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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첫 화부터 질주하는 세상 슬픈 이야기 '미안하다, 사랑한다'

보는 이를 끝까지 애닳게 만드는 처절한 시나리오…터키 중국 등서 '리메이크'

2019.01.15(Tue) 10:18:04

[비즈한국]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 가장 비극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모래시계’도 떠오르고, 지난번 소개한 ‘다모’도 생각나고, ‘발리에서 생긴 일’도 유력해 보인다.

 

이와 만만치 않게 순위권을 다툴 작품으로 ‘미안하다, 사랑한다(미사)​’​가 있다. 주인공을 맡은 소지섭은 2004년 1월 3일 시작한 ‘발리에서 생긴 일’로 포문을 열더니, 2004년 12월 28일 종영한 미사에 출연하며 일약 2004년의 비극적 주인공의 왕좌를 거머쥐었다.

 

이형민 PD와 이경희 작가가 ‘상두야 학교 가자’​에 이어 다시 한 번 손을 잡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당시 신인이었던 임수정은 이 작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며, 소지섭에게도 대표작으로 남는다. 임수정이 입은 파스텔톤 니트와 어그부츠, 사자머리를 하고 반다나를 착용한 소지섭의 헤어스타일도 화제였다. 사진=KBS 홈페이지

 

‘미사’는 초지일관 이 드라마는 세상 슬픈 이야기이며, 혹시나 당신이 원할 해피엔딩은 1도 없음을 명확히 한다. 호주로 입양되었으나 양부모에게도 버림받아 들개처럼 자라온 차무혁(소지섭)은 돈 많이 벌어 아마도 가난 때문에 자신을 버렸을 생모를 호강시켜주고 싶은 남자. 비록 지금은 호주로 여행 온 아시아 관광객들의 돈을 훔쳐 하루하루 사는 건달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여자 지영(최여진)이 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지영은 무혁을 사랑하지만 부자인 호주 마피아 제이슨의 돈이 더 좋다며 무혁을 쿨하게 버린다. 지영을 잊을 수 없어 그녀의 결혼식까지 찾아갔지만, 맙소사, 제이슨을 죽이려는 이의 총을 맞고 그 중 한 발을 제거하지 못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엄마에게 버림  받은 입양아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도 버림받는 걸로 모자라 얼마 살지 못한다는 내용이 첫 회에 바로 등장하니, 우리는 차무혁이 죽을 것이라는 슬픈 결말을 알고 ‘미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간 꿈꿔왔던 것을 뒤늦게나마 하고자 한다. 지영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은 무혁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엄마를 찾으러 한국에 온다. 비록 자기는 곧 죽겠지만 엄마는 호강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슬픈 희망이 있었으리라.

 

‘미사’ 주인공들. 은채(임수정)와 무혁(소지섭), 민주(서지영), 윤(정경호)의 사랑은 항상 엇갈린다. 은채는 오랜 기간 윤을 짝사랑했지만 윤은 민주를 바라봤고, 민주는 윤과 사귀다 복수를 결심한 무혁의 유혹에 넘어간다. 은채는 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무혁의 사랑에 뒤늦게 응답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그렇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자신에게는 쌍둥이 누나 서경(전혜진)이 있었는데, 고아원에 맡겨진 쌍둥이 누나는 어릴 적 사고로 정신연령이 낮은 채로 아버지도 모르는 아들 갈치를 낳아 기르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의 생모는 부자인 데다 잘나가는 톱스타 가수 아들 최윤(정경호)과 함께 그림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여배우 오들희(이혜영)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에 남아 있는 유탄으로 시시때때로 성격이 폭주하는 무혁의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상황.

 

자, 이 상황에서 한국 드라마 주인공들이 택하는 방식은 하나, 복수다. 어차피 곧 죽을 인생, 잃을 것도 없고 악만 남았다. 무혁 역시 마찬가지로, 오들희가 오매불망 외치는 “아들, 마이 썬~” 최윤에게 접근해 매니저가 되고, 최윤이 사랑하는 여자 강민주(서지영)를 유혹해 그를 비참하게 만든다.

