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롯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기획으로 시작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가 10년을 이어왔다. 처음 마음을 그대로 지키며 230여 명의 작가를 응원했다. 국내 어느 언론이나 문화단체, 국가기관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 10년의 뚝심이 하나의 가치로 21세기 한국미술계에 새겨졌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10년의 역사가 곧 한국현대미술 흐름을 관찰하는 하나의 시점’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제 시즌11에서 한국미술의 또 하나의 길을 닦으려 한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상상력이다. 그것은 인류가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근본적인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현재 상상력이 가장 잘 구현되는 장르로는 영화가 꼽히지만, 그 이전에는 회화가 이를 이끌어왔다. 그래서 지금도 상상력을 생명으로 하는 공상과학이나 환상적 영화에서는 회화 작품을 참고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서양미술사에서 상상력이 훌륭하게 발휘된 것은 19세기 말에 나타난 상징주의다. 당시 유렵 미술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 관심이 높았다. ‘천사를 내 눈 앞에 데려오면 그리겠다’는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생각이나 ‘우리가 보는 것은 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영상’이라고 주장한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화론은 모두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상징주의는 이러한 당시 미술계의 대세를 거스르는 새로운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상징주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즉 초자연적인 세계나 작가 내면의 생각, 관념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상징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는 삶과 죽음, 이상심리, 불안, 사랑, 성, 꿈이나 환상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동양미술에서는 상징주의의 이러한 성향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 있었다. 중국 회화의 최고 이상으로 삼았던 육법(남제 시대 사혁이 주창) 중 ‘기운생동’(생명력 넘치는 표현으로 대상의 내재적 정신과 기질을 담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산수화에서는 자연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담는 것을 격조 높은 작품으로 여겼다. 자연 만물을 상징의 도구로 삼아 자신의 생각을 담았던 셈이다.
왕열은 이러한 동양화의 전통적 방식에다 상징주의적 은유를 더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 그는 정통 수묵과 채색을 바탕으로 독보적 현대 수묵 채색의 세계를 연 작가다. 오랜 공력과 재능이 묻어나는 그의 회화는 산수화에 상상의 공간을 심어 주목받았다.

이러한 산수풍경이 품고 있는 작가의 생각은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다. 자연의 순리가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의 세계다. 이를 염원하는 인간의 상징체로는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긴 말이 등장한다. ‘생각에 잠긴 말’이다. 말은 중의적 상징성을 띠고 있다. 명상에 잠긴 말에서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긴 다리에서는 현대의 롱다리 미감을 유추할 수 있다.
전통 회화의 상징주의를 엿볼 수 있는 왕열의 회화에서 긴 다리 말이 안내하는 유토피아를 찾아보자.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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