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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왜 세종시는 실리콘밸리처럼 안 될까?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는 이유…‘뭉침의 힘’을 주목하라

2017.04.10(Mon) 14:33:10

[비즈한국]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모토로 세워진 지방의 혁신도시와 세종시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부동산 가격 측면에서 보면 큰 성과를 거둔 게 분명하다. 2012년 7월 1일 세종시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가격은 6.7% 상승한 반면, 6개 광역시 가격은 무려 13.9%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이외의 부분을 살펴보면, 많은 문제가 부각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수많은 공무원들이 결제와 보고를 하기 위해 서울을 오가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서울에서 출퇴근하거나 원룸·셰어하우스 등을 얻어 지내는 상황이다. 심지어 한국행정학회는 세종시 이전으로 인한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이 연간 2조 8000억~4조 88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한국행정학회는 세종시 이전으로 인한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이 연간 2조 8000억~4조 88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사진=비즈한국DB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지방의 집값이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월등히 싸고, 또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도시기반시설이 새롭게 갖춰지며 매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왜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것일까? 

 

누구나 그 답을 알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좋은 일자리와 수준 높은 대학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자. 왜 좋은 기업과 수준 높은 대학은 비용이 저렴하고 살기 좋은 지방으로 이주하지 않는 것일까? 

 

이 의문을 푸는 데 엔리코 모레티의 책 ‘직업의 지리학’은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22년간 최고경영자를 지낸 스콧 맥닐리는 “집 사는 데 350만 달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봉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적은 봉급을 받고도 일하겠다는 기술자들이 많은 아시아와 여타 지역으로 실리콘밸리가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미국에서 혁신 부문의 일자리는 늘고 있으며, 그 성장 속도는 경제의 다른 부분보다 훨씬 빠르다. (중략) 예를 들어, 지난 10년에 걸쳐 인터넷, 소프트웨어 그리고 생명과학 부문의 일자리 성장률은 경제 여타 부문들의 전체 일자리 성장률보다 여덟 배 이상 높았다. -본문 15쪽

 

이상한 일 아닌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에 원격화상 회의가 손쉽게 열리고, 더 나아가 이메일과 화상전화 등이 발달한 상황에서 왜 미국의 정보통신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교육이 특별히 대단해서, 미국 학생들이 너무나 뛰어난 성과를 내기 때문에?

 

엔리코 모레티는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일갈한다.

 

미국 근로자들이 유달리 숙련도가 높아 첨단기술 일자리가 미국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해 미국이 재능을 갖춘 인력을 압도적으로 많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혁신 부분이 미국에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신화에 가깝다. 미국 학교들의 낮은 학업 수준, 특히 첨단기술 기업에 가장 중요한 수학과 과학에서의 낮은 수준 때문에 평균적인 미국의 청소년은 대부분의 다른 선진국 및 신흥국 또래보다 처진다. -본문 24쪽

 

정확한 지적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학생들은 과학 분야에서 하위권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PISA란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성취도를 측정하는 대규모 시험으로 2000년 이후 3년마다 시행되고 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미국 특정지역에 첨단기술 분야의 기업들이 집중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전통기업과 혁신적 기업의 이동성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엔리코 모레티의 지적이다.

 

전통적 산업은 국외로 이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혁신적인 기업들을 옮기기는 훨씬 어렵다. 장난감이나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그 공장을 이를테면 중국이나 인도에 있는 완전히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략) 철도나 항구가 가까이 있기만 하면 그 소재지가 정확히 어디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같은 논리가 혁신적인 기업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생명공학연구소나 소프트웨어 기업을 멀리 인적이 떨어진 곳으로 옮겨놓고 그 연구소나 기업이 계속 혁신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혁신을 창조하기는 훨씬 더 어려우며, 혁신 아이디어는 고립 상태에서 절대 탄생되지 않는다. 혁신적 생산을 위해서는 적절한 생태계를 찾아내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어떤 부문보다 더, 첨단기술 산업의 성공은 단지 그 근로자들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그 기업을 둘러싼 전체 지역 경제에 달려 있다. (중략)

 

혁신적 산업은 한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이런 뭉침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화상 회의, 이메일, 인터넷도 이러한 뭉침의 정도를 낮추지 못한다. -본문 25쪽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는 IT 혁신 기업들이 몰려 있다. 사진=위키미디어코먼스


미국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혁신산업의 중심지는 나날이 비대화되고, 또 이 중심지를 향한 이동의 행렬에는 끝이 없다는 게 엔리코 모레티의 주장이다. 그럼 왜 혁신기업들은 이들 중심지를 향해 이동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세 가지를 싸잡아 ‘뭉침의 힘(force of agglomeration)’이라고 부르는데, 두터운 노동시장, 전문적인 사업 인프라의 존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지식 전파가 그것이다. (중략)

 

어떤 지역에 몇몇 첨단기술 기업을 일단 유치하면, 다른 첨단기술 기업들이 뭉치기에 더더욱 매력 있는 곳으로 그 지역이 변모한다는 것이다. 많은 숙련된 개인들이 혁신적인 산업의 일자리를 찾아나서고 혁신적 기업들이 숙련된 근로자를 구하는 가운데 자기 지속성을 가지는 균형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중략)

 

첨단기술 산업은 이용 가능한 숙련 인력, 전문적인 공급업체들 그리고 지식의 흐름을 지원할 만큼 충분히 대규모인 혁신 중심지에 자리 잡음으로써, 더 창의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변모한다. -본문 26~27쪽

 

혁신 기업들은 뭉침으로써 더 창의적이고 더 생산적이 된다. 사진=구글 홈페이지 캡처


쉽게 이야기해, 뛰어난 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고 기업들이 모여 있어서 지식의 교류는 물론 경쟁이 촉진되는 환경이어야만 첨단기술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어떤 곳이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추가적인 설명이 불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에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왜 그 정책이 아직까지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지도 한번 점검해보자는 이야기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한계가 있으며,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쟁에서 승패가 갈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경제(2016. 9. 19.), “세종시 공무원 하루 평균 출장비 ‘7700만원’…세종청사 통근버스 예산 ‘99억원’”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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