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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 이재명 정부 주택공급, 숫자는 있는데 착공 버튼이 없다

인허가·PF·미분양·가계부채, 네 바퀴가 멈춘 한국 주택시장

2025.09.15(Mon) 10:34:49

[비즈한국]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정부의 주택공급 방안을 두고 “칭찬도 비난도 없는 거 보면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파장 없는 안정적 대책’처럼 들린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박수나 야유가 아니라 공정(인허가–착공–분양–준공)의 흐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체와 대환, 미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의 축적, 가계신용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마찰 같은 냉혹한 지표로 움직인다.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이재명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대통령의 자평은 “가격 급등만 막으면 된다”는 식의 단기 심리 프레임을 강화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주택시장을 위태롭게 만드는 건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가격을 떠받치는 시스템의 비틀림이다. 정책의 평가 기준을 여론의 온도계에서 시스템의 계기판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잘했다”고 말해도 현장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정부는 9월 7일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호(연 27만 호) 착공을 제시했고, 공공택지는 LH가 직접 시행해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노후 공공청사·학교 용지·유휴 국공유지 등 도심 자원을 전환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숫자는 약속일 뿐이다. 공급은 도면의 총량이 아니라 생산체계의 지속가능성에 좌우된다. 돈(자금조달 구조), 사람(시공역량), 규제(인허가·환경·교통 영향), 수요(분양·전환)라는 네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야 약속이 실적이 된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이 네 바퀴 중 어느 것도 자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먼저, 공정의 앞단이 흔들린다. 7월 주택통계를 보면 수도권 분양은 반짝 늘었지만 누적 실적은 전년 대비 뒷걸음쳤고, 무엇보다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이 다시 늘었다. 앞단(인허가·착공)이 부정확하고 뒷단(준공 후 미분양)이 쌓이는 구조는 1~3년 후 지역별 공급 절벽과 가격 변동성을 동시에 키우는 병목으로 귀결된다. 숫자상 공급을 외쳐도, 현장에서는 “착공할 돈이 없다, 팔릴 확신이 없다, 인허가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세 문장이 사람과 장비를 멈춰 세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연 27만 호’는 도표 속에서만 존재하는 계획으로 남는다.

 

둘째, PF 스트레스의 잔불이 꺼지지 않는다. 법원의 회생 개시 결정 속도가 빨라질 정도로 건설업체들의 유동성 위기는 제도권 전체의 부담으로 번졌다. 올 들어 중견·중소 건설사의 법정관리 신청이 줄을 잇고, 과거 워크아웃을 졸업했던 업체들까지 다시 회생 절차로 돌아왔다. 이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미분양과 원가 상승, 매출 인식 지연이 맞물린 구조적 균열의 신호다. PF를 둘러싼 선순·중순·후순위의 위험이 정교하게 재배치되지 않으면, 아무리 인허가를 내고 용적을 올려도 ‘착공 버튼’은 눌리지 않는다. 시장은 숫자보다 대차대조표를 본다.

 

셋째, 가계의 호흡이 가빠졌다. 한국은행 통계상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952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다. 일부 지역의 가격 반등과 맞물려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불어나면서 ‘거래 회복 없는 부채 팽창’이 진행되는 기묘한 국면이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되풀이하는 ‘수요 억제’ 메시지는 역설을 낳는다. 무차별 억제는 단기 급등을 막을 수 있어도, 실수요의 교체·전환을 가로막아 거래의 혈관을 말린다. 거래의 통로가 마르면 PF 회수·미분양 소화·임대 전환이 모두 막히고, 그 결과 시스템의 피로만 누적된다. 연착륙은 억제가 아니라 선별적 완충에서 가능하다.

 

넷째, 임대시장의 질적 악화가 체감경기를 갉아먹고 있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구조적으로 빨라지는 가운데, 보증사고의 상흔이 남아 있고, 준공 후 미분양의 증가는 임대시장 왜곡을 부추긴다. 보증료·위험단지 경보·신속 매입과 공공임대 리츠 전환 같은 ‘보증-공급-임대’의 연쇄 설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고 말해도 서민의 주거 체감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가격 평균의 ‘안정’과 생활 현장의 ‘불안’이 엇갈리는 괴리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다섯째, 수도권 편중형 처방의 빈 곳이 커진다. 정부가 수도권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은 정치·행정적으로 이해되는 선택이지만, 비수도권의 인허가·착공 부진이 길어질수록 광역경제권의 공동화는 가속한다. 주거는 산업·교통·교육·정주가 결합된 패키지다. 주택만 공급하고 일자리와 학교, 생활SOC의 동시 확충이 뒤따르지 않으면 인구는 더 빨리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부가 “신도시를 무한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듯이, 해법은 신도시 숫자의 증감이 아니라 광역권 단위의 입지 전략 재설계에 있다. 수도권 ‘총량’ 발표와 함께, 비수도권의 생존을 가능케 할 교통·산단·교육 축의 재편 청사진이 동시에 나와야 했다. 지금의 메시지는 약속과 청사진 사이에서 허공을 맴돈다.

