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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끊임없이 사회와 싸우며 자신의 세계관을 지킨 두 남자

조지 마이클‧프랭크 오션의 삶과 음악…뛰어난 싱어송라이터에 성적 소수자, 대형 자본‧사회와 부딪친 이단아

2016.12.31(Sat) 07:50:41

조지 마이클이 사망했습니다. 대표곡인 ‘라스트 크리스마스’처럼 크리스마스에 말이죠.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했습니다.

 

조지 마이클은 뛰어난 가창력과 작곡 실력을 갖춘 1980년대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내리막길을 걸었는데요, 거대 자본 소속사와의 분쟁,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고민이 그 이유였습니다.

 

현재 팝 음악계에도 조지 마이클과 비슷한 성향의 가수가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성적 소수자이며, 거대 자본과 함께하지 않는 알앤비 가수 프랭크 오션입니다. 오늘은 조지 마이클과 프랭크 오션의 닮은 듯 다른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조지 마이클은 1980년대 팝 음악의 대표주자입니다. 그의 전성기는 짧았지만, 1억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였습니다. 스티비 원더 등의 흑인음악과 퀸 등의 백인 음악에 모두 영향을 받은 독특한 팝 음악이 그의 장기였습니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과 프로듀싱, 심지어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맡은 다재다능한 음악인이기도 했지요.

 

Wham! 의 최고 히트작 2집 표지.


조지 마이클은 밴드 Wham!으로 데뷔했습니다. 초기에 웸은 랩음악을 들고나와 괜찮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2집은 ‘Wake Me Up Before You Go-Go’, ‘​Carelesss Whipsper’ 등의 메가 히트곡을 쏟아내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인기에 힘입어 1985년에는 서방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

 

Wham!은 3집을 내고 해체했습니다. 보컬과 프로듀싱을 도맡아 한 조지 마이클이 기타리스트 앤드류 리즐리에 비해 음악적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지요. Careless Whisper 등 앤드류 리즐리에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곡들이 히트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조지 마이클의 솔로 시작은 화려했습니다. 조지 마이클 솔로 1집 ‘Faith’는 빌보드 1위 곡만 4개 곡이 쏟아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이라 말할 정도의 거대한 성공이었지요.

 

조지 마이클의 최대 히트작, 1집 ‘Faith’ 표지.


그의 전성기는 짧았습니다. 진지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던 조지는 2집 홍보 활동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 촬영도 거부했죠. 진중한 음악을 담은 2집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한 조지는 소니 뮤직이 열심히 자신을 홍보하지 않았다며 고소했습니다. 소니 뮤직 또한 조지 마이클의 태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지난한 법적 분쟁이 이어졌습니다. 음악 활동은 중단되었습니다.

 

1998년, 조지 마이클은 공원 화장실에서 체포됩니다. 변장한 경찰관과 동성 성행위를 시도하다 함정수사에 걸려 체포된 겁니다. 조지 마이클은 Wham! 시절부터 양성애자였다고 합니다. 이후 조지 마이클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연인이 에이즈로 사망했고, 이어서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조지 마이클은 마약과 가벼운 섹스로 채운 은둔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전성기의 창작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프랭크 오션 또한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미국에서 알앤비는 오랜 역사를 지녀 공식화된 음악이 되었는데요. 21세기 들어 알앤비에 일렉트로니카, 록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섞어 기존 알앤비에 한계를 극복한 음악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알앤비를 ‘피비알앤비’라고 부릅니다. 이 음악에 대표 뮤지션이 바로 프랭크 오션이지요.

 

프랭크 오션은 뉴올리언즈 출신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집의 녹음 장비가 망가지자 프랭크는 LA로 상경합니다. 그곳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은 채로 저스틴 비버, 존 레전드 등의 팝 아티스트들에 곡을 작곡하는 고스트 라이터가 되지요.

 

프랭크 오션을 세상에 알린 믹스테잎 ‘nostalgia, ULTRA’.


안정된 수익을 얻었지만 그에게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습니다. 프랭크는 최고의 힙합 레이블인 ‘데프잼’과 계약합니다. 이후 믹스테입(무료 공개앨범) ‘nostalgia,ULTRA’를 발표하지요.

 

데프잼과 정규 앨범 1집을 내기 전, 프랭크 오션은 충격적인 발표를 합니다. 손편지로 자신에 첫사랑이 남자였다며 성적 소수자임을 대중에게 밝힌 겁니다. 보수적이고 마초적인 흑인 음악계에서 전래가 없던 일이였지요. 데프잼의 리더 제이지 등 많은 흑인 음악가들이 그를 격려했습니다. 마침 오바마 정권 또한 동성애자의 인권 향상을 노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윽고 1집 ‘Channel Orange’가 발매됩니다. 놀랍게도 그는 성적 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홍보에도 활용한 셈입니다.

