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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켜졌는데 왜 카톡 확인 안 해" 소름 돋는 커플 앱 체험해보니

'호텔' 결제에 놀라 전화하니 "식사했다"…문자·카톡·통화내용·위치이동·첫화면 상태까지 확인 가능

2019.10.25(Fri) 14:20:11

[비즈한국] 처음 앱을 깔 때만 해도 이 정도 위기는 예상치 못했다. 시작은 ‘커플 앱’과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게시글이었다. 해당 앱은 앱스토어 내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앱, 연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심하세요, 연인의 흔적을 확인하고 안심하세요, 연인의 폰 상태를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어요’라는 문구로 홍보 중이었다. “이런 게 있네,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에 (남자)친구를 설득했다.

 

앱스토어 속 앱 홍보 화면. 배터리 상태부터 화면 ON·OFF 상태까지 알 수 있다. 사진=휴대폰 화면 캡처

 

앱을 깔았다. 가장 잘 알려진 커플 앱 중 하나인 비트윈을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비트윈이 독립된 메신저를 주고받거나 앨범에 사진을 저장하는 게 주된 기능이라면, 이 앱은 현재 위치를 포함해 위치 경로를 확인하고 통화·문자·​메신저SNS 내용과 휴대폰 정보(배터리 상태, 화면 ON·​OFF상태)를 보는 등 지극히 사생활적인 요소가 담겨 있었다. 다운로드 수는 1만, 리뷰는 200개 이상, 별점은 4.0점. 검증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3일간 사용해보니…“이렇게까지 서로 다 알아야 해?

 

10월 23일, 각각의 기능을 점검했다. 업무시간에 종종 앱의 정확도를 확인하는 연락을 하자 상대는 투덜댔다. 하지만 금세 “소름”을 연발하며 기능을 확인했다. 위치는 시간대별로 번호가 매겨져 화면에 나타났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지도에 찍혔다. 상대방에게 확인한 결과 앱이 알려주는 주소는 거의 정확했다. 

 

상대방의 실시간 위치 확인 뿐 아니라 이동 경로까지 확인할 수 있다. 사진=휴대폰 화면 캡처

 

통화내용은 최대 1분까지 녹음돼 상대의 핸드폰 앱에 올라왔다. 문자도 누가 어떤 내용을 보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톡(카톡)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단체카톡방을 들여다보는 게 찜찜했지만, 금단의 열매처럼 손이 갔다. 카톡에는 친구들과의 개인적인 얘기뿐 아니라 물건 구매 내역, 병원 예약 등 많은 개인사가 있었다. 상대방도 내 카톡을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또한 나는 동의 없이 (상대방이 얘기를 나눈)제3자의 말을 보는 중이었다.

 

10월 24일, 가장 위험한 기능을 알게 됐다. 휴대폰 정보를 클릭하면 현재 ‘배터리 상태’, 연결된 와이파이 이름이 뜨는 ‘네트워크 종류’, 무음·​진동과 같은 ‘벨소리 모드’, 그리고 ‘화면 상태’를 알 수 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현대인에게 화면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건 CCTV를 옆에 다는 것과 같았다. “너 왜 핸드폰을 켜놓고 카카오톡은 확인을 안 해?”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앱을 사용하고 있는 도중에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나누는 이야기 뿐 아니라 결제내용, 심지어 따릉이 사용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다. 사진=휴대폰 화면 캡처

 

클릭 한 번이면 상대방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손바닥에 놓고 보듯 다 알 수 있었다. 핸드폰이 가진 정보는 무궁무진했다. ‘서울자전거 따릉이 알림톡’을 보고 “출근길에 자전거를 탔구나”,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보고 “오늘 을지로에서 약속이 있구나”를 직접 듣기 전에 알 수 있었다. 기사를 핑계로 자주 내용을 확인했고 상대는 지쳐갔다. “업무시간에 그곳은 왜 갔어?”, “낮에 카톡한 친구는 누구야?” 궁금한 게 자꾸 생겼다. 구속, 속박 같은 단어와 먼 사람이라 생각한 나 자신의 본모습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제내역, 통장 잔액 등 경제활동까지 알게 된다. 사진=휴대폰 화면캡처

 

10월 25일, 위기가 찾아왔다. 문자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건 경제활동까지 공유해야 함을 간과했다. ‘○○은행 ○○호텔앤드리 5,000원 출금 17:56’ 상대방의 문자 내용이 내 화면에 떴다. ‘호텔? 호테엘?’ 5000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에 전화를 걸었다. 밥을 먹었다는 답변에 민망해졌다. 상대는 기분이 상했다. “이렇게까지 서로 다 알아야 해?”

 

남아 있던 신뢰마저 바닥나기 전에 마주 앉았다. 둘 다 녹음된 통화 내용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 됐다. “차마 그것까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함께 앱을 지웠다. 상대는 “너무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시작할 때의 나와 끝낼 때의 내가 다른 사람 같았다”고 한 줄 평을 남겼다.

 

#데이트폭력으로 이어질 위험 충분…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존중

 

직접 사용해 본 결과 위치 확인과 통화․문자 내용 확인까지 가능한 해당 앱은 악용될 여지가 충분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위치추적 기능을 가진 커플 앱은 여러 종류가 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사생활을 오픈하고, 공유하는 게 상대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포장되는 인식은 문제다. 상대방의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와 직결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덧붙여 최 소장은 “​데이트폭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통제 피해다. 양쪽 동의 하에 사용하는 앱이라 해도 위험하다. 권력의 상하가 있는 관계에서는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유지’나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오픈해야 한다는 강요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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