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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니케이지수 20년 만의 최고치에서 본 '잃어버린 20년'

일본 중앙은행의 버블 억제 실패로 1990년대 자산시장 붕괴 이후 부진의 늪

2017.11.13(Mon) 10:46:29

[비즈한국] 최근 일본을 대표하는 주가지수, 니케이225지수(Nikkei225·니케이지수)가 20년여 만에 최고치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언론 지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일러둘 것은 이번에 돌파한 ‘최고치’는 사상 최고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의 니케이225지수가 389.25포인트(1.73%) 오른 22937로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EPA/연합뉴스


1996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 일본 니케이지수는 22000선에서 거래되었고, 일본의 사상 최고치는 1989년 말에 기록한 38915이다. 일본 주식시장이 198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지금부터 76.8% 상승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일본 주식시장이 2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프=블룸버그


이 대목에서 필자의 졸저, ‘인구와 투자의 미래’는 몇 가지 힌트를 제공한다. 바로 1985년 9월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달러를 약세로 유도하기 위해 합의한 일, 즉 ‘플라자합의’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맨해튼 중심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담, 이른바 플라자 회담에서회원국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안에 합의했다.

 

첫째,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다. 둘째, 이것이 순조롭지 못할 때에는 정부의 협조 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플라자 회담 이후 세계 외환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먼저 헤지펀드를 비롯한 발 빠른 투기 세력들이 달러 매도에 나서고 외국환 상업은행들이 가세하면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플라자 합의 직전까지 1달러당 242엔에 거래되던 환율이 9월 말에는 216엔, 10월 말 211엔, 11월 말에는 202엔까지 하락했다(책 25~26쪽).

 

1980년대의 달러-엔 환율 추이. 그래프=미국 연준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1989년 초에는 드디어 120엔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즉 단 4년 반에 환율이 240엔에서 120엔으로 반토막 난 셈이다. 

 

환율이 짧은 시간에 절반으로 떨어지면, 제일 먼저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한다. 수입 물가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들의 경기가 악화되며 고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일본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1985년 말 5.0%에서 1987년 초 2.5%까지 2.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가 인하되면 경기가 좋아진다. 부동산 담보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융 등 목돈이 드는 물건을 구입할 때, 금리 조건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나 주택 같은 큼직큼직한 소비가 증가하면 기업의 이익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다만 환율 급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었기에 일본 기업들은 수출보다는 국내 소비를 겨냥한 투자, 즉 부동산·리조트 등 위락시설 투자를 급격히 늘렸다.

 

경기가 회복되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등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망설였다. 환율 하락으로 물가 상승률이 안정된 데다, 더 나아가 수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일본 중앙은행의 망설임은 금융시장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버블로 연결되었다. 

 

기업 실적에 이어 수급 여건도 좋아지니 일본 주식시장은 거칠 게 없었다. 1985년 말 일본 니케이지수는 13083으로 마감한 후, 1986년 말에는 18821까지 상승했으며, 1987년 1월 30일에 드디어 20000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일본 중앙은행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내수경기 부양 측면에서 좋은 일이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당순이익과 주가의 비율, 즉 주가수익비율(PER)이 1986년 말 주가 기준으로 49.2배에 이른 것은 대단히 큰 부담이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일본 증시의 평균 PER이 23.6배였음을 감안할 때 1986년 말 일본 주식시장은 역사적인 평균에 비해 거의 2배 이상 고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책 30쪽).

 

일본의 장기 주가수익비율(PER) 추이.


1989년 PER은 67배에 도달했는데, 이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 이유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중요한 투자를 위해 기업을 공개해 자금을 조달할지, 아니면 채권을 발행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최고경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PER이 4배에 불과한 기업을 주식시장에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주식의 기대수익률(주당순이익/주가×100)은 25%인 반면, 은행 대출금리는 그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PER이 낮을 때에는 주식공급이 감소한다. 

 

반대로 PER이 높아질수록 신규공모(상장)이 증가한다. 왜냐하면 주가가 오를수록 시장 대출금리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9년 일본처럼, 시장의 평균 PER이 67배라면, 수많은 기업들이 앞 다퉈 주식을 발행(=증자)하려 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업주식의 기대수익률은 1.5%(=주당순이익/주가×100=1.49%)에 불과하니, 이 돈을 이용해 6% 이자를 주는 채권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인 행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버블 당시 많은 기업들이 증자(및 신규상장)로 유입된 돈을 일본 국채 혹은 해외의 부동산에 투자했던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산가격의 버블은 오래 유지될 수 없으며, 버블이 무너진 다음에는 급격한 폭락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처럼 중앙은행이 적기에 버블을 억제하는 데 실패한 경우에는, 다시 말해 버블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른 다음에는 더 심각한 폭락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프=켄 피셔 ‘3개의 질문으로 주식시장을 이기다’


물론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 주식시장의 장기불황이 꼭 일본 중앙은행의 실책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1997년 발생했던 아시아 외환위기로 은행권이 큰 손실을 입은 것, 그리고 더 나아가 2011년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 등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다만 1990년대의 자산시장 붕괴로 수많은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치명적인 손실을 입지 않았다면,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본 증시가 그토록 긴 시간 침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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