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사령탑이다. 최근 이 기관에서 나오는 발언과 보고서들을 보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문과 분야 최고 석학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실제 시장과 국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의 “지방에 서울대 10개 만들자”는 발언부터 “고령화가 되면 집을 팔 것”이라는 황당한 결론까지, 한국은행이 내놓는 정책 제안들은 현실감각이 현저히 부족하다.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면서도 정작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치와 데이터에만 매몰되어 실제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과정과 시장 심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근본적 이해 부족이다. 이창용 총재는 2023년 3월 “부동산 대마불사론에 대해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이 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노령화가 되면 집을 팔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현실에서 고령층은 집을 팔기는커녕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더욱 꽉 잡고 있다. 서울 강남권의 고령 자산가들은 부동산을 자산 증식과 상속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집을 처분하지 않는다.
이창용 총재는 지속적으로 ‘영끌족’에 대한 경고를 내놨다. 2023년 10월 “자기 돈이 아닌 레버리지로 집을 사는 분들이 많은데, 금리가 금방 조정돼 금융부담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은 안 한다”며 “제가 경고 드리는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는 현실적 효과가 없다. 영끌족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부동산에 뛰어드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아무리 경고해도, 부동산 외에 안정적이고 수익성 있는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계속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2025년 9월 “6·27 부동산 대책에 따른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 둔화 정도가 과거 문재인·윤석열 대통령 당시 주택시장 대책 발표 당시 효과보다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국은행 자신이 부동산 정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부동산 가격 억제책이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이런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단순히 정책 효과만 수치로 측정하려 한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면서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8월 이창용 총재는 “한은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의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금리 동결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한국 경제 전체를 부동산에 인질로 잡히게 만드는 정책이다. 실물경제가 침체되고 있는데도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못 내린다면, 정책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은행권이다. 예대마진이 확대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 받는다.
반면 실물경제는 고금리로 인한 투자 위축과 소비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이 부동산을 핑계로 금리 인하를 미루는 것은 결국 은행권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귀결된다. 이는 중앙은행의 본래 역할인 경제 안정과 성장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행은 항상 뒤늦은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오른 후에야 경고를 내놓고, 경기침체 신호가 뚜렷해진 후에야 금리 인하를 검토한다. 2025년 7월 이창용 총재는 “집값 오르는 속도가 작년보다 빠르다”며 “과열 진정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집값이 상당히 오른 상황에서 나온 뒤늦은 인식이었다.
이창용 총재가 지지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현실 감각이 없는 대표적인 탁상공론이다. 이 정책은 지방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투입하여 서울대급 대학을 9개 더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는 교육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다. 단순히 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대학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지방에 명문대를 만들어도 졸업생은 결국 서울로 올 것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지역 불균형의 원인은 교육기관의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인프라의 부족이다. 캘리포니아 UC 시스템을 모델로 삼겠다고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국토 규모와 경제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처럼 수도권 집중도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단순한 대학 분산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 정책을 위해 매년 3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이는 천문학적인 예산이다. 현재 재정 상황에서 이런 예산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확보한다 하더라도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심각한 것은 이런 예산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교통 인프라, 산업단지 조성, 창업 지원 등이 더 시급한데, 대학 예산 증액에만 매몰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2025년 4월 ‘부동산 신용집중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부동산 신용이 전체 민간신용의 50%를 차지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 분석은 겉핥기식에 그치고 있다. 왜 사람들이 부동산에 돈을 쏟아 붓는지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투자처가 없고, 부동산이 가장 안전하고 수익성 있는 자산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무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 ‘부동산 PF 구조조정’ 같은 것들은 이미 수없이 시도되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방안들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부동산 외 대안 투자처 확대, 임대주택 공급 확대,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한 강력한 제재 등인데, 이런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쏠림으로 인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행 자신이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은행들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은행들이 부동산담보대출에 안주하는 이유는 위험이 낮고 수익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만들어놓고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걱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이 단순한 수치나 정책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부동산 투자 결정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녀 교육 문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창용 총재는 “젊은이들이 자기 능력에 맞게 고민하고 더 신중하게 자산을 운용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부동산에 뛰어드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 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투기적 거래나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발생한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크고, 이를 악용한 투기 세력들이 시장을 교란한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모든 참여자가 합리적이라고 가정한 분석만 내놓는다.
한국은행이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계속하면서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은행의 경고나 정책 신호를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신뢰가 없으면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더 이상 상아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이창용 총재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노령화되면 집 팔 것’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부동산 문제의 해결책은 금리 조절이나 규제 강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공급 확대와 투기 수요 억제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이런 본질적 해결책보다는 피상적인 분석과 탁상공론에만 매몰돼 있다.
한국은행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치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장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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