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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리포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가 '코리아니즘' 때문?

한국적 요소 자체에 집착하면 안 돼, 한국 본질을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융합해야

2025.07.23(Wed) 14:50:21

[비즈한국] ‘코리아니즘(Koreanism)’이라는 말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말은 2006년쯤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콘텐츠 분야에서 많이 회자되는 지금과 달리 패션계에서 먼저 등장했다. 구체적으로 패션모델의 활약을 통해서 언급되었다. 당시에는 한혜진과 혜박이 2005년부터 활약하는 모습을 코리아니즘과 연결시켰다. ‘코리안 루킹(Korean looking)’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한국적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적 개성을 부각하기 위해 신윤복 그림에 나오는 여성들의 얼굴도 언급이 되었다. 과거 서양인이 동양인을 묘사한, 눈이 좌우로 매섭게 찢어지고 광대뼈가 돌출한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 연장선에서 서구적 시선의 오리엔털리즘이 아닌 한국인 눈으로 한국 문화의 힘을 표현하는 것이 코리아니즘이라는 정의도 이때 등장했다. 그 뒤 미술 시장에서 한국적 이미지가 선호되기 시작했고, 전통가구 분야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왔다. 어쨌든 코리아니즘에 대한 학술논문과 활용은 주로 패션 쪽에서 나왔다. 2024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우리 기업이 선보인 컬렉션의 핵심 키워드도 코리아니즘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 덕분에 ‘코리아니즘’이라는 단어가 영상 콘텐츠 분야에 등장했다.


그런데 2025년 7월 갑자기 코리아니즘이라는 단어가 영상 콘텐츠 분야에 등장했다. 넷플릭스 애니케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연출자 매기 강(강민지) 감독의 말 때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장면과 디자인 요소에서 영화가 ‘한국적으로 최대한 느껴지도록’ 세심하게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를 국내 언론들이 코리아니즘이라는 말로 묶었다. 한국적인 공간과 사물, 대상, 이미지가 작품에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핫한 한국 음식, 즉 국밥과 김밥, 떡볶이가 등장한다. 그것도 매우 디테일해서, 예전 분식집에서 쓰던 초록색에 하얀 점이 그려진 접시에 김밥이나 떡볶이가 담겨 나온다. 국밥을 먹을 때 수저와 젓가락을 휴지 위에 얹어 놓은 장면도 화제가 됐다. 남산타워는 물론 남산타워가 보이는 낙산공원 성곽길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몸이 좋지 않을 때 한약방에 가 한약을 지어 먹는 것은 예전 세대나 지금 세대나 공통적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당연히 K팝 팬덤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고증도 팬들의 열광을 낳은 요소 가운데 하나다. 

 

실제 장소나 생활문화, K팝 문화뿐만이 아니다. 전통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헌트릭스가 사용하는 갖가지 검(사인검, 칠성검, 월도), 장신구와 노리개 문양은 물론이고 저승사자와 도깨비 같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압권은 호랑이다. 더피(Derpy)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인기가 높았다. 더피는 민화에서 찾아낸 전통적인 한국 호랑이 모습인데, 맹수답지 않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조선 민화 속 호랑이를 닮은 더피. 사진=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상 캡처

 

일각에서는 코리아니즘의 조건을 꼽기도 한다. 해외 자본이나 플랫폼을 통해 제시하더라도 한국의 본질을 이해한 바탕 위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한국적인 감성을 전달하면서 현대적으로 새롭게 융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코리아니즘은 한국문화의 본질과 현실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한국인의 관점에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현대의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스타일의 콘텐츠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지난 5월 30일 넷플릭스의 첫 한국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이 공개됐지만, 화제가 되지 못했다. 한국적인 요소가 매우 충만하고, 젊은 세대가 좋아할 법한 근미래 청춘 남녀의 장거리 연애물이었는데도 말이다. 창작 콘텐츠로서 과연 누가 이 콘텐츠를 보려 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그렇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과연 한국적 스타일, 즉 코리아니즘이 주안점이었을까. 사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초기 기획안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원래는 오컬트가 중심이었고 K팝은 중심소재가 아니었다. 매기 강 감독은 샤머니즘의 초기 형태가 춤과 음악이 등장하는 콘서트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데몬 헌팅, 즉 악마 사냥이란 설정에서 퇴마사들의 신분 위장이 필요했기에 K팝 그룹을 떠올렸다고 한다. K팝을 넣으니 분위기가 살고 대형 공연 장면이 영화를 스펙타클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라면, 김밥 같은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그릇까지도 꼼꼼히 고증했다. 사진=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상 캡처


매기 강 감독의 미덕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K팝을 활용하면서 최대한 완벽을 기했다. K팝을 단순히 도구나 배경, 소재로만 활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K팝 문화를 잘 반영했고, 무엇보다 테디, 리아 정을 비롯한 현업 창작자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트와이스 같은 최고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과 창작곡을 같이 넣어 친숙함과 새로움을 공존하게 했다. 더구나 한국에 대한 현실고증이 매우 세밀하고 사실감 있다. 감독이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K팝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K팝 팬덤의 반응을 폭발시켰고, 팬들은 이 콘텐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비하게 되었다. 코어 팬덤의 경우 음식이건 노래건 굿즈건 마다하지 않는다.

 

요컨대 한국적 스타일, 즉 코리아니즘 때문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K팝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지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코어 팬덤의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K콘텐츠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철저하게 팬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해야 향후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코리아니즘 자체에 천착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콘텐츠 소비자의 필요와 우리의 정체성을 결합하고 형상화하는 길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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