 

프랭크 오션의 음악은 기존에 파티 뮤직, 힙합 음악에 영향을 받은 주류 알앤비와 전혀 달랐습니다. 어둡고 섬세한 멜로디, 진중하게 고통을 담은 가사, 화려한 멜로디를 절제해서 담은 편곡 등 모든 면에서 1집은 걸작이었지요. 프랭크 오션의 최고 히트곡 ‘Thinking about you’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2012년 흑인음악을 상징하는 명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프랭크 오션은 4년간 잠적합니다. 마약 문제나, 팝계의 문제아 크리스 브라운과의 주먹다짐 등 해프닝으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몇 년 째 ‘거의 다 완성되었다’ 라고 말했던 2집은 2016년까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 프랭크 오션은 충격적인 행보를 다시금 이어갑니다. 돌연 무려 2장의 앨범을 낸 겁니다. 

 

첫 번째 앨범 ‘Endless’는 독특한 음반입니다. 음원도 없고, 트랙 리스트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동영상뿐입니다. 이 영상은 프랭크 오션이 나선 계단을 만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배경으로 깔린 음악은 파편화된 습작입니다. 팬이 아니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듯한 특이한 앨범이지요. 이 앨범을 내며 프랭크 오션은 대형자본 데프잼과 맺었던 계약을 완료합니다.

 

대형 음반사 데프잼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만든 앨범 ‘channel ORANGE’


계약 종료 하루 후, 프랭크 오션은 앨범 ‘Blonde’와 신곡 ‘Nike’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합니다. 모두 레이블과 상관없이 본인 단독으로 애플 뮤직에 독점 발표했습니다. 또한, 뉴욕, LA, 시카고, 그리고 런던에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300페이지 분량의 잡지와 CD를 팔았습니다. 수익 대부분은 프랭크 오션 본인의 것입니다.

 

‘Blonde’는 4년의 기다림을 보상해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1집에 비해 비틀즈와 비치 보이즈 등 록밴드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요. 사운드는 한층 절제되었습니다. 확실한 히트곡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줬습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애플 뮤직에서 ‘줄 세우기’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프랭크 오션 또한 거대 자본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랭크 오션은 자신의 음원이 데프잼에 소유가 되지 않도록 6년간 끊임없이 ‘체스 게임’과도 같은 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데프잼은 프랭크 오션에 독점적 스트리밍 발표를 비판하며 다시는 아티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스트리밍 독점 발매를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랭크 오션은 멕시칸 레스토랑 체인 ‘치폴레’의 홍보 음악을 작업하다 논쟁 끝에 계약을 철회하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오션은 수표에 ‘꺼져’라고 적어서 치폴레에 계약금을 돌려주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올해 그래미도 의도적으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스스로 시상식에서 빠졌습니다. 음원도 집계가 되지 않아 빌보드 차트에도 성적 집계가 되지 않습니다. 거대 자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진정한 이단아입니다.

 

4년 만에 발표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프랭크 오션의 앨범 ‘Blonde’


프랭크 오션은 조지 마이클과는 달리 아직은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미와 빌보드 등과 거리를 두면서 과다한 언론 노출을 피합니다. 거대 자본의 홍보력에 기대기보다 단독으로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큰 수익을 올립니다. 대형 음반사의 취향에 맞는 음악보다는 자신의 세계관을 제대로 투영한 음반을 만듭니다. 덕분에 프랭크 오션은 주류 알앤비 뮤지션과 비교해서 ‘ 뭔가 다른’ 음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대 자본이 항상 악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프랭크 오션의 1집 앨범은 레코딩 엔지니어만 30명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들의 팀워크가 음반에 높은 완성도에 도움이 되었지요. 성적 소수자로서의 가치관을 오히려 홍보에 이용한 초기의 성공 또한 대형 음반사에 도움이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프랭크 오션이 자신만의 개인적 예술관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거대 자본에 요구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프랭크 오션은 선배 뮤지션 조지 마이클과는 달리 영리하게 기술과 법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형 자본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하면서 말이죠.

 

조지 마이클과 프랭크 오션은 매우 닮았습니다. 둘 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 모두의 영향을 받은 음악에 자신만의 섬세한 세계관을 담은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둘 모두 성적 소수자지요. 마지막으로 둘 모두 대형 자본, 사회와 끊임없이 부딪치는 이단아입니다.

 

안타깝게도 조지 마이클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 법적 분쟁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짧은 전성기를 마감했습니다. 프랭크 오션은 이와 달리 지금껏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법과 기술을 교묘하게 이용해 거대 자본과 싸우며 말이죠. 둘이 다른 행보를 보이는 건 개인의 차이보다는 시대의 차이일 겁니다. 사회와 싸우며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두 뮤지션, 조지 마이클과 프랭크 오션이었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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