 

이 모든 위험을 관통하는 핵심은, 정부가 정책의 효과를 ‘가격 안정’으로만 재단하고 ‘시스템 안정’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폭락도 폭등도 안 된다”는 대통령의 언명은 상식적으로 옳지만, 그 언명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PF 구조 개편, 인허가 병목 해소, 준공 후 미분양의 질서 있는 흡수, 보증·임대의 재설계)은 선언보다 느리고 복잡하다.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칭찬도 비난도 없다”는 여론 잣대로 정책을 재단하면, ‘정책이 시장을 이끈다’는 신뢰는 약해지고 ‘시장 눈치 보기’만 남는다. 신뢰가 빠진 곳에서 정보 비대칭과 투기적 베팅은 더 활개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설득하는 말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는 수치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첫째, KPI(Key Performance Index·성과지표)의 재구성이 시급하다. 언론 반응이 아니라, 월별·지역별로 인허가·사업승인·착공·분양·준공 후 미분양, PF 연체/대환 속도, 거래 전환률, 임대보증 사고율을 공개해야 한다. 숫자를 숨기는 것은 공포를 키우고, 숫자를 보여주는 것은 신뢰를 키운다.

 

둘째, PF의 표준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선순위(은행·보험), 중순위(정책금융·보증), 후순위(민간자본)의 위험 분담과 요건을 명문화하고, 사업성 통과 프로젝트에는 분양 전·후 유동성 브리지와 대환을 자동화해 ‘착공 버튼’을 다시 누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인허가의 병렬 심사와 기한 준수를 의무화하고, 소규모 정비·리모델링에 표준 모델을 보급해 도심의 미세공급을 끌어올려야 한다.

 

넷째, 준공 후 미분양은 조건부 공공매입, 임대 리츠 전환 트랙을 상시 가동하되, 시장가격 왜곡을 막는 룰을 명문화해야 한다.

 

다섯째, 수요 규율의 재균형이 필요하다. 다주택 레버리지와 단기전매에는 더 정밀한 억제를, 1주택 실수요의 교체·출산·근로 이동·에너지 효율 개선 같은 생산성 거래에는 DSR·취득세의 선별적 완충을 열어 거래의 혈관을 살려야 한다. 이 다섯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만, ‘총량 목표’가 ‘현장 실적’이 된다.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대책을 내겠다”는 말은 시장에 피로감을 준다. 더 자주가 아니라 더 정밀해야 한다. 각 대책은 어느 공정의 병목을 얼마만큼 줄이는지, 어느 재무지표를 몇 분기 안에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연 27만 호’는 목표치이고, 그 목표를 위해 착공률(인허가 대비), 분양률(착공 대비), 준공 후 미분양의 흡수 속도, PF 대환 성공률 같은 중간지표가 계단처럼 설계되어야 한다. 시장은 ‘다음 대책’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늘 공개되는 수치의 신뢰도에 따라 내일의 자금과 사람이 움직인다.

 

대통령은 “부동산에서 첨단산업과 일상 경제활동으로 자금을 옮기는 금융의 대전환”을 말한다. 그것 역시 방향은 옳다. 그러나 주택시장의 시스템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가계는 위험에 더 민감해지고 자금은 더욱 안전자산으로 응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택시장의 연착륙은 ‘부동산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는 필수조건이다.

 

주택이 안정돼야 가계가 장기 투자에 여유를 갖고, 금융이 기술과 산업으로 흘러간다. 연착륙의 기술은 슬로건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다. 금융·인허가·공급·임대라는 네 톱니를 동시에 맞물리게 하는 미세한 설계, 그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투명한 수치, 그리고 수치의 성실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자화자찬은 남는다. ‘칭찬도 비난도 없다’는 말은 어쩌면 정권마다 반복되는 자기암시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택시장은 그런 주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표가 아니라 표본이고, 구호가 아니라 공정이고, 선심이 아니라 대차대조표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시장이 매달 들여다보는 지표에서 침착한 개선을 보여줘야 한다.

 

인허가의 병목이 풀리고, 착공의 엔진이 돌아가고, PF의 잔불이 꺼지고, 준공 후 미분양이 줄고, 임대보증 사고가 감소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주택시장이 기다리는 유일한 뉴스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정확한 계기판이다. 그리고 그 계기판을 보며 같은 방향으로 가속하는 일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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