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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안아키'가 왜 위험한가

잘못된 지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친다

2017.06.02(Fri) 18:15:36

[비즈한국] 1993년 미국에서 방영이 시작된 한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외계인, 인체발화, 도마뱀인간과 같은 초자연 현상이나 정부와 기업에 비밀스런 조직과 같은 음모론이 실재한다는 가정 아래 전개된 이 드라마는 바로 ‘엑스-파일(The X-files)’이다. 이런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드라마의 대사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는 특히 유명해졌다. 

 

그런데 당연히 그저 드라마일 뿐인 이런 이야기들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인류는 달에 가지 못했다거나(사막이나 영화세트에서 달착륙 장면을 찍었다고들 한다), 지구 온난화는 거짓이며 거대 자본과 그에 매수된 과학자들의 사기극이라거나, 지구가 사실 편평하다거나, 미국의 51구역에 UFO와 외계인 연구시설이 있다거나 등등의 허황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한국판 음모론 중에는 무슨 일이든 모두 북한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 

 

영화 ‘엑스-파일’ 포스터.


어릴 적 읽던 ‘미스터리 대백과’류의 이런 얘기를 누가 믿나 싶지만 ‘flat Earth(평평한 지구)’로 검색을 해보면 쏟아져 나오는 단체들의 홈페이지와 그들이 만든 다큐 동영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정말 진지하다! 

 

음모론의 배후들로 주로 지목되는 것들은 미국 정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나치, 유대인, 외계인 등이다. 이와 같은 거대 권력이나 비밀 결사 조직이 정보를 통제하고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음모론의 기본 골격이다. 영화나 소설로 본다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사를 설명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이를테면 내가 아침 출근길에 지각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자.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고 그 밖에 자동차 사고로 인한 교통 정체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모론적인 추론을 해보자면 이런 식이 된다. 사실 나는 정부와 거대 제약회사가 결탁한 비밀 생체 실험의 대상이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몰래 관찰하는 시스템에서 이상이 생겨서 내가 눈치챌 위기에 처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나의 출근길 앞 2km 지점에서 교통사로를 고의로 만들어내고 출근 경로의 모든 교통신호 시스템을 조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모든 시민과 공무원 등은 매수하였거나 기억을 조작하거나 했다고.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이 거대 자본과 정부에 매수되어 조작된 이론을 사람들에게 내세우며 속인다는 식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정도로 훌륭한 조직력, 경제력, 인맥 관리와 비밀 유지 능력을 갖춘 비밀조직이 왜 겨우 그런 일을 벌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예방접종이 사실은 거대 제약회사와 이에 매수된 과학자, 의사 들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백신이 사탄숭배자들과 프리메이슨의 음모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이 정도면 세상 참 피곤하게 산다 싶은데 문제는 이게 단순한 믿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2015년 1월 미국의 서부지역에서 이른바 ‘디즈니 홍역 사태’로 불리는 대규모 홍역 전염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최초의 발병지가 디즈니랜드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홍역 보균자가 디즈니랜드를 방문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최초의 발병자 9명이 발생했는데 이들 중 8명이 홍역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였다. 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여 만에 7개주로 확산되어 150여 명의 환자를 만들어낸 것은 예방접종이 잘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디즈니랜드에 있었던 사람들의 백신 접종률은 최저 50%에서 최대 86%로 추산되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96~99%가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한 번 예방접종으로 평생 걸릴 일이 없는 병이어서 이미 선진국에선 거의 소멸된 것으로 취급되던 홍역이 21세기 미국에서 유행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최근에 ‘안아키’라는 낱말이 뉴스와 인터넷에 오르내려서 뭔가 싶었다. 찾아보니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이름의 모임인데 그들의 주장이 앞서 말한 음모론이나 대체의학과 같은 사이비과학과 다름없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란 것도 있는 모양이다. 잘못된 지식을 신봉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아이가 아픈데도 적절한 치료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다. 또 백신을 거부하는 행위는 내 아이뿐 아니라 집단면역의 효과에 기대어야 하는 다른 아이들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주장과 행위를 한다지만, 자신과 다른 이의 아이를 정말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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