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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한국-독일 잇는 '진짜' 투자자 네트워크 첫발

독일 내 한국계 투자자들 '첫모임'…명함 주고받는 네트워킹 말고 실제 작동하는 협력체 되길

2026.04.17(Fri) 23:05:30

[비즈한국] 유럽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독일 진출, 그리고 독일 기업의 한국과의 접점을 만들다 보면 늘 비슷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좋은 기술은 있다. 좋은 투자자도 있다. 한국에 관심 있는 유럽 플레이어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셋이 정기적으로 만나고, 서로를 신뢰하고, 실제로 다음 액션까지 이어지는 구조는 생각보다 드물다.

 

유럽에는 한국계 투자자가 적지 않다. 독일만 봐도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쾰른 등 각 도시에서 벤처캐피털(VC),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패밀리오피스, 사업개발 전문가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과 독일, 더 나아가 한국과 유럽을 잇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한국 스타트업을 보고, 누군가는 유럽 딜을 보며, 누군가는 대기업의 전략적 협력을 고민하지만, 이 흐름이 하나의 ‘운영 체계’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베를린에서 열리는 ‘한-독 투자자 네트워크-첫 만찬(Korea–Germany Investors Network – Inaugural Dinner)’을 단순한 만찬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과 내가 일하는 123Factory가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겉으로는 저녁 식사를 곁들인 네트워킹 행사이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독일을 잇는 실행 중심의 민관 협력형 투자자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과 함께 베를린에서 ‘한-독 투자자 네트워크-첫 만찬(Korea–Germany Investors Network – Inaugural Dinner)’을 열었다. 사진=이은서 제공

 

행사의 형식은 의도적으로 작고 유연하게 잡았다. 긴 발표도 없고, 무거운 패널 토론도 없다. 4월 17일(현지시각) 오후 6시부터 참석자들이 도착해 리셉션에서 인사를 나누고, 6시 30분부터 임상범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이후 KIC, KOTRA 함부르크, KEIT의 기관 소개 및 한국 투자 기회 등에 대해서 설명했다. 123 Factory가 왜 이런 자리가 지금 필요한지 짧게 설명하고, 참석자들이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속적으로 가진 문제의식은 이 첫 모임 이후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그렇다면 ‘왜’, ‘어떻게’ 만나는가였다. 뷔페 형식의 만찬과 자유로운 네트워킹 사이에서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려면 서로가 어떤 분야를 보고 있는지, 어떤 기업을 만나고 있는지, 한국과 독일 사이에 무엇이 비어 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발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모임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미국의 한인 금융 네트워크인 KFS(Korean Financial Society)였다. 여기에 더해 지난 3월 18일 런던에서 열린 유럽판 KFS 모임은 내게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한국계 금융인과 투자자들이 국경을 넘어 자발적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정보와 신뢰를 실제 협력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에서도 이런 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한인 금융 네트워크인 KFS(Korean Financial Society)를 이번 행사의 모델로 삼았다. 사진=KFS 제공

 

그 구상을 실제 자리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번에는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이 먼저 공식적인 판을 깔아주었다. 나는 그 위에서 민간이 어떻게 이 네트워크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지 고민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유럽은 미국과 환경이 조금 다르다. 런던,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취리히처럼 생태계가 여러 도시로 흩어져 있고, 투자자들의 관심도 금융, 딥테크, 산업기술, 기후테크,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으로 더 세분됐다. 

 

그래서 유럽에서의 네트워크는 ‘명함 교환’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결국 서로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구조, 다시 말해 운영 가능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계 금융인과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정보와 신뢰를 자산으로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내가 이번 모임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생각한 단어도 바로 그것이었다. Operational(작동하는).

 

4월 17일(현지시각)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주독한국대사관 제공

 

비전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한-독 협력이 중요하다”, “한국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이 필요하다”, “유럽 투자자도 한국 시장을 봐야 한다”는 말은 이미 수없이 반복됐다. 그런데 막상 실무로 들어가면 누가 어떤 기업을 소개할지, 누가 현지 검증을 도울지, 누가 다음 미팅을 연결할지, 어느 행사에서 다시 만날지, 투자 이후 사업화는 누가 지원할지 같은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추곤 했다. 나는 이번 네트워크가 그런 공백을 조금씩 메우는 구조가 되기를 바랐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왜 이런 네트워크가 필요한지 더 분명해진다. 한국계 투자자들뿐 아니라 한국과의 협업 가능성을 진지하게 보는 투자자, 전략 부서 관계자, 사업개발 전문가들이 행사에 함께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유럽과 한국을 잇는 딥테크 크로스보더 펀드를 고민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의 지역 산업 생태계에 관심을 보였다. 또 어떤 사람은 유럽 시장에서 실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한국 기술을 찾고 있었다. 이 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한국계’라는 정체성만으로 묶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독일을 넘어 유럽 단위의 연결도 하려 한다. 런던, 파리, 베를린에 흩어져 있는 한국계 투자자들이 만난다면 단순 친목이 아니라 딜 소싱, 공동 검토, 한국 기업 소개 같은 훨씬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

 

그다음은 한국 지역 테크 투어다. 한국의 투자 생태계는 아직도 서울 중심이지만, 실제 산업적 경쟁력은 지역에 더 깊게 뿌리내린 경우가 많다. 광주의 모빌리티, 대전의 딥테크, 울산의 제조와 조선 기반 산업은 외부 투자자들이 서류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을 보여줄 때도 스타트업 몇 곳을 발표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산업의 현장과 기술 기반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자는 결국 현장에서 확신을 얻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행사의 또 다른 의미는 민관 역할 분담이 비교적 선명했다는 데 있다. 대사관은 이 자리가 공적인 신뢰와 품격 위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공공기관들은 한국과 독일 사이의 제도적, 정책적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123 Factory 같은 현장형 파트너는 그 위에서 실제 후속 액션을 설계하고 움직이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이 조합이 꽤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없고, 민간이 혼자 신뢰를 만들기도 어렵다. 결국 마중물과 엔진이 함께 움직여야 네트워크가 살아난다.

 

‘한-독 투자자 네트워크-첫 만찬(Korea–Germany Investors Network – Inaugural Dinner)’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주독한국대사관 제공

 

사실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를 조금 경계하는 편이다. 유럽에서도 너무 많은 행사가 네트워킹을 말하지만, 그 중 적지 않은 자리는 행사 직후 곧바로 잊힌다. 명함은 쌓이지만 관계는 남지 않고, 대화는 즐거웠지만 다음 단계는 없다. 그래서 이번 모임이 적어도 그런 행사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가자들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 사람과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감이 왔다”는 느낌을 가져가야 한다.

 

베를린에서 이런 일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의미 있었다. 베를린은 겉으로는 자유롭고 느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실험이 일어나는 곳 중 하나다. 공공과 민간, 기술과 문화, 자본과 아이디어가 예상 밖의 방식으로 만나는 도시다. 한국과 독일의 투자자 네트워크가 이 도시에서 첫발을 떼는 것은 상징적이다. 이번 만찬이 거창한 선언문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몇 년 뒤 돌아봤을 때 “그때 베를린에서 처음 서로를 제대로 연결했다”는 시작점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말뿐인 네트워킹은 이제 끝내야 한다. 한국과 독일 사이에도, 유럽 안의 한국계 투자자들 사이에도, 이제는 작동하는 관계와 실행 가능한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이번 베를린의 저녁이 그 첫 장면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 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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