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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대 아름이는 동료가 되고 싶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나는 오타쿠, 공대녀들 모여라" 이공계를 꿈꾸는 여학생들의 멘토

2017.06.02(Fri) 19:29:22

[비즈한국]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유행한 ‘공대 아름이’는 공대에서 여성이 얼마나 소수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10:1의 성비도 놀랍지 않은 이·공계에서 소수인 여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남자 중심의 문화 탓에 공대 진학을 지레 포기하거나 중도 탈락하는 여성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남자들의 세계인 공대에서도 가장 남성적인 로봇 분야에서 여성과학자들을 돕겠다고 나선 단체가 있다. 2015년 11월 창립한 소셜 벤처 네트워크인 ‘걸스로봇(Girls Robot)’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더 많은 여성들이 이공계 분야에 진출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가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진주(39) 걸스로봇 대표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지지 선언,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와 함께 여성 100명 토크콘서트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집이 있는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대표를 5월 2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인총연합회 건물에서 만났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와 걸스로봇을 소개해달라.

“나는 왕년의 과학영재이자 과학기술자가 되는 데 실패한 이무기였다. 이 일은 평행우주 속에 살고 있는 발레복을 입은 로봇 소녀, 어쩌면 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녀를 지금 여기로 불러내 해원(원통한 마음을 풂)하고 응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걸스로봇은 로봇으로 상징되는 이공계에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컨퍼런스 위원회 참석, 네트워킹 파티 주최, 펠로우십(장학생) 지원, 이공계 여성 멘토 인터뷰, 교육서 저술, 정책 제안, 테크노 페미니즘 스터디, 북리뷰, 팟캐스트 진행(예정) 등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닥치는 대로 실험하고 실행하고 있다. 얼마 전, 심상정 후보 지지선언을 통해 젠더 이슈의 공론화를 시도했고, 위셋과 함께 이공계 여성 100명과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앞으로 2기 펠로우십 선정과 테크페미 정책해커톤 등을 앞두고 있다.”

 

―걸스로봇의 메인 타깃은 누구인가.

“여대생들로 생각한다. 그 시기 인생이 조금만 바뀌어도 전체 인생이 확 바뀔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대생들이) 인터뷰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공계에서 여성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소수자로서 삶의 질의 저하를 가져 오기도 한다. 수가 적다는 것 자체가 학술적으로도 소외되고 정치적으로도 소외되는 그런 느낌이 있다. 예컨대 최근 행사에서 로봇동아리에 있는 여학생이 ‘로봇 동아리의 단 3명뿐인 여자는 밥은 함께 먹고 싶지만 과제는 함께 하기 싫은 존재’냐고 질문을 했다. 남자들이 여자를 연애 대상으로 여길 뿐 진지한 동료로는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또한 남자는 하드웨어, 여자는 소프트웨어로 역할 분담을 요구한다고 한다. ‘나를 동료로 봐 달라’는 말이 소수자니까 나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각 교육단위별로 있다. 초등교육에선 여자아이도 본인의 취향, 흥미나 호기심을 죽이지 않고 실험하고 만들어 보는 교육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아이는 공주놀이, 아기, 화장놀이, 남자아이는 자동차, 로봇으로 분류돼 있다. 어른들의 제한적 상상이 아이들에게도 제한적인 가능성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학교 교육에서 공개적으로 바꿔야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는 단계마다 이과, 과학고를 지망하는데 어떤 제약 없이 가고 싶으면 가는 분위기도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정의당 지지선언을 했다. 지지 배경과 정치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나는 정의당원은 아니다. 걸스로봇이 여성운동 성격의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대선 후보들 중 그런 지향이 명확하게 보이는 후보가 심상정 후보였다. 여러 후보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고 유일하게 엄마 체험을 했고 슈퍼우먼방지법이라는 법안을 냈다. 걸스로봇의 정신과 맞는 부분이 있었다. TV토론에서 1분을 성소수자들을 위해 쓴 것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소수자가 될 수 있고, 우리 모두에겐 한 가지 이상의 소수자성이 있다. 그때 목소리를 함께 내주고 손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법안으로는 일반 산업계 영역에서도 여성 채용 장려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또한 육아 휴직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법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가시적으로 여성 대표를 임명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부에 강경화 장관을 임명하고 분위기가 좋았다. 전문성을 갖고 대표성이 있는 여성들이 분명히 있더라. 여성부, 문화부를 넘어 외교부나 어쩌면 국방의 영역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시혜 측면이 아니라 그 분들의 능력을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정치, 행정 영역에서 볼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다.”

