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사상 최악의 고용 한파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가 제네릭 약가 인하를 추진하면서 1만 5000명가량이 실직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다 미국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으로는 수익성 악화, 밖으로는 통상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갇힌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한국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 국회가 무역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산 자동차, 목재,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즉각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나온 메시지라는 점에서 재계에서는 무역합의의 파기 선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이행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진의를 분석하며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지난해 양국 발표에서 관세율이 25%에서 15%로 인하하는 품목에 의약품은 포함되지 않아 현재까지 무관세가 적용 중이다”면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약품에 즉각적으로 25%의 관세율이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품이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고율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대형 바이오 기업의 탈한국 기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두면 관세 적용 장벽을 피하는 것은 물론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수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은 미국 현지 대규모 생산시설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해외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말 4600억 원을 투입해 미국 소재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미국 생산공장을 인수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영국 소재 글로벌 제약사 GSK의 항체의약품 생산시설을 2억 8000만 달러(4136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SK바이오팜도 지난해 6월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를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 세노바메이트)’ 생산기지로 검토 중이다.
관세 리스크 해소를 위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은 역설적으로 국내 제조업 공동화 공포를 키운다. 가뜩이나 국내 고용지표가 나쁜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 고용 시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도가 낮은 국내 중소 제약바이오기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중소형 제약사들은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추진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제네릭 약가 상한가를 현행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에서 40%로 낮추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가장 먼저 출시된 제네릭에 대해 1년간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의 59.5%를 적용하던 가산 제도도 폐지하고 동일 성분의 제네릭 20개까지 상한가를 적용하던 것을 10개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평균 이익률이 4.8% 수준에 불과한데 제네릭 약가가 더 인하되면 신약 개발을 위한 재투자 여력 확보는커녕 생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조용준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부위원장(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 동구바이오제약 회장)은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 한국제약협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린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 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서 “중소·중견 제약사에 제네릭 수익은 신약 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는 물론 GMP 생산시설 유지를 위한 재투자 재원”이라면서 “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가 끊기면 혁신은커녕 공장 가동조차 불투명해진다”고 토로했다.
제약업계는 경영 위기가 결국 고용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제약업계에서는 의약품 2만 1000여 개의 약가가 인하되면 매년 최대 3조 6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일자리 약 1만 4800개가 상실될 것으로 예측한다. 제약업계 종사자가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10%가 넘는 인원이 길거리로 내몰 위기에 처한 셈이다.
노연홍 비대위 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급격한 약가 인하 정책 추진은 R&D 투자 위축,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대규모 일자리 감축 등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책의 속도와 방식, 적용 범위에 대해 자문 현장과 충분한 소통과 영향 분석이 선행돼야 하며 국민보건산업 성장, 건강보험 재정 간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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