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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 집 팔아 주식을 사라는 어이없는 주장에 대해

부동산 비중이 문제라고? 신뢰를 잃은 한국 주식시장,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

2025.10.06(Mon) 12:59:08

[비즈한국] 한국 경제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가 있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70% 이상을 부동산에 쏟아붓고 있다. 그래서 주식시장이 크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주장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이야기다. 부동산 비중이 높아서 주식이 부진한 게 아니라, 주식시장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국민이 부동산으로 도망친 것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 편중 논란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단골 이슈다. 그림=생성형 AI


#‘부동산 탓’하는 사람들, 문제의 본질을 보라

 

부동산 선호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해묵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벽돌과 시멘트를 사랑해서 집을 사는 게 아니다. 돈을 지켜줄 마지막 안전자산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한 번의 위기만으로도 예금·펀드·주식 모두 흔들린 경험이 있다. 반면 부동산은 세금을 맞아도, 규제를 맞아도, 실물로 남는다.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은 구조적이다. 기업은 여전히 대주주 중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정부는 경기 침체기마다 주가를 ‘정책적 도구’로만 써왔다. 배당은 인색하고, 자사주 소각은 드물며, 주주환원율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시장에서 누가 기꺼이 장기투자에 나서겠는가.

 

#“미국처럼 부동산 비중을 줄여라”는 말의 착각

 

“선진국처럼 부동산보다 금융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이 역시 표면적 수치만 베낀 피상적 비교다. 미국이 금융자산 중심의 구조를 갖춘 이유는 단순한 ‘의식 변화’가 아니다. 그들은 401(k)·IRA 같은 장기연금제도, 기업 매칭 투자 시스템, 낮은 배당세율과 투명한 회계제도,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국민연금조차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고 미국주식 비중을 60% 이상으로 늘리고 있다. “한국 경제를 위해 한국 주식에 투자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연금의 프로들은 미국을 사들이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진짜 모순이다. “미국처럼 하자”는 말은 제도적 기반이 같을 때만 의미가 있다. 한국은 그 기반이 없다. 그런데도 국민에게만 “믿고 투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행정적 회피다.

 

#“집 팔아 주식 사라”? 노후를 위험으로 몰지 말라

 

최근 일각에서는 “노후 안정은 금융투자에서 온다”며, 심지어 “1주택자도 부동산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듣기에는 세련되지만, 실제로는 노후 불안을 외면한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의 노년층이 집을 가진 이유는 투기 때문이 아니다. 월세와 전세가 불안한 사회에서 자기 집은 주거비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일한 방패다. 그 한 채를 팔아 주식에 투자하라는 건, 안정된 고정비를 변동비로 바꾸라는 이야기다.

 

인플레이션이 오면 임대료는 오르지만, 주식 배당은 그대로다. 결국 그들은 불안 속에서 시장의 변동성을 떠안게 된다. ‘똘똘한 한 채’는 욕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것을 팔라고 하는 것은, 노후의 마지막 안전판을 없애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주택자 규제로 순수 부동산 투자 자금은 이미 대부분 빠졌다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다주택자 규제, 양도세 중과, 대출제한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눌렀다. 논리대로라면 그렇게 빠진 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자금은 미국주식, 달러예금, 금 ETF, 해외채권으로 이동했다. 즉, ‘국내 자산’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자산 비중’이 아니라 ‘신뢰의 부재’다. 정부가 아무리 구호를 외쳐도 시장은 거짓을 믿지 않는다.

 

#“한국 부동산만 거품이다”라는 선택적 잣대

 

“부동산은 거품이고, 주식은 저평가됐다”는 논리도 흔히 들린다. 그러나 두 시장은 성격이 다르다. 부동산은 정부의 직접 통제 아래 있고, 주식은 정부의 무관심 아래 있다. 둘 다 왜곡돼 있다. 부동산을 누르려다 보면 거래가 마비되고, 주식을 부양하려다 보면 시장이 흔들린다. 결국 정책은 두 시장 모두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정책은 ‘누굴 벌주느냐’보다 ‘어디를 믿게 만드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연금이 보여주는 냉정한 현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위험 대비 수익이 낮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국심으로 운용하지 않는다. 철저히 수익률과 안정성으로 판단한다. 이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한국 주식에 장기투자하라”고 말하는 건 이중적이다. 연금이 미국을 사고, 기관이 달러를 사는 와중에 서민에게 “집 팔고 코스피를 사라”고 말하는 건 투자 권유가 아니라 신앙 고백이다.

 

#자산배분은 신념이 아니라 확률이다

 

자산배분은 각자의 인생 구조와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20대 독신 청년과 60대 은퇴자가 같은 포트폴리오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부동산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모든 세대에 하나의 공식을 강요한다.

 

투자는 확률의 문제다. 확률을 높이려면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세금과 제도를 공정하게 만들고, 기업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즉,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게 진짜 ‘주식시장 살리기’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개혁을 생략한 채, “부동산을 줄여야 한다”는 단선적 구호만 남았다.이건 개혁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주가가 오르면 자금이 들어온다”는 희망회로

 

정책 당국자나 일부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식이 오르면 자연히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그건 희망이지, 전략이 아니다. 주가가 오르기 위해선 성장산업이 있어야 하고, 기업이 혁신에 투자해야 하며, 정책이 일관돼야 하고, 세금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은 그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주식은 단기 테마에 휘둘리고, 장기투자자는 줄어든다. 결국 ‘부동산 탓’은 현실 회피다.

 

진짜 문제는 ‘부동산 과잉’이 아니라 ‘주식시장 부실’이다. 시장 체질을 고치지 않은 채 투자심리를 바꾸겠다는 것은 집 없는 국민에게 또 다른 위험을 강요하는 일이다.

 

#한국 주식이 살아나려면

 

한국 주식시장이 진짜로 살아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신뢰의 복원이다. 기업 회계 투명성과 정부 정책 일관성, 시장 예측 가능성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장기투자 인프라다. 연금·퇴직계좌에서 국내 우량주 중심의 세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시장 질서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선행되지 않으면, 국민은 절대 돈을 옮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산을 옮기지 않는다. 믿음을 옮긴다.

 

#신뢰 없는 투자 권유는 폭력이다

 

지금의 논쟁은 단순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의 중산층에게 ‘한 채’는 투기가 아니라 자기방어의 마지막 수단이다. 그 한 채를 팔라고 강요하는 것은, 삶의 마지막 안전망을 끊으라는 것과 같다.

 

주식시장이 살아나길 원한다면 사람들의 불안을 줄이고,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게 부동산 비중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강요로는 자금이 움직이지 않는다. 신뢰로만 움직인다.

 

한국 주식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이 부동산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주식시장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팔라고 하기 전에, 주식시장이 먼저 믿음을 돌려줘야 한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다시쓰는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 설명서(2025)’​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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