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그의 대프로토스전 최종병기는 히드라 / 럴커 / 뮤탈리스크 삼지창이었다. 하지만 이는 테란 앞에 무력하다. 테란의 탱크와 마린 메딕 병력의 효율은 저그의 그것을 넘는다. 사실 저그의 럴커는 임요환이 테란에 컨트롤을 더함으로 무력해진 지 오래였다.
임요환의 컨트롤을 넘으면 이윤열의 물량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를 넘으니 최연성의 최적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반에 러쉬를 하자니 테란의 수비가 견고하고, 레어 테크 힘싸움을 하자니 탱크의 화력과 마린 메딕의 효율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저그는 테란보다 많은 멀티를 먹고 끊임없이 회전하거나, 초반에 테란의 수비를 뚫지 않고선 지는 운명에 처했다. 결국, 저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자원을 먹고 테란과 싸우면 필연적으로 패배했다.
이 모든 상황은 테란의 ‘1배럭 더블커맨드’ 전략 때문이었다. 배럭을 한 개만 올리고 빠르게 앞마당을 먹은 테란은 탱크로 수비를 공고히 했다. 앞마당만 먹고도 투팩토리를 돌릴 수 있는 테란은 레어테크의 모든 유닛을 막을 수 있었다. 마린 메딕의 카운터인 히드라럴커, 투팩토리 탱크의 카운터인 저글링럴커 모두 투팩토리 원스타포트 마린메딕 앞에선 무력했다.
최연성은 원배럭 더블을 재정립했다. |
답은 하이브였다. 레어테크에서 나오는 럴커, 히드라, 저글링, 뮤탈리스크로 테란을 이길 수 없다면 하이브를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저그가 발견한 첫 번째 하이브유닛은 ‘가디언’이었다. 지금에야 가디언이 ‘가필패(가디언을 쓰면 필패)’로 조롱받지만 당시 가디언은 저그의 최종병기였다. 투팩토리 마린메딕으로 구성된 테란의 병력을 초장거리 유닛인 가디언으로 막거나, 테란의 멀티를 가디언으로 견제한다. 마린은 가디언에게 2방이기에 가디언을 잡으려면 사이언스베슬의 이레디에이트밖에 없으니, 테란은 베슬의 마나를 가디언에 쏟을 수밖에 없다. 마린메딕이 없는 테란의 본진은 저글링과 럴커에게 습격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시나리오는 테란의 발달하는 마린 컨트롤과 기습 레이스에 무력했다. 이후 저그가 찾은 답은 울트라리스크였다. 이는 2003년부터 발전했는데, 테란의 앞마당 이후 늦은 진출에 대비한 전략이다. 테란의 늦은 한방병력 진출에 대비해, 최대한 많은 멀티를 하고 풀업그레이드 저글링과 울트라리스크로 한방병력을 싸먹는 것이 소위 ‘목동저그’였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윤열과 최연성으로 대표되는 앞마당 이후 투팩토리 전술은 울트라리스크를 화력으로 찍어눌렀다. 마린과 메딕 앞에선 강한 울트라였지만,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한 한 박자 빠른 진출과 조이기 앞에선 무력했다.
그러다, 박성준이 나타났다. 뮤탈리스크 컨트롤과 공격적인 저글링 컨트롤로 테란의 병력을 제거하고, 멀티를 한 다음에 숨도 못 쉬게 공격을 계속하는 박성준은 이윤열과 최연성을 꺾다. 하지만 저와 같은 재능은 박성준만의 전유물이라 다른 저그는 쉽사리 따라하지 못했다.
많은 저그가 뮤탈리스크로 게릴라를 펼쳤으나, 박성준만 못했다. |
그러다, 디파일러가 나타났다. 지금은 대기업 회사원이 된 예전 한빛스타즈 소속 프로게이머 조형근이 재발견하고, 김준영과 마재윤 등 차기 저그들이 완성했다. 디파일러는 저그의 마법 유닛으로 원거리 유닛의 공격을 막아주는 다크스웜과 상대 유닛의 체력을 깎는 플레이그가 주무기다. 주목할 것은 다크스웜이다. 테란은 세 종족 중 유일하게 ‘근접공격유닛’이 없다. 즉, 원거리 유닛의 공격을 막는 다크스웜이 쳐지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벌처의 스파이더마인, 베슬의 이레디에이트, 탱크의 스플래쉬 데미지뿐이다.
탱크가 부대단위로 있지 않는 한, 저그의 스웜을 막기 힘들었다. |
저그는 디파일러를 징검다리로 사용했다. 최종병기가 아니라 울트라리스크와 디파일러를 섞고, 저글링럴커에 디파일러를 섞었다. 디파일러로 테란 병력의 진출을 막고, 역으로 공격하며 멀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후에 이 빌드는 뮤탈리스크 저글링과 합쳐져 ‘미친 저그’를 만들기도 했다.
스웜 앞에선 모든 공격이 무효화된다. |
디파일러 테크는 많은 걸 요구했다. 일단 테란의 진출을 막기 위해 뮤탈리스크로 화려한 견제를 해야 했으며 동시에 두 번째 가스 멀티를 가져가고 하이브를 올려야 했다. 테란의 견제를 러커로 막고, 역으로 테란을 견제해야 했다. 견제, 멀티, 생산 이 셋 중 한 가지만 어긋나도 저그는 디파일러를 뽑지 못했고 뽑더라도 테란의 병력이 본진에 당도한 이후였다. 박성준의 컨트롤, 박태민의 운영, 홍진호의 공격성, 조용호의 담대함을 모두 섞어야만 했다.
이 어려움을 그대로 해낸 사람이 지금은 제명당한 프로게이머 마재윤이었다. 마재윤의 업적은 현재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제명당했으니, 그의 모든 기록은 취소됐다. 다음 편에선 그의 기록이 아닌, 그의 플레이에 대한 내 기억만 주관적으로 적어보겠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