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금의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이 아주 많은 별이 있다. 처음부터 우주에 이렇게 별이 많지는 않았다. 태초의 우주에는 별도, 은하도 없었다. 그저 아주 미미한 양자역학 스케일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고 미미한 혼돈이 펼쳐져 있었을 뿐이다. 지루한 암흑만이 가득했던 우주에 언제부턴가 하나둘 별빛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우주의 역사에는 처음으로 어둠을 밝힌 최초의 별이 있었다. 천문학에서는 이러한 별을 팝(pop) III 별이라고 한다. 첫 번째 세대의 별은 우주 역사를 통틀어 분명 존재했을 테지만, 너무 먼 과거의 일이다 보니 아직 그 실체를 직접 본 적은 없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린 이미 아주 유명한 현장에서 그토록 찾고 싶었던 Pop III 별빛을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천문학에서는 별의 세대를 크게 Pop I과 II로 구분한다. 태양과 주변 젊은 별들은 Pop I 별이다. 태양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약 100억 년 정도 된 별은 Pop II 별이다. 별의 세대는 별이 품고 있는 무거운 중원소 함량으로 구분한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별은 더 무거운 원소를 우주에 남기고 떠난다. 아직 중원소가 많지 않은 과거에 태어난 나이 많은 별은 중원소 함량이 적은 반면, 우주에 중원소가 많이 퍼진 이후에 뒤늦게 태어난 젊은 별은 더 많은 중원소를 품었다.
Pop II 별은 오늘날 관측할 수 있는 구상성단에 많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이조차 우주 최초의 별은 아니다. 그보다 더 앞선 진정한 첫 번째 세대가 있었다. 그래서 pop II보다 앞선 pop III 별이라고 부른다. 이 별들은 빅뱅 직후 처음 태어난 별이었을 것이다.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다른 중원소가 전혀 없던 시절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즉, 중원소 함량이 완벽하게 0이어야 한다.
아직까지 이러한 별이 실제 관측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안타깝게도 pop III 별은 너무 질량이 무거운 나머지, 안정적으로 빛날 수 있는 기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찰나 잠시 빛나다가 곧바로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지금에 와서 아무리 먼 우주를 뒤져봐도 살아 생전의 pop III을 직접 볼 기회는 매우 적다.
최근 들어 간간히 pop III에 버금가는 아주 순수한 별들이 발견되고는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중원소 함량이 비교적 적은 별에 불과하다. 중원소를 전혀 품지 않은, 진정한 pop III 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있더라도 아주 멀리 있을 테니, 개별 별빛 하나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Pop III 별만 모여 있는 최초의 은하를 보는 건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 끝자락에서 발견한 대표적인 은하 GN-z11이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가장 먼 은하 중 하나로, 최근 제임스 웹이 더 자세히 관측을 진행했다. 이 은하는 빅뱅 이후 우주가 고작 4억 년밖에 안 된 아주 어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우주에 아무런 별도 은하도 빛나지 않았을 이른바 암흑시대의 경계에 걸쳐 있다.
그런데 이 현장에 놀라운 존재가 숨어 있었다. 너무 흐릿해서 놓치기 쉬운 아주 작은 얼룩이 GN-z11 은하 바로 옆에 나타났다. 제임스 웹이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더 긴 적외선을 관측한 덕분에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은 얼룩에서는 금속 성분이 있다면 보여야 할 금속선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아주 강한 헬륨 II의 방출선이 나타난다. 탄소나 질소와 같은 금속은 거의 없고 오로지 이온화한 헬륨만 아주 많이 있다는 뜻이다. 헬륨이 이온화하려면 아주 뜨거운 온도여야 한다. 이곳의 온도가 적어도 10만 K가 넘어 헬륨이 한꺼번에 이온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순수한, 뜨겁게 이온화된 헬륨만 가득한 건 정확히 Pop III의 별빛에서 기대할 수 있는 특징과 일치한다.
