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상장사 공시 흐름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자사주를 태워 없애는 기업과, 자사주를 시장 밖으로 내보내는 기업이 동시에 늘고 있다. 상법 3차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자사주는 들고 있으면 언젠가 쓸 수 있는 카드”라는 기존 인식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사주 소각 공시는 2주 새 50건 수준으로 급증했고, 소각이 아닌 ‘자기주식 처분 결정’ 공시도 같은 기간 53건을 기록하며 동반 증가세를 보였다.
#소각이냐 처분이냐…입법 리스크가 ‘자사주 전략’을 갈랐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성격의 상법 개정안이 있다.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이르면 2월 24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처리 시점이 가까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처분 규제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고, 그중 일부는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 내 소각”을 기본으로 하되,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 경영상 필요 등 예외를 주주총회 승인 등 요건으로 제한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시장이 주목하는 포인트는 ‘소각을 늘리면 주주환원 강화’라는 단순 공식이 아니다. 자사주가 처분되는 순간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구조를 이용해, 총수 일가가 우호 지분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번 개정안 논의는 그 관행을 제도적으로 묶는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기업들 반응도 갈린다. 현금흐름이 넉넉한 대기업·지주사·금융그룹은 ‘통큰 소각’으로 주주환원 시그널을 강화하는 반면, 중견·중소기업 일부는 자사주를 EB(교환사채)나 제3자 처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해 자금 조달과 방어 논리를 동시에 챙기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20일 TBH글로벌의 공시도 이런 ‘속도전’ 흐름과 맞물려 읽힌다. TBH글로벌은 기취득 자기주식 39만8563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고, 소각 예정 금액은 약 5억 원 규모로 전해졌다. 금액만 보면 소형 이벤트지만, 지금 시장이 보는 건 규모보다도 “회사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라는 방향성이다.
#M&A의 ‘통화’가 사라지면…현금·신주·EB로 비용이 옮겨붙는다
자사주 논쟁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이슈가 단순히 ‘주주환원’에만 걸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그동안 M&A와 지배구조에서도 사실상 ‘통화’처럼 쓰였다. 회사가 자사주를 현물출자하거나 상대 회사와 교환해 지분을 확보하고, 우호지분을 만들고, 때로는 방어벽을 세우는 방식이 가능했다. 최근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 자사주 맞교환이 늘었다는 보도는 ‘의무 소각’ 논의가 오히려 ‘자사주를 지금 빨리 써야 한다’는 신호로 읽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입법이 실제로 강하게 작동해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압박한다면, 기업 입장에선 M&A나 지분 거래에서 선택지가 단순해진다. 자사주로 결제하던 거래는 현금이 필요해지고, 현금이 부족하면 신주 발행으로 희석을 감수하거나, EB·CB 같은 형태로 간접 조달을 늘릴 유인이 생긴다. 이미 ‘자사주 처분’ 공시가 빠르게 늘고, 코스닥에서 자사주 매각이 단기간에 크게 증가했다는 보도 흐름은 그 전조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 소각의 ‘현금흐름 착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사주 소각 자체는 소각 시점에 현금이 나가지 않지만, 결국 과거에 자사주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현금이 이미 빠져나갔고, 소각은 그 자산을 다시 유동화할 수 있는 옵션을 닫는 행위다. 기업이 ‘소각 러시’에 동참하려고 추가 매입까지 확대하면, 그 순간부터는 배당 여력과 투자 여력이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사주 처분은 현금 유입이 생길 수 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가치 희석과 의결권 재부활에 따른 지배구조 이슈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결국 이번 국면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상법 개정안이라는 ‘입법 리스크’가 기업의 자사주를 주주환원 수단으로만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M&A와 지배구조에서 쓰이던 자사주의 기능까지 재편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공시가 늘어난다는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업들이 “법이 바뀐 뒤의 비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핫클릭]
·
삼성전자 임금교섭 '결렬'…OPI가 노사 갈등 넘어 '성과 배분 룰'로 번져
·
롯데웰푸드, 최대 매출 뒤의 경고등 '글로벌 수익성'
·
태광-애경, 225억 깎고 한 달 더 끌었다…'2080 리콜'이 바꾼 인수 조건
·
4월로 미뤄진 SK오션플랜트 딜…강덕수 복귀설까지
·
퇴출 앞둔 '동전주', 액면병합으로 버티기 가능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