 대신 통신비를 할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도입 초기 분리 요금제 등으로 불리다가 현재 선택약정 할인제도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법안의 취지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6년경 일반 판매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일명 ‘성지’로 불리는 불법 판매점이 우후죽순 나타난 것. 신도림 마트 등 오프라인에서 유행하던 성지는 온라인으로 기반을 옮겨 성행했다. 성지가 특가 정책을 시간 단위로 펼치며 암시장처럼 운영하다 보니,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가격차별은 오히려 심화했다. 또한 지원금을 주는 대신 고가요금제를 약정하는 개별 계약을 막는 것도 단통법의 목적 중 하나였으나, 성지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가계 통신비를 낮추는 데에도 효과는 신통치 못했다. 근본적으로 제조사가 단말기 가격을 올리는 건 막지 못하기 때문. 박완주 의원실에 따르면 휴대전화 단말기 출고가에서 이통사의 지원금을 제외한 평균 가격은 2014년 62만 원에서 2023년 7월 기준 87만 원까지 늘었다. 최근 출시하는 플래그십 기종의 출고가가 200만 원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5G 요금제 출시 등으로 요금제 단위가 높아지면서, 단통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라는 평을 받았다. 

 

단통법 시행으로 이통사 간의 과도한 지원금 경쟁은 줄었지만, 과실은 소비자의 이익이 아닌 이통사의 영업이익을 개선으로 돌아갔다. 성지와 불법 지원금으로 인해 가격차별은 남고 단말기 구매 비용은 오르자 단통법을 둘러싼 논란은 커졌다. 지원금을 받지 못해 경쟁력을 잃은 단말기 판매점에서도 꾸준히 반발했다. 

 

2023년 6월 정부는 단통법 폐지 대신 추가 지원금을 현행 15%에서 30%까지 늘리는 방향으로 개편을 논의했으나,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시장의 자율 경쟁을 부추겨 단말기 구입 비용을 낮춘다는 의도다. 다만 통신비를 할인하는 선택약정 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2014년 10월 시행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폐지되면서 단말기 판매점 간의 가격 경쟁이 벌어질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결정에 단말기 판매점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건전한 경쟁으로 이용자 혜택을 증대하는 것이 소상공인 판매점을 살리는 길”이라며 “단통법 폐지가 총선을 위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라 통신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반면 판관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 이통사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까지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홍기성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성지는 정식 매장이 없고 운영비가 들지 않는다. 그런데 불법 지원금으로 번호이동 회원, 부가서비스 가입자 등을 빠르게 모아오니 대리점에서도 무시하지 못한다. 일반 소상공인 판매점은 성지와 경쟁할 수 없다”라며 “단통법을 폐지하면 자율 경쟁에 놓이기 때문에 판매점 간의 출혈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할인, 서비스로 소비자를 다시 끌어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입법이나 법 이관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공시 및 추가 지원금의 상한선 폐지라도 먼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민단체에서는 정부가 원인 파악을 못 하고 잘못된 대책을 냈다고 비판한다. 독과점 구도인데다 성장이 정체된 지금은 지원금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것. 참여연대는 22일 논평을 내고 “단통법은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반쪽짜리로 운영됐다. 폐지가 아닌 원래 취지대로 보완해야 한다”라며 “단통법을 시행하던 2013~2014년에는 이통사가 ‘고객 빼 오기 경쟁’을 벌였지만, 지금은 시장 포화 상황에 삼성전자가 단말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보조금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불법 지원금으로 시장이 혼란해져 소수의 소비자만 이득을 보고, 마케팅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이통사의 지원금에 기대는 정책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소비자 차별 철폐가 단통법 시행 당시에는 중요한 가치였는데, 지금 시점에선 시대적 소명을 다한 측면이 있다. 통신 시장의 환경이나 경쟁 구도가 바뀐 만큼 단통법 대신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애초에 지원금 제도는 이통사가 인심 쓰는 것처럼 비친다. 그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요금 인하나 요금제의 선택권을 늘리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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