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세포치료제 상업화 전쟁] ④ 작은 '플라스틱 백'이 혁신 발목 잡는다

필수 부자재 수급 한계·규제 '이중고'…'갑 아닌 갑' 글로벌 소부장 기업에 속앓이

2026.05.26(Tue) 16:55:50

[비즈한국]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가 1회 투여로 완치를 내건 세포치료제의 장밋빛 미래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허들을 넘어 신약으로 허가받는 것보다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상업화의 벽이 더 높다. 깐깐한 인허가 규제, 좁은 비급여 시장의 한계, 취약한 소모품 공급망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포치료제 업계가 직면한 상업화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본다.

 

세포치료제 혁신의 병목은 실험실 안에만 있지 않다. CAR-T 치료제와 줄기세포 치료제는 한 번 투여로 완치를 기대하게 하는 차세대 바이오 기술로 주목받지만, 정작 상업화 현장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백, 세포배양 배지, 동결 보존액 같은 기초 소모품이 더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공급업체가 시장을 장악한 탓에 국내 기업은 단가와 납기에서 끌려갈 수밖에 없고, 원부자재를 바꾸려 해도 규제를 넘어야 한다. 첨단 치료제의 미래가 뜻밖에도 플라스틱 백 하나, 배지 한 병에 걸려 있는 셈이다.​

 

세포치료제 개발 및 생산에 필수적인 일회용 플라스틱 백, 세포배양 배지 등은 글로벌 기업이 과점 공급하는 터라 국내 기업들이 원부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바이오링크 홈페이지

 

#글로벌 공급업체가 ‘갑

 

세포치료제는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해 전통적인 스테인리스 배양기 대신 일회용 플라스틱 백 등을 활용하는 싱글 유즈(Single-use) 공정이 필수적이다. 세포 증식에 필요한 영양분이 든 세포배양 배지, CAR-T 치료제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T세포로 옮기는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 벡터, 완성된 세포치료제를 환자가 있는 병원까지 배송할 수 있도록 세포를 얼리는 동결 보존액 등은 세포치료제 개발 및 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필수 원부자재다.

 

하지만 이 분야는 써모피셔, 싸이티바, 론자 등 거대 글로벌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국내 세포치료제 개발 기업은 물론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은 글로벌 공급업체가 제시하는 단가와 납기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을의 처지다. 고객사로서 주문하더라도 수개월을 기다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국내 시장 규모가 너무 작고, 이들 기업의 구매력으로는 글로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룡들과 협상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세포치료제 시장은 연간 8조~12조 원으로 추산되는 반면 국내 시장은 약 1300억 원대로 글로벌 시장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에게 한국은 큰 시장이 아니어서 우리가 끌려가는 입장이다”라며 국내 기업의 현실을 씁쓸하게 인정했다.

 

여기에 미국 관세 정책 변화와 중동 사태 등으로 인해 특수 플라스틱 백 제조에 필요한 나프타 등 원자재 수급이 요동치면서 부담이 가중됐다. 기업들로서는 선제적으로 재고를 비축하며 공급망 리스크 충격을 완화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소모품 원가가 폭등하고 수급이 지연돼도 생명이 위급한 암 환자 등에게 투여할 세포치료제는 무조건 생산돼야 하는 만큼 원가 상승이 고스란히 환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GC셀 관계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통 6개월치 유효 기간에 맞춰 재고를 확보해 당장 문제는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소모품 수급 문제가 커지겠지만, 결국 치료제는 어떻게 되든 환자에게 무조건 가야만 한다”며 “비용이 얼마가 치솟든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환경에 민감한 세포치료제 특성상 원부자재를 교체하는 것도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아야 한다. 사진=바이오파마다이나믹스 홈페이지

 

#장비 바꾸는 것도 허가 받아야

 

원부자재를 바꾸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세포치료제 특성상 세포의 먹이가 되는 배지나 세포가 닿는 플라스틱 용기가 달라지면 최종 산물인 세포의 특성과 효능이 변할 수 있기에 이를 변경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규제 당국의 변경 승인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시간과 비용의 출혈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공정이나 원부자재를 변경했다가 규제 당국의 허들을 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다. 호주 바이오기업 메조블라스트의 줄기세포 치료제 ‘렘스템셀-엘’이 대표적인 사례다. 메조블라스트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렘스템셀-엘의 소아 스테로이드 불응성 급성 이식편대숙주병(SR-aGVHD) 치료제 품목허가 신청을 앞두고 세포 배양 조건과 공정을 변경했다. 이후 생산된 치료제가 기존 임상시험을 마친 의약품과 기능적으로 동일하다는 동등성을 인정받지 못해 2020년 10월과 2023년 8월 두 차례나 FDA 품목허가 신청이 반려(CRL)됐다. 결국 2024년 12월에야 승인을 받았다. 사소해 보이는 배양 환경 변화 때문에 4년 이상 상업화가 늦어진 셈이다.

 

이 같은 규제 당국의 허들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성장에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마이크로디지탈, 엑셀세라퓨틱스 등 글로벌 수준의 일회용 배양기와 세포 배지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이 등장했지만, 처음 개발 단계에서 글로벌 기업의 원부자재를 사용한 탓에 이를 다시 국산화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는 다시 트랙 레코드(상용화 이력)가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가격 경쟁력이 있음에도 규제 리스크를 우려한 기업들로서는 국산 제품을 채택하기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배지 하나를 바꾸는 것도 엄청난 비용 문제를 동반한다”면서 “최근 배지 변경 시 허가 절차를 좀 더 간소화하도록 규제 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포치료제는 차세대 바이오산업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지만, 소부장 공급망 취약이 상업화 발목을 잡는 숨은 뇌관으로 지목된다. 건강한 K-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연구개발 역량 강화 못지않게 세포 배양액과 플라스틱 백 하나까지 안정적으로 조달할 공급망 자립과 제조 주권 확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핫클릭]

· [세포치료제 상업화 전쟁] ③ "약효보다 약값이 시장 좌우" 신약 개발 딜레마
· [세포치료제 상업화 전쟁] ② K-세포치료제 CDMO, 허가·스케일·원스톱 '3색' 생존법
· [현장] 진양곤 HLB 의장 "항암제 개발 20년, 이제 꽃 피울 것"
· [세포치료제 상업화 전쟁] ① 박지성 무릎 살린 '기적의 신약' 정체는?
· [현장] '바이오코리아 2026' 빛낸 강소 3인방, AI·로봇·범용 세포치료제 띄운다
· 황우석·인보사 그늘서 9년, '꿈의 항암제' 국산 세포치료제 다시 기지개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