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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이들이 왜 '차도'로 다닐까

보도 폭 최소기준 1.5m 안 되는 곳도 33곳…전문가 "무리한 보·차도 분리가 사고 위험 더 높여"

2020.01.23(Thu) 10:02:28

[비즈한국] 학생들을 자동차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분리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보도가 폭이 지나치게 좁아 오히려 어린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규정은 있지만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좁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폭이 좁은데도 보·차도가 분리된 스쿨존 내 도로를 통합해 보행자 우선도로로 개선해야 한다”며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한 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 뒤편에서는 차량이 진입 중인데도 두 어린이가 차도로 걷고 있다.  사진=박찬웅 기자


비즈한국은 서울시 각 구에 관할 지역 어린이 보호구역의 폭과 편측(한쪽) 보도에 대해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5개 구 가운데 정보 부존재를 이유로 회신을 거부한 13개 구를 제외한 12개 구의 자료를 취합했다. 

 

그 결과 스쿨존 내 도로 819곳 중 폭이 1.5m가 안 되는 곳이 33곳에 달했다. 국토교통부 행정규칙인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보도의 유효 폭 최소 기준은 1.5m다. 폭이 1.5m인 보도까지 합하면 144곳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한다. 스쿨존 내 보도 5곳 중 1곳은 국토부 지침을 겨우 이행하는 셈이다. ​

 

서울시 12개 구에서 공개한 어린이 보호구역 보도 폭 현황. 자료=강동구·강북구·​관악구·​구로구·​금천구·​도봉구·​동대문구·​동작구·​마포구·​서대문구·​성동구·​중구

 

기준인 1.5m를 간신히 만족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보·차도 분리는 통상적으로 구민들의 민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지역 구민이 보·차도 분리를 요청하면, 담당 직원이 현장 실사를 통해 보도 설치 여부를 가린다. 최소한의 공간이 확보될 경우 구민 요청에 따라 어린이 보호를 위해서 보·차도를 분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1.5m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한 초등학교 앞 보도. 폭은 1.2m이지만, 방호 울타리가 높게 설치돼 실제보다 더 좁게 느껴진다. 사진=박찬웅 기자


문제는 폭이 좁음에도 민원으로 인해 무리하게 보도와 차도를 분리해 오히려 어린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많은 지역에서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른 최대한 1.5m 기준을 지켜 보도를 설치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쿨존은 특수지역으로 생각해야 한다. 등하굣길에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에게 보도 폭 1.5m는 너무 좁다. 답답함을 느낀 아이들이 차도로 넘쳐나오는 이유”고 주장했다.

 

서울시 내 한 스쿨존에 주·정차 중인 오토바이와 자동차. 자동차가 보도에 주차할 경우 어린이들은 차도로 걸어야 한다. 사진=박찬웅 기자


실제로 서울시 한 초등학교는 보도 폭이 1.2~1.8m 수준이었다. 성인 1명이 걷기에도 좁다고 느낄 정도로 폭이 좁았다. 여기에 성인 허리까지 올라오는 높은 방호 울타리가 설치돼 체감 폭은 더 좁아 답답할 정도였다. 보도에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불법 주차라도 하면 보행자는 불가피하게 차도로 걸어야 한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보도 대신 차도로 걷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폭이 좁은 보도가 한쪽(편측)만 설치된 것도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한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11개 구 스쿨존 내 편측으로 설치된 도로는 217곳으로 28%에 달했다. ‘보행자의 안전과 자동차의 원활한 소통’이거나 ‘도로 폭 협소’가 대체적인 이유로 꼽혔다.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양측으로 보도를 놓지 못한다면 보도를 설치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하다. 편측 보도가 설치된 차도로 운전하는 사람들은 보도가 설치되지 않은 쪽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주의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한쪽에만 보도를 설치하면 반대쪽 이해당사자의 사고 위험률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11개 구에서 공개한 구내 어린이 보호구역의 편측보도 현황. 전문가들은 보도를 한쪽에만 설치할 경우 반대쪽 보행자의 사고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강동구·강북구·​관악구·​구로구·​금천구·​도봉구·​동대문구·​동작구·​마포구·​서대문구·​성동구·​중구​

 

A 초등학교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 중인 B 씨는 “보도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등하굣길엔 더 심하다. 보도가 좁아도 너무 좁은데, 최근엔 울타리까지 더 높아졌다. 우리 문구점이 보도 중간에 위치하다 보니 아이들이 문구점을 방문하려고 울타리를 뛰어넘기도 한다. 여기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하소연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보행자나 자동차 모두 양방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보·차도를 혼용해야 오히려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성훈 선임연구위원은 “스쿨존 내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처럼 스쿨존 내에 사고 단속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스쿨존처럼 변수가 존재하는 구역에서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주의를 갖고 서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정훈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기관이 양보해 담장을 허물고 보도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이미 보·차도가 분리된 상황에서 이를 허물어버린다면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에게 혼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어렵다면 과감하게 보·차도를 혼용하고 스쿨존 내에서 차량이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강제성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도로 폭이 좁은 이면도로는 보행자 우선도로로 전환될 수 있게끔 할 방침이다. 행안부는 1월 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연내 도로교통법을 추진해 물리적으로 공간 확보가 어려운 경우,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20km 이하로 더 강화해 보행자에게 우선 통행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아울러 ‘도로 외 구역 보행자 보호 의무법’을 신설해 이를 위반할 경우 벌칙 부과할 예정”이라며 “보행자 우선도로를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위 사항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꼭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먼저 고려하자는 의미로 발의된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한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정의해 이면도로가 아니더라도 보행자 안전을 우선할 필요가 있는 도로라면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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