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미국 빅테크 독주 속 중국은 방대한 지원과 인력을 토대로 판을 흔들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 1위의 ‘IT 강국’ 한국은 AI 기술 분야에서 일찌감치 ‘2군’으로 밀려났다. 거대 자본과 데이터를 앞세운 선도국의 각축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AI 스타트업은 틈새시장을 노려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주요 IT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 찾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전쟁에서 살 길은 어디에 있을까. 혁신의 최전선에 선 우리 기업들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새 정부는 첨단 인공지능(AI) 산업 생태계로 재편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AI 3대 강국’ 도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조 단위 투자를 속속 유치하는 미국과 중국에 비하면 한국은 ‘쩐’의 전쟁에서도, 절대적인 기술 경쟁에서도 뒤처졌다는 평가다. 자금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AI 분야에서 투자 부족은 기술 개발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며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 공약도 첫 행보도 ‘AI’
이재명 대통령의 처음에는 모두 AI가 있었다.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 뒤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 AI를 찾아 백준호 대표 등과 정책 간담회를 가졌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조치는 ‘AI 미래기획수석실’ 신설이다. 6일 공개된 조직 개편안에 따라 대통령실에는 미국, 중국에 이은 AI 3강 도약 과제를 추진할 수석실이 별도로 설치된다.
AI 수석실은 단순 자문 기능을 넘어, 정책 조율과 실행을 포함한 AI 관련 국가 전략을 총괄하고 민간과의 접점을 조율하는 정책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정책실 산하 성장 전략 담당으로서 정부 핵심 국정과제를 이끌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 주도의 전방위적 지원을 토대로 AI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이 예고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관심이 모인다. 가장 큰 숙제는 글로벌 빅테크가 AI 개발과 의제를 주도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실행 방안으로 내세운 건 ‘100조 원 투자’였다. 100조 원 규모의 민간·공공 투자 기반을 조성해 향후 5년간 AI 인프라 확충과 산업 생태계 고도화에 나선다는 계획인데 이를 위해 국민, 기업, 정부, 연기금 등 모든 경제주체가 참여하는 ‘국민펀드’가 거론됐다.
#한국 산업계에 AI ‘시급’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등 투자 환경 개선을 요구해온 국내 산업계는 우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스타트업 등 AI 업계는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와 대규모 투자 부족으로 성장에 한계를 겪어왔다.
AI 역량과 산업 구조 전환 여부가 향후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산업 AI에 활용 가능한 정제된 데이터와 연계 인프라가 부족해 한계가 있다는 것. 강성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 수석연구원은 “AI는 수출 산업의 경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특히 중소·중견 기업들이 제조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업 AI를 효과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해 소버린 AI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8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에서 열린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데이터를 보면 주요국 대비 한국의 열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AI 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AI 투자를 선도하는 주요 6개국은 미국·EU(유럽연합)·중국·영국·일본·캐나다로 한국은 전체 국가 중 10위권에 그쳤다. 투자액은 20억~30억 달러 정도로 일본·캐나다를 밑도는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2023년 정부(28억 달러)·민간(847억 달러) 등 총 AI 투자액 875억 달러(118조 원)로 전 세계의 약 62%에 달했다. EU(135억 달러)와 영국(72억 달러)은 민간 투자 비중이 90% 이상이었고, 중국(113억 달러)은 주요 6개국 중 정부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19%였다. 한국이 3강에 진입한다면 경쟁상대로 꼽히는 캐나다, 영국 등도 자국 인프라 확충을 위한 공적 지원으로 투자 규모가 성장세다.
김소미 NIA 선임연구원은 “AI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전 세계 정부와 민간기업은 AI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AI 기술이 접목된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는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동력으로서 정부와 기업 모두 이 같은 변화를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 “실행력 갖춘 전략 필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다는 약속인 만큼 목표에 못 미치는 정책 공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100조 원이라는 숫자 보다 상징성에 의미가 있다는 시각이다. 100조 원은 올해 정부 예산(673조 원)에서 6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로, 공약집에서는 재원 조달 방안으로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과 향후 5년간 연간 총수입증가분 등으로 충당한다고 제시됐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약 단계에서 재원 마련과 투자처를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AI 산업은 칩부터 클라우드, 파운데이션, 앱스토어,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층위를 포괄하기 때문에 AI 분야 중 어디에 투자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며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다만 민간이 할 수 없는 인프라, 클라우드 등 하단 영역에 집중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짚었다.

구체적인 추진 과제로는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 개 이상 확보 △정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조성 △국가 SOC(사회간접자본) 확보 차원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거대언어모델(LLM), 소규모언어모델 연구개발 및 사업화 지원 △AI 반도체 기술의 내재화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등이 약속됐다.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AI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모두의 AI 프로젝트’도 이목을 끄는 공약이었다. 기존 유료 서비스급 이상의 한국형 챗GPT를 개발해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로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권을 보장하고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취지다.
AI 인재 양성과 관련해서는 지역별 AI 단과대학 설립, 초중고 STEM 교육 강화, AI 기초교육 의무화 등 교육 전반에 걸친 개편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AI 기술의 실증과 상용화를 제한하는 규제를 정비해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데이터 활용 영역에서는 추상적인 구호에 그친 공약만 제시됐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이 대통령이 공공데이터를 민간에 적극 개방·확대하겠다고 밝혀왔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AI 발전을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특히 기존의 제한적 데이터 활용을 넘어 공공기관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스타트업 등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GPU 등 하드웨어와 ‘한국형 AI’와 같은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에 대한 공약은 비교적 구체화됐는데 데이터 정책은 부재하다. 세부적인 방침이 없으니 논평할 내용도 없다”며 “학습할 데이터 없이는 AI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이전 정부들이 공공데이터 활용 정책을 내놨지만 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는지,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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