 

세상 다정한 모자인 윤과 오들희(이혜영). 왕년의 여배우였던 오들희는 윤을 위해 심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크나큰 모성의 엄마이자, 그를 위해 죽어가는 남의 심장을 받으려 애쓰는 이기적인 모성의 엄마이다. 그러나 사실 오들희는 그가 낳은 자식이 죽어버린 줄 알고 윤을 입양했던 것이다. 사진=드라마 캡처

 

문제는 여기서 무혁이, 최윤과 함께 자라 최윤을 짝사랑하는 코디네이터이자 친구인 송은채(임수정)를 사랑하게 된다는 거다. 자신과 누나는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엄마는 오직 최윤만 바라보는데, 사랑하는 여자 은채 역시 그 최윤의 곁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그 와중에 ‘미사’는 무혁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데, 최윤의 심장이 좋지 않아 이식이 필요한 상태에서 엄마 오들희가 무혁이 시한부임을 알고 내심 이식을 해주지 않을까 희망하는 걸 알아차린다.

 

나를 버린 나의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도 억하심정인데, 죽음을 앞둔 내가 아닌 다른 자식을 위해 심장 이식을 해주기를 원한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미쳐 날뛰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겠는가.

 

이혜영은 속물적이면서도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 오들희를 특유의 독특한 목소리와 카랑카랑한 연기로 만들어냈다. 그가 항시 외치는 “아들~ 마이 썬”​은 여러 예능에서 패러디되곤 했다. 그나저나, 왜 대한민국 엄마들은 아들의 이름을 놔두고 “아들”​ 하고 강조하며 부를까. 사진=드라마 캡처

 

‘미사’는 15년이 지난 지금 봐도 처절하고 외롭고 아픈 무혁이 불쌍하여 눈물 흘리게 되는 드라마다. 비록 무혁이 은채에게 포효하듯 내지르는 유명한 명대사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밥 먹을래, 나랑 잘래?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는 지금 이 시대에 통용되기 어려운 폭력적인 장면이다. 물론 이유가 있다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이 과했던 오들희의 집착적인 사랑(심지어 다 큰 아들을 목욕시키는 장면도 나온다!)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케이블 채널의 재방송과 유튜브의 ‘미사’를 보며 눈물 흘리며 댓글을 단다(해마다 겨울이면 정주행을 반복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미사’의 중독성이 강했다는 거다. ‘미사폐인’이 무더기로 양산된 건 물론 터키와 중국,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리메이크됐을 정도.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로 시작되는 소지섭의 명대사 장면은, 사실 오늘날 기준으로 봤을 때 폭력적이다. 사랑하는 여자라지만, 강제로 차에 태워 자칫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 그러니 드라마 보고 섣불리 따라하는 우를 범하지 말 것.  사진=드라마 캡처

 

그뿐이랴, 지금도 어그 부츠를 신거나 알록달록 파스텔톤 헐렁한 니트를 볼 때면 으레 ‘미사’의 임수정이 떠오른다. 노래 좀 부른다 하는 남자들이 감성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으레 선택하는 박효신의 ‘눈의 꽃’도 ‘미사’에서 주야장천 흐르던 OST였다. 참고로 ‘미사’의 OST는 ‘눈의 꽃’ 외에도 메인타이틀곡과 ‘마지막 선택’ ‘아들과 엄마’ 등 여러 곡이 인기였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선택’은 ‘하얀거탑’의 ‘B Rossette’와 ‘패션70’​s’의 메인 테마곡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격정적인 OST.

 

뽀송뽀송 열혈 청년이던 소지섭과 지금도 동안이지만 그땐 더 소녀 같았던 임수정이 펼치는 비극적인 사랑,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적인 엄마 오들희를 연기하는 이혜영의 독특한 톤의 대사가 인상적이던 ‘미사’. 미세먼지가 극성인 이 겨울, 방 안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무혁과 은채와 함께 눈물 흘려보는 건 어떤가.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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