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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가장한 불법파견"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승소

법원 "한전KPS에 직접고용 의무" 김용균·김충현 사망사고에도 이어진 '위험 외주화' 관행 제동

2025.08.28(Thu) 14:35:43

[비즈한국] 지난 6월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끼임 사고로 숨진 고 김충현 씨의 동료인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년 3개월 만에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하청 노동자가 사실상 파견 형태로 근무했으며, 이에 따라 한전KPS가 직접고용 의무를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발전소 위험 업무의 재하도급,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경종을 울린 결정으로 평가된다.
 

8월 28일 원고 측 승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도급 계약서를 찢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호 기자


8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인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전KPS와 하청업체가 형식적으로는 도급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파견 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한전KPS는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생겼다.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이번 판결로 비로소 투쟁의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됐다”며 “한전KPS가 판결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공공기관 불법파견을 방치한 정부에도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패소한 한전KPS는 “판결문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업무, 인사, 장비 모두 한전KPS 직원과 공유

 

고용 구조를 보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상정비(일상 점검, 순회, 경미한 수리 등)를 한전KPS에 1차로 맡겼다. 이어 한전KPS는 전기·기계 분야로 나누어 다시 2차 하청을 주었다. 소송을 제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2차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사실상 파견으로 보았다. 하청업체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했을 뿐, 매년 업체가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되어 계속 근무했다. 정철희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태안발전본부 분회장은 “제가 근무한 회사만 15번이 바뀌었다”며 “업체명이 계속 바뀌니 작업복에 회사 이름조차 새길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인 △업무 지휘·명령권 △인사·노무 관리권 △작업 장비 소유권 등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한전KPS의 작업 지시를 받아 근무했고, 오전 회의에서 세부 작업 지시와 투입 인력이 공지됐다. 작업 중에도 문자·카카오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시를 받았다. 한전KPS의 요구로 다른 발전소에 투입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한전KPS 정직원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근무했으며, 작업지시서와 안전교육 명단에도 동일하게 이름이 올랐다. 사용한 공구 역시 대부분 한전KPS 소유였다. 국현웅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는 “망치 하나까지도 한전KPS 장비였다”며 “발전소 내 불법파견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 전날인 8월 27일 한전KPS 불법파견 판결 촉구 진보3당 기자회견에서 이백윤 노동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민호 기자

 

#인건비 줄이려 위험 외주화…사망사고 잇달아

 

이번 판결은 원청이 안전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에 제동을 건 것으로 평가된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원청이 권한과 이익은 가져가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다단계 하청 구조를 극복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직접고용이 이뤄질 경우 노동조건과 안전관리 수준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9년 고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 이후 꾸려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도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민간 정비 노동자를 한전KPS가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여당은 민간업체 파산, 소송 등 갈등, 발전산업 경쟁 체제 위축 우려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재하도급 구조가 유지되며, 김충현 씨 사망사고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소 설비 특성상 전문 인력과 안전 교육이 필수적임에도, 책임이 분산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전관리자이자 작업자로 동시에 떠밀리는 구조가 지속돼 왔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발전소 설비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이를 억지로 분리해 하청을 준 것이 문제”라며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안전 책임도 나뉘면서 결국 위험이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됐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위해 외주화를 지속하는 구조를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고 측 변호인 김하나 변호사는 “위험의 외주화는 인건비 절감과 안전관리 비용 축소에서 비롯됐다”며 “비정규직법이 안전 비용을 오히려 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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