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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남자들이여, 요리하라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2017.10.24(Tue) 09:30:31

[비즈한국] 대학 다닐 땐, 연애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사귀자고 들이댔다가 까인 적도 많고요, 만나는 중에 차이고 후배에게 빼앗긴 적도 있어요. 연애에 자신감을 얻으려고 책도 참 많이 읽었는데…. 그런데 연애보다 더 힘든 건 결혼이더군요. 학교에서 만난 아내를 오랜 시간 쫓아다녔는데요. 청혼을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습니다.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 교실에 수강 신청을 했어요.

 

예능 조연출로 일하는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면 시간을 빼 요리를 배웠습니다. “나랑 결혼만 해주면 요리는 내가 할게!” 하고 큰소리 펑펑 쳤지요. 1999년 당시, 요리 교실을 다니는 남자는 극히 드물었어요. 같은 반에 신부 수업을 받는 20대 여성은 많았지만, 결혼하고 싶어 요리를 배우는 남자는 없었거든요. 조별로 실습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저를 찾았어요. “총각, 이리 와서 우리 조 음식 맛 좀 봐. 우리 바깥양반이 입이 까다로운데 남자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저는 아주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어요. 만나는 여자가 없으면 조카딸을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결혼에 난색을 표하던 아내도 요리까지 배우는 걸 보더니 넘어오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남자 청소년들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책 ‘소년이여, 요리하라’(금정연 외 / 우리학교)를 보면, 요리 기술을 배우는 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삶을 스스로 돌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니까요. 내가 먹을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됩니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품성도 많아요. 

 

썩어 가기 직전의 재료를 구해내는 절약 정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혹은 편리하게 또 멋지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창의력, 이번 요리는 망해가고 있다는 걸 진즉에 깨달았지만 그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패기,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결단력, 맛있는 것 한번 먹어보겠다고 개고생하는 지구력,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 살림살이를 잔뜩 벌려 놓은 부엌을 원상 복구시키는 책임감이 만나고 융합하고 폭발하지요. -‘소년이여, 요리하라!’ 5쪽

 

어린 남학생들에게 좋은 페미니즘 교재가 될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주방에서 일하는 습관을 길러두면, 커서 상을 차리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거든요. 성평등과 가사 분담에 있어 좋은 공부도 되고, 무엇보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 최고의 전략을 익힐 수 있어요. 어려서 공부를 하는 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연애하고 결혼 잘 하려는 거잖아요? 힘들게 공부만 하지 말고 짬짬이 요리도 했으면 좋겠어요.

 

20대 남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데요. 남이 이런 말 해주기를 기다리다보면 세월 다 갑니다. ‘출출하면 내가 집에 가서 라면볶음 해줄까? 박찬일 셰프의 특제 레시피로 만든 건데.’ ‘내가 만든 알리오올리오 한번 먹어 볼래? 친구들이 완전 좋아하는데.’ 이렇게 작업을 걸어야 해요. 이 책은 요리의 즐거움과 매력을 칭송하는 한편,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도 소개합니다. 각각의 요리와 함께 즐기기 좋은 책이나 만화도 추천해주니, 요리생활 입문을 위한 최적의 교과서네요.

 

신혼 초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요리를 잘 못했어요. 그 시절에 배운 건 다 까먹었지요. 이제 딸들에게 점수 따려고 다시 요리를 시작했어요. 이 책을 읽고 마트에 가서 애호박부터 샀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침요리 중 가장 쉬운 게 애호박전이랍니다. 뒤집기가 쉽고, 약간 덜 익어도 문제없는 재료니까요. 아내에게 점수 따려고 배운 요리, 이젠 딸들에게 사랑받으려고 다시 시작합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외쳐봅니다. ‘중년 남성이여, 요리하라!’​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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