 

―걸스로봇을 창업하고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내가 공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권위가 부족한 것에 대한 한계는 느꼈다. 권위가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표성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1년 반 동안은 ‘이 바닥에서 뭘 얻어 먹으려고 왔냐’는 등 안 좋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오해는 없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돈을 못 버는 것이 실패라면 실패일까? 쓰기만 하고 있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가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사업 모델은 어떻게 되나.

“처음 3년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존재 자체가 없었던 영역이어서 ‘처음 3년은 생태계를 만들겠다’라는 상태였고, 1년 반 동안 돈을 써왔다. 최근 처음으로 WISET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 행사를 계기로 기관과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방향도 생각하게 됐다. 기관의 일을 하면서 특유의 ‘관’ 냄새 나는 행사를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 수 있다. 생태계가 커지게 되면 정책단계에 참여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

 

 

―‘쓰는 단계’에서 돈은 어떻게 마련하나. 

“남편이 버는 돈의 반은 내 것이다. 내가 직업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최소 4년 정도는 완전 헌신했다. 그 시간과 기회비용, 서울의 중앙 일간지의 기자의 연봉과 네트워크를 다 포기한 것에 대해 당연히 애 키우는 게 엄마의 일이 아니라 보상이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남편도 납득했다. 그렇게 해서 돈을 쓰고 있다. 나 또한 차, 가방, 목걸이를 팔았다.” 

 

―처음에 걸스로봇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남편은 내가 ‘오타쿠’인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무슨 일을 어떤 지향으로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1년 반이 지나니까 조금 아는 것 같다. 열심히 해라 정도 반응이다.” 

 

―최근 책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책인가. 

“공저인 책은 ‘소년소녀, 과학하라!’, ‘로봇스케이프’ 두 권 나왔다. ‘소년소녀, 과학하라!’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걸스로봇이라는 운동을 하게 된 계기, 왜 여학생들이 이공계에 많이 와야 하는지에 대해 썼다. ‘로봇스케이프’는 예를 들면 ‘임신, 출산을 대신해 주는 로봇이 있다면 여성의 삶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한 번 상상해보자’고 해서 쓰게 됐다. 혼자 쓴 책은 아직 안 나왔는데, 여성 멘토들의 장점뿐만 아니라 인생의 실수, 실패, 꼬인 것을 다 포함해 조금 더 깊은 인터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알랭 드 보통은 철학을 사랑 얘기로 풀어낸다. 나도 과학 30%, 사랑 얘기 70% 정도의 책을 써보면 어떨까 출판사와 얘기하고 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 일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은 있다. 맞는 방향이란 확신도 있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때까지 돈을 벌어서 생존해야 한다. 지금은 나가는 돈이 버는 돈 보다 훨씬 많으니까, 어떤 형태로 헤쳐 나갈지 고민이다.”

 

―걸스로봇이 이루고 싶은 미래상이 있다면.

“나처럼 로봇을 사랑하는 취향, 방향성,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학생들이 나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모양 생긴 그대로,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애를 낳거나 낳지 않거나 그냥 살았으면 좋겠다. 꼭 결혼을 해야 해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데 젊을 때 낳아야 하니까 같은 계산이나 포기 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 생긴 대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그 혜택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꼭 ‘알파 메일(alpha male)’이 돼서 연봉을 얼마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자기 생긴 대로 살 게 될 수 있다.”

 

―꿈이 있다면.

“이 운동도 10년이 한계라고 본다. 3년은 생태계 만들고 나머지 7년은 장학재단을 확대하고 돈도 벌면 내가 더 이상 나서서 얼굴 마담을 할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공계에서 글 쓰거나 방송하면서 강하게 캠페인 추진하는 여성이 없어서 내가 대신하고 있다. 무대에 대신 올라가서 작두를 타고 있는 건데,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 나도 공부를 하고 싶다. 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다. 사회적 유산을 만들고 그 유산이 내가 아니어도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좌절하는 이공계 여성에게 한 마디 한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지금 모두가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데, 당신도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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