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동아시아 4개국 중 유일하게 4만 달러를 돌파하며 3만 달러 중후반의 한국과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이 격차를 ‘대만의 경제적 우위’로만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국 모두 AI발 반도체 특수에 올라타 있는 상황에서, 대만의 질주 역시 TSMC 중심의 단일 산업 의존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대만의 1인당 GDP는 전년 대비 6.6% 증가한 4만 2103달러(약 6180만 원)로 전망됐다. 한국은 3만 7412달러(약 5491만 원)로 전년 대비 3.3% 증가에 그치며, 지난해 22년 만에 역전당한 대만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IMF는 5년 뒤인 2031년 양국 격차가 1만 달러 이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반도체 착시’ 지적, 대만도 동일하게 적용
대만의 성장세는 인상적이다. 2025년 대만의 실질 GDP 성장률은 7%를 웃돈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대만 통계당국과 외부 전망기관 모두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TSMC를 중심으로 한 파운드리 생태계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칩 수요를 독점적으로 소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이 성장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대만 내부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계 글로벌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파이낸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대만의 6% 성장률 전망치를 두고 선진 경제로서는 “완전히 미친(totally crazy)”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동시에 대만 경제의 성장이 반도체와 패키징 등 “그 단일 섹터로부터의 수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관 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우려 요인으로 지목했다.
실제 대만은 수출이 GDP의 67%를 차지하며, AI 관련 품목이 전체 수출의 65% 이상을 점유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15%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면서 환율 조작 의혹과 통화 절상 압력이라는 외부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즉 대만의 1인당 GDP 4만 달러 돌파는 ‘구조적 체력’보다는 'AI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수로 실적 신기록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글로벌 반도체 경기 확장세 지속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현재의 반도체 확장세가 적어도 2027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AI 투자의 수익성 검증 시기, 빅테크의 자금 확보 여부, 중국 메모리 기업의 기술 추격 등을 리스크 요인으로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이 리스크 요인이 대부분 대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AI 투자의 수익화가 지연되거나 빅테크의 설비투자가 감속되면 HBM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 못지않게, 그 칩을 위탁 생산하는 TSMC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도 지난 1월 “1인당 GDP 역전은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이 크고, 반도체 착시 또한 반영돼 있으므로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GDP 격차 진짜 원인은 ‘반도체 구조’ 아닌 ‘인구와 환율’
결국 한국과 대만의 1인당 GDP 격차를 만든 핵심 변수는 반도체 산업의 우열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차이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첫째, 인구 규모의 차이다. 대만 인구(약 2340만 명)의 2.2배인 한국(약 5168만 명)은 1인당 수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둘째, 원화 약세다. 달러 환산 GDP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에 머물면서 한국의 달러 표시 1인당 GDP는 실제 경제력보다 낮게 집계된다. 환율이 1400원대로 내려가기만 해도 1인당 GDP는 3만 8500달러대로 올라선다.
셋째, 잠재성장률의 구조적 차이다. 세계 최고 속도의 저출생·고령화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7~2%대로 추정되며, 대만도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으나 제조업 기반과 이민 유입,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등에서 상대적 여력이 있다. 이는 반도체 사이클과 무관한 중장기적 체력 차이다.
대만의 성취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만을 ‘반도체 기반 구조적 우위 국가’로, 한국을 ‘메모리 사이클에 흔들리는 국가’로 대비하는 이분법은 현실을 단순화한다는 분석이다. 양국 모두 AI 특수라는 동일한 파도에 올라타 있으며, 그 파도가 잦아들 때 받을 충격 또한 양국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다만, 대만 정부가 TSMC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R&D 투자 유인을 설계한 산업 정책의 집요함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동시에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반도체 사이클 자체가 아니라, 반도체 외 제조업·서비스업의 부진, 내수 침체, 인구 구조, 그리고 환율 변동성 같은 반도체 너머의 체질 문제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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