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J팝을 선호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인기 있는 J팝 아티스트들에게는 공통분모가 눈에 띄는데, 그 하나가 바로 애니메이션 OST다. 보통 애니메이션은 가창력 있는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최정상급 가수들이 참여한다. 2023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제가 ‘지구의’(지구본)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불렀다. 요네즈 켄시는 작사, 작곡, 편곡, 노래, 연주, 댄스, 동영상, 아트워크 등 전 영역에 참여하기 때문에 멀티아티스트로 불린다. 사실 국내에서 처음 그가 주목받은 것도 OST 덕분이다. 일본 법의학 드라마 ‘언내추럴’에 삽입된 노래 ‘레몬’이 크게 히트를 쳤던 것이다.

요네즈 켄시는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가수로 유명했다. 그게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 OST의 힘으로 진가가 알려지면서 2023년부터 대중 앞에 나섰다. 올 3월에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 이틀간의 공연은 전석 매진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공연을 찾은 관객의 비중이다. 20대가 64.8%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18.4%가 뒤를 이었다. 10대 비중은 10.1%였다. 아이돌 그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0대의 비중이 덜한 것이다. 성별 비중도 차이가 있다. 남성 46%, 여성 54%로 8%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보통 공연장의 남녀 관객 비중은 3 대 7 혹은 2 대 8 수준이다. 일본 만화 영화의 주 소비층이 20~30대이고 그 가운데 남성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공연도 정점은 OST였다. 그가 OST 노래를 부르자 한국 관객들은 일제히 따라 부르며 떼창 행진을 보였다. 그 노래는 인기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의 주제가로도 쓰인 2022년 히트곡 ‘킥백’이었다. 요네즈 켄시는 최고의 인기가수가 되었어도 만화 영화 주제가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에 애니메이션 팬층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두 명으로 이뤄진 유닛 요아소비(YOASOBI)는 2024년 12월 9일 내한 공연 티켓이 1분 만에 매진되었다. 이들은 무대에서 ‘최애의 아이’ 오프닝곡 ‘아이돌’을 비롯해 ‘괴물’, ‘용사’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불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가 전 세계 차트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이는 비단 K팝의 위력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터. 이 콘텐츠를 제작한 것은 일본 기업 소니 픽쳐스다.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량에 전 세계적인 반응이 쏟아진 셈이다. 다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재료가 K팝이고 한국 문화였을 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쓰인 K팝 OST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한국 젊은 세대가 일본 애니메이션 OST에 열광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K콘텐츠로서 글로벌 한류 현상을 일으키는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주목을 낳았고, 그 애니메이션을 매개로 가수에게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K팝에서 뭔가 채워지지 않는 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보면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두 명으로 이뤄진 유닛 요아소비, 혼자 모든 것을 소화하는 요네즈 켄시는 집중력과 화제성을 높이고 아티스트의 반열에 쉽게 다가간다.
지난 5월 15일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한 일본 여성 솔로 가수 아도(Ado)는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아도는 2022년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의 주제가를 불러 크게 인기를 끌었다. 가상 캐릭터 가수이지만 고난이도의 프리스타일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빼어난 라이브 실력을 보여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의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가 인기를 끄는데, 아도는 아티스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4월 19일 내한 공연한 아이묭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일본의 아이유’로 불린다. 중학교 때부터 작사,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유우리는 두 번째 내한 콘서트에서 케이스포돔 2회 공연을 매진시켰다. 경쟁이 치열한 케이스포돔을 일본 가수가 뚫어서 파란이 일었다. 2004년 아무로 나미에 이후 21년 만에 일본 가수가 무대에 선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2024년 12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는 후지이 카제가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했다. 그는 일본 가수 최초의 고척돔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맞추려 했는지 한국의 ‘도라지 타령’을 독창적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록랜드의 약진도 주목받았다. 2024년 4월 20일 내한 공연한 일본 대세라는 킹 누(King Gnu), 2024년 11월 30일~12월 1일에 내한 공연을 한 오피셜히게단디즘도 록밴드였다. 미세스 그린 애플(Mrs. Green Apple)은 록밴드인데, 한국에서는 이제 흔하지 않은 혼성밴드다.
이들은 한국에서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연 투어를 하고 있다. J팝은 아이돌 그룹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보이그룹 원 오어 에이트(One Or Eight)와 걸그룹 코스모시는 한국 K팝 그룹을 벤치마킹해서 업그레드했다. J팝은 넷플릭스처럼 한국과 일본, 미국의 장점을 합쳐 나름의 콘텐츠 제국을 다시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K팝 위주 음악 산업의 결핍과 한계를 넘어 다양한 음악 장르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처럼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문화 장르에 결합하면 좋을 것이다. 한국의 오컬트물이 경쟁력 있으니 여기에 OST를 결합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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