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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대표들이 끙끙 앓는 '투자심사역 리스크' 실체

시장 조사용 자료부터 제품 할인까지 요구…"절실한 창업자들 이용, 경험만이 해결"

2021.04.13(Tue) 16:38:39

[비즈한국] 지난해 종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남주혁이 동료들과 만든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삼산텍’은 어느 투자자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삼산텍이 세계 AI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자 그들의 사무실에 투자자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그들을 반긴 건 그들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 투자자로 위장한 개발자들뿐이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창업자들을 이용해 이익을 편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종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의 한 장면. 사진=tvN D ENT 유튜브 영상 캡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창업자들이 투자받기 좋은 환경이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2020년 등록된 국내 창업투자회사만 165개 사다. 운영조합도 1076개에 달한다. 신규 투자 금액과 투자 업체 수도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투자 분위기가 위축됐음에도 신규 투자 금액은 4조 3045억 원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신규 투자 업체 수는 2130개 사로 평균 신규 투자 금액은 약 20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통계만으로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투자 라운드에서 겪는 고충을 알기 어렵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늘 자금이 부족하다. 적절한 시기에 투자받지 못하면 사업 확장은커녕 도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투자심사역 한 분, 한 분 만나는 게 소중한 이유다. 그런데 투자 라운드를 돌면서 이 같은 우리의​ 처지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에서 나온 상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전했다.

 

#유명 투자사라고? 그렇다면 ‘신입’은 피해라

 

복수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공통으로 경계하는 투자심사역이 있다. 바로 ‘신입’ 투자심사역이다. 이들은 투자 경험도 없고, 업계 현황도 잘 모른다. 즉 모든 면에서 경험이 부족하다. 투자사마다 신입 교육이 있지만, 단지 이론일 뿐이다. 이를 써먹으려면 결국 현장에 나가야 한다. 

 

투자자로 위장해 기술을 빼앗으려는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실제로도 스타트업 대표들의 절실함을 이용하는 투자심사역들이 있다고 한다. 사진=tvN DRAMA 유튜브 영상 캡처

 

경험을 갈망하는 신입들에게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A 스타트업 대표는 “유명 투자사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IR(기업설명회)을 준비해 발표했다. 그러나 사업성이 부족했는지, IR을 잘 못했는지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1년 뒤 우연히 투자자 모임에서 그 투자심사역과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당시에는 자신이 신입이었다고 고백하더라. 투자에 참여할 수 없는 직급이었다. 본인 경험을 위해 투자와는 무관하게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 B 씨는 “석 달 전부터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다며 접근한 투자심사역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요청한 자료가 좀 이상했다. 회사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자료가 아니라 업계 현황이나 시장 흐름, 역사 같은 자료들을 요구했다. 요청 사항이니 밤을 새워서 자료를 보냈다. 하지만 결국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이 투자심사역이 자신의 공부를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투자도 안 할 거면서…대가 요구하는 투자심사역들 

 

자금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을 상대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투자 심사역도 있다. 투자 전부터 경영에 간섭한다든지, 과도하게 지분을 요구하거나, 해당 스타트업의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할인 혜택을 바라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투자심사역의 무리한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사진은 인천스타트업파크 개관식 장면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C 스타트업 대표는 “한 투자심사역이 동종업계의 타 사와 합병하면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회사 대표와 우스갯소리로 합병 얘기를 해왔던 터라 이 기회를 통해 진지하게 합병 제안을 했고, 실제로 합병을 해 현재까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합병을 할 줄 몰랐는지 그 투자심사역은 당황했고, 결국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D 스타트업 대표는 “서비스 이용권을 일반 회원보다 할인된 가격에 제공해달라는 투자심사역들이 꽤 많다. 판매 중인 제품을 싼 가격에 판매한 사례도 꽤 있다. 소문이 났는지 한 투자심사역은 아예 대놓고 지분을 요구하더라.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던 거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투자자 갑질…투자심사역 평가하는 커뮤니티도 등장

 

그렇다면 이런 투자심사역을 초장에 거르는 방법은 없을까. 아쉽게도 스타트업 대표들은 “경험이 해결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의 A 스타트업 대표는 “처음부터 좋은 투자자를 찾는 혜안을 갖는 건 불가능하다. 투자 라운드를 돌면서 체득해야 한다”며 “나도 신입 투자심사역을 만난 후부터는 투자사뿐만 아니라 투자심사역의 레퍼런스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특히 IR 후 피드백을 꼭 주는 투자사인지, 투자 시기가 얼마나 빠른지, 투자 이후 계획이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한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투자사와 투자심사역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커뮤니티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사진=누구머니 홈페이지 화면 캡처


B 씨는 자료의 질과 양을 확인한다고 말한다. B 씨는 “예전에는 요청하는 자료가 많을수록 투자받을 확률이 높을 거라 착각했다. 투자심사역들을 100명 가까이 만나보니 잘나가는 투자심사역들은 핵심을 찌르는 자료만 요구한다. 그런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D 스타트업 대표는 B 씨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자료를 많이 요청한다고 해서 그 투자심사역을 완전히 거를 수는 없다. ‘아. 신입이다. 물렸다’ 싶더라도 성의 표시는 해야 한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투자금이 필요한 데다가, 업계가 워낙 좁아 소문도 빠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곧 투자 실패로 이어질 것이 염려돼 처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떼어주듯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투자금이 실제로 들어오는 경우에만 투자심사역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후속 투자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결국 경험”이라며 씁쓸해했다. 

 

이 같은 현실에 ‘누구머니(Nugu Money)’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도 등장했다. 누구머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투자사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자 탄생한 사이트다. 창업자들은 이 사이트에 투자자 리뷰를 남길 수 있다. 즉 집단 지성을 발휘해 악덕한 투자사나 투자심사역을 사전에 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D 스타트업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마다 성향이 달라 100% 믿을 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투자심사역을 향해 같은 비판이나 칭찬이 이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집단지성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예비 창업자들이 투자 전 투자사나 투자심사역에 대해 알아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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