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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시인 윤동주를 따라 걷는 신촌, 서촌의 가을길

연세대에서 '윤동주 시비' 보고 인왕산 '시인의 언덕' 지나 '윤동주 문학관'으로

2019.09.24(Tue) 11:05:01

[비즈한국]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한 시인, 윤동주.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항일운동 혐의로 인한 투옥과 28세의 죽음은 그를 영원한 저항시인, 청년시인으로 남겼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4년간 다녔던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학교) 교정과 주변에는 지금도 시인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시인 윤동주가 다닌 연희전문(연세대학교) 교정과 주변에는 아직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안의 기념실. 사진=구완회 제공

 

#교정에 남아 있는 시인의 흔적, 윤동주 기념관

 

연세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 한창 공사중인 백양로를 지나면 왼쪽 벤치 옆에 자그마한 시비(詩碑)가 보인다. 거기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짧은 시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윤동주 시비에는 그의 ‘서시’가 새겨져 있다. 사진=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시비 뒤로 보이는 핀슨 홀(Pinson Hall)은 연희전문 시절 학생 기숙사로 쓰였던 건물이다. 이곳은 학생 윤동주가 1938년 입학 이후 2년 동안 머문 공간이기도 하다. 1922년 준공되었다는 아담한 건물 안에는 시인의 그 시절 흔적을 모아 놓은 윤동주 기념실이 있다. 기념실 입구에는 낡은 사진 몇 장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인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선한 눈매. 그가 남긴 시를 닮은 모습이다. 

 

낡은 책상 위에는 당시 시인이 즐겨 읽었다는 책 몇 권과 펜과 잉크, 그리고 시를 쓴 육필 원고가 있다. 그는 소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문예지 ‘새 명동’을 만들 만큼 일찍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의과 진학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당시 최고의 국어학자였던 최현배와 역사학자 손진태의 강의를 들으며 민족에 눈을 떴다고 한다. 

 

연희전문 시절 학생 기숙사로 쓰였던 핀슨 홀(Pinson Hall). 지금은 윤동주 기념실이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낡은 책상 위에는 당시 시인이 즐겨 읽었다는 책 몇 권과 펜과 잉크, 그리고 시를 쓴 육필 원고가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전시실 중앙에는 시인이 태어난 명동촌의 막새기와가 있고, 그 옆에는 최현배의 ‘우리말본’이 놓여 있었다. 연희전문의 기숙사에 머물던 시인은 고향과 민족을 생각하며 시를 썼을 것이다.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시인의 언덕

 

시인은 연희전문 입학 2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에서 후배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시작했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누상동은 지금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에 있다. 서촌에는 윤동주뿐 아니라 시인 이상과 화가 이중섭의 집도 있었다. 윤동주가 하숙을 하던 곳도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화가 박노수와 이상범의 집도 서촌이었다. 지금 서촌에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 예전의 전통을 잇는 일이기도 한 셈이다. 

 

이곳에 머물던 시인은 종종 효자동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고 한다. 눈 아래 펼쳐지는 식민지 경성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이 오르던 인왕산 자락에는 지금 ‘시인의 언덕’이 있다. 창의문 맞은편 길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서울성곽 앞으로 이곳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고, 그 옆에는 서시를 새긴 시비가 있고, 그 아래로는 옛날 시인이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서울의 풍경이 펼쳐진다. 

 

시인은 종종 효자동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고 한다. 시인이 오르던 인왕산 자락에는 지금 ‘시인의 언덕’이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문학관

 

시인의 언덕 바로 아래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자리 잡았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느린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가압장처럼, 우리 영혼에 아름다운 자극을 주는 시인의 작품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었단다. 그의 시처럼 순백색의 외관은 맑은 날이면 더욱 아름답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중앙의 낡은 우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옮겨 온 것이란다. 이 우물 옆에 서면 그가 다니던 학교와 교회 건물이 보였다고 한다. 아마도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후략)

 

윤동주 문학관 내부. 중앙의 낡은 우물은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옮겨 온 것이란다. 아마도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사진=구완회 제공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나선 시인은 결국 자신의 시집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옥사하고 만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지 일 년 반 만의 일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시집이 되어 시인 정지용의 발문을 달고 1948년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시인 윤동주는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남아 있다. 

 

<여행정보>  


윤동주 기념관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문의: 02-2123-2253

△관람 시간: 학기중 9시~18시, 방학 9시~17시, 주말·공휴일 휴관

 

윤동주 문학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문의: 02-2148-4175

△관람 시간: 10시~18시,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휴관

 

시인의 언덕

△위치: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7-4

△문의: 02-2148-4175(윤동주 문학관)

△관람 시간: 24시간,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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