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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책 도둑은 그냥 도둑이다

연예인 사례로 본 지적 산출물 침해 행위 잇단 패소…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 주목해야

2022.03.28(Mon) 15:41:49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최근 들어 지식재산권, 상표권 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사용하는 맥락을 보면 “지식과 지혜를 훔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회는 독서를 통해 인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말은 지식재산권을 상대적으로 덜 존중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불법 복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용자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제값을 주고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용자를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불법 복제가 비난받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한 건 최근의 일이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저작권‧상표권‧디자인권 등이 침해된 사실을 발견해 침해자에게 사용 중단을 요구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침해자가 순순히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협상에 응하는 사례는 정말 드물다. 오히려 침해자로부터 공갈 및 업무방해를 이유로 고소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침해자는 권리자가 권원 없이 협박해 돈을 요구하고 그로 인해 회사업무에 방해됐다는 이유로 고소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게다가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법원의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일반적인 사건에 비해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간단히 말해 품은 많이 드는데 돈이 안 된다. 저작권 침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작물의 성립, 의거성, 동일·유사성을 모두 입증해야 하고, 디자이너‧개발자‧작곡가 등 전문가를 고용해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이지만 미술‧음악‧프로그램 등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를 따로 고용해 원저작물과 침해저작물 간의 동일·유사성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어렵게 저작권 침해를 입증해도 손해배상금액으로 권리자 입장에선 턱없이 적은 금액만이 인정된다는 점이다. 감정 대상인 건물 가액이 커 1~2%의 하자율만 인정돼도 수억 원 이상의 금액이 인용되는 건설 하자 소송과는 대비된다. 과거 권리자를 대리하면서 변호사들끼리 “혹시 판사님들은 저작권 침해액을 많이 인정하면 나라에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하는 농담을 주고받았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와 달리 아이디어나 지적 산출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도 이제는 그만 쓸 때가 된 듯하다.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베끼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지적 창조물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 예능 포맷을 복제하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방송 포맷을 중국에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와 전망을 간단히 살펴보자.

 

상표권의 보호 범위는 상표등록 출원서에 기재된 상품, 즉 지정상품에만 미친다. 예를 들어 상표권을 출원하면서 화장품만 지정상품으로 특정했다면 상표권은 화장품 범위 내에서만 보호받는다. 

 

‘지정상품을 모조리 등록하면 보호 범위가 넓어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든다. 때문에 보통 자신이 영위하는 업종이나 취급하는 품목과 관련이 있는 지정상품만 등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정상품이 다르면 상표권 보호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지정상품을 다르게 특정하면 동일한 표장을 사용해 상표권을 등록하더라도 기존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표장 ‘소녀시대’는 여성 그룹 명칭인데, SM 엔터테인먼트는 ‘음반‧음원’, ‘가수 공연업’, ‘음악공연업’, ‘방송출연업’, ‘광고모델업’ 등을 지정상품·서비스업으로 한 상표권을 등록했다. 이 경우 원칙으로 돌아가 지정상품을 다르게 정했다면 다른 회사가 ‘소녀시대’라는 표장으로 상표권을 등록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에는 연예인 인지도에 편승해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사진은 2019년 영화 ‘백두산’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수지. 사진=박정훈 기자

 

특허법원은 이를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상급심인 대법원은 “상품·서비스업의 출처를 오인·혼동하게 해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음으로 그러한 상표등록은 불가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2013후1207). 대법원은 지정상품을 달리 정하는 방법으로 ‘소녀시대’의 인지도와 저명성에 편승하는 건 법에 따라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미쓰에이 수지가 ‘수지 모자’라는 검색어로 상품을 광고한 인터넷 쇼핑몰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퍼블리시티권 침해)을 한 사건에서 하급심은 원고(수지)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퍼블리시티권 자체를 인정할 수 없고, 수지 모자라는 검색어를 사용했다고 수지가 계약해지 등의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초상‧음성‧서명 등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 행위로 보고 금지한다. 즉 부정경쟁 행위 성립을 결정할 땐 ‘수지 모자’, ‘수지 스타일’이라는 검색어를 사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가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

 

물론 이를 두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한류 인기로 한국 연예인의 영향력은 커지고, 이 영향력은 소속사 등의 기획‧투자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연예인 이름을 무단으로 인용하면서 상도나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건 궁색해 보인다.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된 배경에는 연예인 이름을 활용해 물건을 파는 등 연예인 인지도에 편승하는 행위를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향후 법원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에 사회 분위기 변화를 봤을 때, 앞으로 저작권 침해에 관해서는 연예인에게 훨씬 유리한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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