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아빠랑] 광화문 교보문고 앞 전각의 정체는?

고종 즉위 40주년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모신 건물…일제강점기 슬픈 역사 서려

2019.09.17(Tue) 15:05:01

[비즈한국]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번 주말엔 아이와 함께 서점 나들이 어떨까? 책과 더불어 역사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곳이 있다. 대한민국 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광화문 교보문고다. 교보문고 사거리 귀퉁이에는 자그마한 옛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보통은 그냥 지나치게 마련이지만, 호기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본 사람은 작은 건물 안에 당당하게 선 비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사거리 귀퉁이에 있는 ‘고종 어극 40년 칭경비념비’를 모신 기념비전.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된 것, 70세 이상의 고위 관리들의 공식 모임인 ‘기로소’의 일원이 된 것(임금도 나이가 들면 기로소에 가입했다), 그리고 황제가 된 것을 기뻐하여 만든 비석이다. 비문은 고종의 아들인 순종이 썼다. 사진=구완회 제공

 

# ‘칭경’이라는 아이러니

 

이 비석의 이름은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어극(御極)은 즉위와 같은 말이고, 칭경(稱慶)이란 경사스러운 일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어떤 경사스러운 일인가?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된 것, 70세 이상의 고위 관리들의 공식 모임인 ‘기로소’의 일원이 된 것(임금도 나이가 들면 기로소에 가입했다), 그리고 황제가 된 것이다. 

 

이 세 가지 경사가 겹친 1902년은 갓 태어난 대한제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호시탐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기회만 엿보는 일본과, 아관파천 이후 한반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러시아 사이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고종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결국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러일전쟁의 승자인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게 된다. 약소국에 불과했던 대한제국의 ‘제국’처럼 ‘칭경’도 희망, 혹은 아이러니가 가득한 이름이다. 

 

무지개를 닮은 만세문은 어느 일본인이 떼어가서 자기집 대문으로 사용하다가 광복 이후에 제자리를 찾았다. 사진=구완회 제공

 

황태자이던 순종이 비문을 쓴 것은 그가 29세 때의 일이었다. 고종을 노린 독커피를 마신 이후로 총기를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일본이 만들어낸 루머에 불과할지라도, 이 당시 황태자 순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비각에 ‘기념비전’이란 현판을 달아 격을 높이는 일 정도랄까? ‘전’이란 건물에 붙이는 이름에서 가장 격이 높은 것으로 근정전 같은 궁궐의 중요 건물에 주로 붙인단다. 

 

무지개 모양의 만세문에는 지금도 여러 마리의 서수가 사악한 기운을 막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서수도 한반도를 파고 들어오는 제국주의의 마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 희망은 사라지고 비석만 남다

 

일제에게 나라가 넘어간 뒤 조선의 건물들도 수난을 맞았다. 경복궁 정문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사라질 뻔한 광화문이 겨우 목숨을 보존해 다른 자리로 옮겨가고, 경복궁 안의 다른 건물들도 대부분 사라지거나 훼손되었다. 궁궐이 이런 상황이니 그 앞의 육조거리에 있던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세종로 곳곳에 남아 ‘○○○의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들만이 과거의 영화를 증언할 뿐이다. 

 

이런 와중에도 칭경기념비전은 용케 제자리를 지켰다. 무지개를 닮은 만세문은 어느 일본인이 떼어가서 자기집 대문으로 사용하다가 광복 이후에 제자리를 찾았다. 지금은 우람한 교보빌딩의 기세에 눌려 세 들어 있는 듯 어색한 모습이지만,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각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 시내의 몇 안 되는 유적 중 하나다. 

 

만세문에는 지금도 여러 마리의 서수가 사악한 기운을 막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서수도 한반도를 파고 들어오는 제국주의의 마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칭경기념비는 다행히 제자리를 지켰지만, 기념비의 당사자인 고종의 이후 삶은 고단했다. 기념비가 서고 3년 후인 1905년, 조선은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맺고 외교권을 상실한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은 비밀리에 특사를 파견하지만 그들은 회담장 대문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일제는 이 일을 꼬투리 삼아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황제로 ‘삼는다.’ 즉위 44년을 맞은 고종도, 칭경기념비문을 썼던 순종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 조선은 일제의 보호국에서 식민지로 몰락하고, ‘덕수궁 전하’로 유폐되어 있던 고종은 살아서 오백 년 종묘사직이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 담았던 희망은 사리지고 비석만 덩그러니 남은 셈이다. 

 

그 기념비전 곁을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다. 어떤 이는 희망을 품고, 다른 이는 불안한 걸음으로. 한때 희망을 품었으나 끝내 불안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본 기념비전은, 백여 년 뒤의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있을까? 그곳을 지날 기회가 있다면, 잠시 그 앞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정보>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 기념비전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68

△ 문의: 02-2148-1807(종로구청 문화과)

△ 관람 시간: 24시간,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시세보다 싸다더니"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임대료 논란
· [클라스업] 밀레니얼 세대가 구찌를 사랑하는 이유
· [아빠랑] 흥선대원군·고종·명성황후의 운명이 시작된 '운현궁'
· [아빠랑] '태조 이성계'를 찾아 떠나는 의정부 여행
· [아빠랑] 한양, 한성, 경성, 서울…'또 다른 서울'을 만나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