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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민간인 사찰 의혹, '정석'으로 나아가라

폭로 초기 청와대 대응 혼란 야기…합법적인 정보수집 기준도 제도화해야

2018.12.24(Mon) 08:54:05

[비즈한국]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고 정보를 캐고 다닌 다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이럴 때 우리는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공권력이 거꾸로 이런 행동을 하면 두려움을 넘어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우리 현대사는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사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중 수만 명을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감시한 국민보도연맹에서 시작된 민간인 사찰은 줄곧 존재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국군보안사령부를 탈영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민간인 1303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한 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대표적이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특정 현안에 대해 수석·대변인·비서관을 총동원했지만 오히려 국민에게 더 큰 혼란을 안겨다주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민정수석실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을 듣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유가족 사찰로 검찰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발인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보·감찰 기관의 불법 정보수집을 막겠다고 공약했고, 취임 직후엔 국정원의 국내정보담당관제도를 폐지했기에 이러한 의혹 제기 자체로 인해 국민이 받는 충격은 상당히 크다. 

 

청와대는 김태우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도 임종석 비서실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따라서 김태우 수사관의 연일 계속되는 폭로들이 공직자 검증과 정책 수립을 위한 ‘합법적인 정보수집’이었는지, 아니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인지는 향후 사법당국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논란에 편승하는 것은 국론 분열만 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청와대에 느끼는 몇 가지 아쉬움만은 꼭 지적하고 싶다. 

 

폭로 초기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자칫 현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개인의 일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윽고 김의겸 대변인이 해명에 나섰고, 결국에는 김 수사관 업무 총괄책임자인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전면에 등장해서 개별 폭로건마다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수석이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 재직했던 공무원에게 미꾸라지 운운한 것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특정 현안에 대해 수석·대변인·비서관을 총동원했지만 오히려 국민에게 더 큰 혼란을 안겨다주었다. 

 

박형철 비서관은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사찰 의혹 관련 참고자료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체 목록 가운데 10건의 문건을 추려 3건은 조국 민정수석에게까지 보고된 사안이고 1건은 자신까지 보고를 받은 내용이며, 나머지 6건 가운데 4건은 이인걸 특감반장 선에서 폐기됐고, 2건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고되지 않은 문건이라고 밝혔다.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관련 보고, 한국자산공사의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관련 보고, 민주당 유동수 의원 재판 관련 혐의 보고 등 4건은 사찰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라 폐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 비서관은 김 수사관에게 “앞으로 이런 첩보를 수집하지 말라”는 취지로 제재했다는 것인데, 불법 정보를 수집했다면 그 즉시 감찰반원직을 박탈하고 검찰로 복귀시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위 문건 중 일부는 작성된 지 1년이 지난 것도 있다. 비위를 알면서 방치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합법적인 정보수집과 민간인 사찰에 대한 기준이 법령으로 제도화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장에서 의욕이 넘칠 경우에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대통령 친인척을 비롯해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한 상시적 감찰을 담당하는 특별감찰관 임명도 서둘러야 한다. 이석수 초대 감찰관이 2016년 8월 사퇴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석이다. 차제에 김 수사관이 소속됐던 특감반의 기능은 법률로 만들어진 특별감찰관 쪽으로 업무를 완전히 이관하는 것이 맞다. 여기에 더해 공직자비리수사처가 도입되어 업무를 분장하면 업무의 중복도 없애고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마주친 첫 번째 고비로 보인다. 바둑에서는 어려운 국면일수록 묘수가 아닌 정석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대검찰청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사건들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지휘관계에 있었던 윤석열 지검장과 박형철 비서관의 관계를 고려해 원칙대로 피고발인 주거지 관할 검찰청으로 이송한 것은 일단 ‘정석’으로 보인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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