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덕후

{썬데이] 탄핵 앞서 하야 ‘닉슨’, 국민주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혼란스러운 현 시국, 시사성 큰 두 영화

2016.12.14(Wed) 15:21:28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그들(국민)​은 케네디에게선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보지만 나(닉슨)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영화 ‘닉슨’

 

영화 ‘닉슨’(왼쪽)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공식 포스터.

 

국정농단에 분개한 전국의 촛불 민심에 국회가 이달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헌법 제1조의 국민 주권을 표출하는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이다.

 

촛불 민심이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외치는 가운데 미국 헌정사상 대통령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최초로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한 제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시사하는 바가 커 자주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닉슨은 희화화의 대상이거나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인간 닉슨에게 심도 깊은 고찰을 시도한 영화가 있다. ‘플래툰’(1986), ‘월스트리트’(1987) 등 미국 보수파들의 ‘미덕’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1995)이 그것이다. 

 

닉슨은 베트남 전쟁 종식, 소련·중공(중국)과 평화 외교를 통해 데탕트(냉전 완화),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근간인 ‘브레튼우즈 체제’를 혁파하는 등 괄목할 치적을 쌓았다. 하지만 닉슨은 미국 정치사 최대 스캔들인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 발발로 1974년 8월 권좌를 내려와야 했고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악의 평가를 받는 비운의 인물이다.

 

영화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출발해 사임할 때까지 과정을 집중 다룬다.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음모를 파헤치는 대신 닉슨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과도한 승부욕과 성격 파탄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청과상 아들로 태어난 닉슨은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하버드대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경제 여건으로 고향 지방대를 다녀야 했다. 그에겐 형과 동생이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아픈 추억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주류 정가에서 바라볼 때 닉슨은 촌뜨기의 전형이었으리라.

 

앤서니 홉킨스가 닉슨 역을 맡아 광기 서린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그럼에도 닉슨은 33세 하원의원, 37세 상원의원, 39세 부통령이란 입지전적인 이력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거칠 것 없던 정치인으로서 행보는 1960년 미국 대선 상대였던 존 에프 케네디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1962년에는 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일시 정계를 은퇴했던 닉슨은 와신상담 끝에 1968년 대선에서 상대인 휴버트 험프리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고 1972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특히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당한 패배는 닉슨의 열등감과 성격 파탄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닉슨 시대 백악관은 도청, 매수, 정적 제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닉슨은 아무도 믿지 못해 백악관 내부 모든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편집증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1972년 6월 닉슨의 백악관 내부 사설 ‘정보팀’ 기획 아래 5명의 남자가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들어섰던 워터게이트빌딩에 침투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닉슨은 부분적인 책임을 인정했으나 한동안 버티기로 일관했다. 민주당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맹공을 퍼부었고 백악관 전 보좌관 버터필드가 대통령 집무실에 대화 내용이 기록된 비밀 테이프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사태는 급물살을 탄다.

 

닉슨은 국가 보안을 이유로 테이프 공개를 거부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 콕스가 제출을 요구하자 닉슨이 콕스를 해임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닉슨은 이 과정에서 부인과 측근들의 조언도 무시하며 인격적 고립을 자초한다. 

 

1973년 7월 문제의 테이프 분량이 4000여 시간 분량에 달한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단서인 18분 30초가 지워진 상태였다. 이로 인해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직접 지시했다는 방향으로 굳어져 간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준비되는 가운데, 닉슨은 사임을 결심한 후 백악관 복도에 걸린 케네디 초상화 앞에서 앞서 기술한 대사를 한다. 케네디에 대한 열등감과 이미지 정치에 사로잡힌 대중에 대한 비판을 압축한 명대사다.

 

영화는 당시 실제 흑백 TV 화면과 흑백 처리된 픽션 장면을 교차하면서 그 내용에 사실감을 더한다. 타이틀 롤을 맡은 실력파 연기자 앤서니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로 보여준 광기 충만한 모습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영화에는 한국에도 친숙한 헨리 키신저, 알렉산더 헤이그, 에드가 후버 등 미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도 대역을 통해 생생하게 등장해 격동의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닉슨은 사임 하루 전 연설을 통해 “개인적으로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 미국은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며 사임의 변을 밝혔다. 대통령의 자리는 국익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뜻으로 현재 국내 시국에서 곱씹어 볼 만한 발언이다.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마지막 장면에서 고은비로 분한 예지원이 국회 정문을 넘고 있다.

 

필자가 최근의 촛불 민심을 통한 국민 주권의 발현을 볼 때 생각나는 영화가 또 있다. 수락시란 가상의 공간에서 헌법 제1조 규정을 들고 윤락여성이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블랙코미디 ‘대한민국 헌법 제1조’(2003)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헝가리 출신으로 1970~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최고인기를 달리던 성인물 배우 ‘치치올리나’에게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치치올리나는 1987년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고 1991년엔 동료 성인물 배우와 함께 ‘애정당’을 창당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과 돌출 언행으로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홍등가 생활을 청산하면 꽃가게를 차리고 싶은 고은비(예지원 분)가 주인공이다. 야당 소속 수락시 국회의원(양택조 분)이 여당 총재가 보낸 기센 여자 킬러(정세희)의 유혹으로 관계를 갖던 중 복상사한다. 이로 인해 여야는 국회 의석수에서 동석이 되고 수락시에서 벌어지는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치열한 선거전을 펼친다. 

 

고은비는 성폭행을 당한 동료 윤락녀가 직업을 이유로 이를 인정받지 못하자 분노하며 보궐선거에 후보로 등록한다. 그녀가 헌법 제1조를 들고 동료 윤락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의 표심을 파고들며 다크호스로 떠오르자 여야 후보는 합심해 고은비를 집중 공격한다. 심지어 조폭을 동원해 고은비의 동료 윤락여성 키메라를 납치하고 폭행하는 등 온갖 협잡과 술수까지 부린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회 전반에 깔린 정치 불신을 혐오 수준까지 몰고 간다. 

 

영화의 엔딩은 당초 고은비가 국회의사당으로 당당히 입성하는 장면이었지만 국회 정문을 월담하는 장면으로 수정돼야 했다. 영화 제작사가 수차례 국회에 촬영 협조 공문을 발송했으나 국회가 윤락여성을 다룬 영화라는 이유로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딩 장면을 몰래 촬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연예인 등 문화계 출신 국회의원들을 찾았으나 반대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고은비 역의 예지원은 월담에 성공했으나 촬영을 마치고도 국회 정문이 끝내 열리지 않아 다시 월담을 해서 국회를 벗어났다고 한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씁쓸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촛불 민심은 “탄핵이 부결될 경우 국회 담을 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홍등가는 전주시에 실재하는 곳이다. 파주나 서울 청량리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현지 기둥서방들의 거센 반발로 촬영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신랄한 정치 풍자와 윤락여성의 정계 진출이란 소재를 다루면서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이 평단 반응과 흥행의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연출을 맡은 송경식 감독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사방지’(1988)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이 영화로 메가폰을 다시 잡았지만 그 후 현재까지 작품 활동은 없는 상태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핫클릭]

· [썬데이] 홍콩 느와르의 전설 ‘영웅본색’
· [썬데이] 추석이면 그리워지는 나훈아
· [썬데이] 웃음주고 간 구봉서·배삼룡·서영춘
· [썬데이] 영원한 ‘변강쇠’ 이대근을 위한 변명
· [썬데이] 충무로 에드 우드 “그럼 찍지, 남기남”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