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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실리콘밸리] 무너진 신화 '여자 스티브 잡스' 엘리자베스 홈즈

시대가 원한 '스타 창업자'…혁신은 낙관주의에서 나오지만 비관주의도 필요

2018.09.17(Mon) 13:21:52

[비즈한국] 창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항상 나오는 게 ‘규제’입니다. 창업을 하려 하면 규제를 하고 위험하게 보는 냉소주의 때문에 창업이 어렵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보면 미국은 창업의 천국처럼 보입니다. 규제도 적어 보입니다. 창업에도 긍정적입니다. 세상을 뒤집어버리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와 같은 젊은 창업자가 주기적으로 나오기도 하지요. 

 

위험을 과감하게 지고 실험을 강조하는 실리콘밸리 문화. 이런 문화에서는 많은 실패만큼 빠른 혁신이 일어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지요. 이런 문화가 나쁘게 작용한다면 어떨까요? 누군가가 허풍으로 실험 성공을 주장한다면? 그 실험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한다면?

 

잡지를 장식한 엘리자베스 홈즈. ‘넥스트 스티브 잡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Inc 표지


오늘은 제2의 스티브 잡스에서 사기꾼으로 추락한 사업가 엘리자베스 홈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는 누가 봐도 훌륭한 창업자의 자질을 가진 걸로 보였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중심, 스탠퍼드대학교를 나왔습니다. 공무원이던 부모 덕에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그 중에서도 중국어에 능통했습니다. 그는 중국어를 발판으로 싱가포르의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바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그야말로 스타였습니다. 금발로 염색한 긴 머리. ‘이공계 여성 CEO’라는 시대가 원하는 이미지.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터틀넥. 제3국 아이를 구하겠다는 웅대하고 올바른 비전. 그야말로 스타의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거대 약국 체인 월그린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헨리 키신저 전 장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채닝 로버트슨 스탠퍼드대 화학공학과 교수 등이 그녀의 멘토였지요. 그가 차린 회사 테라노스는 한때 90억 달러(약 10조 1340억 원)의 기업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 받았습니다.

 

홈즈의 회사 테라노스의 핵심은 혈액 검사였습니다. 원래 정맥에서 몇 ml의 혈액을 뽑아서 하는 검사를 바늘로 단 몇 방울만 뽑아 재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홈즈는 홍보했습니다. 260개가 넘는 다양한 질병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고 말이죠.

 

조금만 생각하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생물학은 IT와 다르게 저렴하게 무한대로 실험할 수 없습니다. 실패가 약간의 귀찮음인 검색엔진, SNS, 커머스 등의 IT 서비스와 달리 생물학에서 실패는 죽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료와 개발자 인건비만 드는 IT와 달리 생물학 실험에는 큰 돈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기술적으로도 의문이 많았습니다. 손끝의 혈액에는 죽은 세포 등 순수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고작 몇 방울이다 보니 오염되기도 쉽습니다. 정확한 검사가 가능하냐는 질문이 있었지만 홈즈를 집중 조명하는 IT 매체, 경제 매체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잘 몰라서’였습니다.

 

결국 사고가 터졌습니다.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전설적인 탐사 전문기자 존 캐리루우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홈즈와의 인터뷰에서, 테라노스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냐에 대한 답이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거짓말이라는 감이 온 겁니다.

 

6개월간 테라노스 전 직원 등을 취재한 존 캐리루우는 테라노스의 모든 게 허상이라는 탐사 기사를 공개했습니다. 260여 개의 질병 중 실제로 테라노스가 진단한 질병은 16종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는 기존 키트를 썼습니다. 홈즈는 “나중에 우리가 그런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라며 태연하게 실험 결과를 조작했습니다. 테라노스가 FDA(미 식품의약국)에 인정받은 검사는 헤르페스(포진)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테크크런치 행사에 나온 엘리자베스 홈즈. 그녀는 PR의 달인이었다. 정작 핵심인 기술은 거짓말이었다. 사진=Flickr


개인적인 윤리도 문제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홈즈와 라메시 서니 발와니 테라노스 COO(최고운영책임자)는 연인 사이였습니다. 발와니는 홈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년의 인도 IT 회사 중역으로, 이미 IT 버블 시절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회사의 핵심이 연인 사이였다면 당연히 이사회가 알아야 했지만 그들은 이를 비밀에 부쳤습니다.

 

남은 건 몰락이었습니다. 90억 달러에 달했던 기업 가치는 0이 되었습니다. 테라노스는 지카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기기 ‘미니랩’을 개발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한번 무너진 신용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핵심이던 홈즈와 발와니는 각종 금융사기 혐의로 고소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올해 9월, 테라노스는 남은 돈을 모두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며 공식적으로 회사의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엘리자베스 홈즈의 이야기는 너무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였던 거죠. 그래서 비판적으로 의심해보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혁신 기지라는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들조차 홈즈의 이야기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모든 혁신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혁신은 낙관주의자 손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들은 혁신을 위해 때로는 무리해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의심하는 비관주의자, 냉소주의자도 사회에는 필요합니다. 테라노스와 같은 거대한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실리콘밸리의 영웅 선호가 만든 괴물, 테라노스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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