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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기생충'을 독일어 더빙으로 보면 어떤 맛?

베를린에서 외화는 더빙 버전만 상영…오리지널 버전 영화관은 경영난으로 폐업

2020.02.20(Thu) 10:17:06

[비즈한국] 봉준호 감독 덕분에, ‘기생충’ 덕분에 2월 둘째 주 내내 기분 좋은 날들을 보냈다. 국내에 있었더라면 더 많은 이들과 기쁨을 공유하며 국가적 축제 같은 순간들을 누렸겠지만, 해외에 있으니 나름대로 다른 결의 기쁨을 경험했다. 외국인 친구와 지인들이 기생충 수상 관련 얘기를 꺼내면 내가 상을 받은 양 어깨가 올라갔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처럼 나라를 대표해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할지라도, 봉 감독으로 인해 기생충으로 인해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이 격상된 것은 분명하니까. 게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른 유럽의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위축감으로 적잖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라 더욱 통쾌하고 짜릿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에서 상영된 독일판 ‘기생충’ 포스터. 사진=CJ ENM


인기를 넘어 신드롬으로 이어지는 미국이나 영국 등과 달리 베를린에서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을 계기로 한 상영관 확대라든가 인기몰이 등의 이슈는 없다. 일부 극장에서 상영했던 기생충 영화도 막을 내린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주요 언론들이 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고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상과 글로벌 중심 무대에서 활약하게 될 기대감을 내비쳤다. 독일의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DW)는 “‘기생충’이 한국 영화를 글로벌 중심 무대로 밀어 올렸다”며 봉준호 감독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1인치 자막의 장벽’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자막의 장벽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소감을 들었을 때,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감독이 담고자 했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외국에 체류하는 동안 늘 ‘자막의 장벽’을 체감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오리지널 언어 버전으로 된 영화를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베를린에선 오리지널 언어로 상영하는 단 하나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독일어로 영화를 더빙해서 상영한다.

 

그러니 베를린에 그 많은 극장이 있어도 아무데나 갈 수 없다. 말을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의 문제는 차치하고 원작과 더빙 버전의 전혀 다른 느낌은 안 보고도 예상이 되는 바,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남은 단 하나의 오리지널 상영관은 지난해 12월 31일부로 문을 닫았다. 영업손실이 심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갈 때마다 극장 안은 썰렁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더 스카이워커’ 같은 대형 기대작도 절반 정도만 상영관이 찼다. 그나마 내가 본 가장 많은 관객이었다.

 

아이 수준에 맞는 애니메이션 등을 볼 때는 아이와 나를 포함해 달랑 3명이 관람한 경험도 있다. 상영관이 문을 닫기까지, 베를린에 거주하는 2년 넘게 영화관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단 한 번도 예매할 필요가 없었다. ‘이래서 운영이 될까’를 걱정하곤 했으니,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베를린의 유일한 오리지널 버전 영화 상영관. 영업손실로 지난해 12월 말 문을 닫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베를린에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사는데도 오리지널 버전 상영관이 폐점할 정도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독일인은 거의 다 더빙 버전 영화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극장뿐만 아니라, TV에서도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나 외국드라마를 방영한다. 한 채널에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독일어 더빙 버전으로 방영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1970~80년대 한국어 더빙 버전 외화를 TV로 보던 느낌이 떠올랐다. 지금 시대에 아직도 더빙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 독일인 지인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문맹이 꽤 있었기 때문에 더빙 영화를 상영했다면, 지금은 자막 보는 것 자체를 귀찮아해 더빙 버전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젊은 층은 오리지널 언어로 된 버전을 선호하기도 해, 최근 일부 극장에서는 특정 영화에 한해 가끔 오리지널 버전을 상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봉 감독이 말한 ‘자막의 장벽’이 미국에선 외국어 영화의 소외 혹은 할리우드 영화 선호 등으로 표현됐다면, 독일에서는 자국어로 ‘덮어버리는’ 식으로 자막 자체를 없애버린 셈이다. 자막은 없어졌으나 원작이 가진 느낌은 사라지니 온전히 영화 그 자체를 감상하기 힘들게 만드는 또 다른 벽은 아닐까. 

 

독일 현지 시각으로 20일 70번째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개막한다. 다행히 국제영화제 상영작은 오리지널 언어에 영어 자막으로 상영되기 때문에 골라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한국 작품만 예매하고 있으니 외국 나와 살면 애국자 되는 심리인 걸까.

 

그나저나 한동안 독일에서 상영된 ‘기생충’의 더빙 버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곳에서 ‘기생충’의 인기가 다른 나라의 그것 같지 않은 이유가 혹 그 때문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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