놀라운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이후 추가 관측에서, 정확히 똑같은 얼룩에서 이온화된 헬륨뿐 아니라 수소의 흔적까지 검출됐다. 즉 관측이 잘못된 게 아니라 분명 한자리에 금속의 흔적이 전혀 없는, 오로지 수소와 헬륨만 모인 곳이 있다는 의미다. Pop III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 수상한 현장이 바로 옆 GN-z11 은하와 비슷한 거리에 있는 것이 맞다면, 이 얼룩은 중심 은하로부터 약 3000광년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룩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각각 C1과 C2 영역이라고 구분한다. 그 중에서 C1은 정말 그 어떤 금속 성분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아주 순수한 수소와 헬륨 덩어리로 보인다. 아주 순수한 Pop III 별이 모인 영역일 수 있다. 반면 C2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다른 원소로 조금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직전 일어난 초신성 폭발의 영향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 얼룩은 순수하게 Pop III 별만 모여 있는 성단과 그 주변에 이제 막 초신성이 폭발하고 금속 성분의 때가 묻으면서 연이어 다음 세대 Pop II 별이 탄생하고 있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 역사상 첫 번째 세대의 별에서 바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우주 최초의 세대 교체 현장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얼룩에 그리스 신화 속 젊음을 상징하는 신의 이름 ‘헤베’를 별명으로 붙였다.
GN-z11 은하는 우주 초기 은하지만, 중심에 블랙홀을 품고 있다. 하지만 블랙홀만의 에너지로는 덩치에 비해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GN-z11의 모습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마 이 은하에 진화 단계를 거치고 죽음을 앞둔, 무겁고 밝은 별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상당히 오염된 금속 성분의 흔적도 선명하게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설명은, GN-z11 은하에도 순수하고 눈부신 pop III 별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희미하지만 강렬한 헤베의 얼룩 속 빛을 분석한 결과, 이곳에는 대체로 태양 질량의 10배에서 100배 사이의 무거운 별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측된 헤베의 스펙트럼과 빛의 특징을 설명하려면, 가벼운 별에 비해 무거운 별이 더 많이 모여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pop III 별의 모습과 일치한다. 태초의 별은 지금보다 질량이 훨씬 무겁게 되고, 자연스럽게 별의 수명은 아주 짧아진다.
이렇게 강렬한 태초의 별빛은 주변 우주 공간의 수소 구름을 순식간에 이온화시켰을 것이다. 헤베 얼룩에서 나타나는 이온화된 수소와 헬륨의 방출선은 그러한 가능성을 입증한다. 이렇게 우주가 통째로 이온화되면서, 모든 원자가 깨지고 우주는 한 차례 투명한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를 빅뱅 직후의 재이온화 시기라고 한다. 만약 이번에 발견된 헤베 얼룩이 정말 pop III 별만 모여있는 우주 첫 세대의 성단이 맞다면, 드디어 재이온화 시기 그 현장을 직접 바라본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우주의 어둠이 끝나고 본격적인 빛의 시대로 접어드는 그 문턱의 시대, 우주의 새벽을 본 것이다.
이처럼 머리 위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우주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신간 ‘지구인에게, 별로부터’를 소개한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아주 익숙한 별들,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 전갈자리의 안타레스하면 흔히 별자리, 신화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 별빛이 품고 있는 우주의 비밀, 몽상가들의 위대한 발견들, 그리고 그 별빛이 우리의 역사에 남긴 영감과 흔적을 떠올린다.
어떤 이는 별빛을 보고 왕을 농락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별빛을 보고 자유를 향한 대이주를 꿈꾸기도 했다. 또 오래전 바다를 누비던 항해사들의 길잡이가 되었던 별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는 탐사선들에게도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왜 별빛을 바라볼까?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별을 왜 바라봐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한 적이 있다. “수백, 수천 광년을 날아온 별빛이 그 누구의 눈동자에도 닿지 못한다면, 그 별빛은 얼마나 서운할까.” 어쩌면 이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상 처음 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고 우주의 비밀에 다가섰던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자신의 발견을 담은 책에 이런 멋진 제목을 붙였다.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직역하자면 별의 소식을 전한다는 뜻이다. 별빛을 바라보고 하늘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지구인에게, 별로부터’는 바로 별이 우리를 향해 부친 편지다. 별이 보내고, 우리가 받는 편지.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열 두개의 별빛이 보내온 138억 년짜리 편지의 이야기를 펼쳐보길 바란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6arXiv260320362M/abstract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6arXiv260320363R/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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