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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택근무 1년, '집순이'도 집이 안 편하다

공간의 분리에서 오는 일과 휴식의 경계 무너져…업무 시스템 역량에 따른 격차도

2021.01.26(Tue) 15:03:10

[비즈한국] 한 손에 휴대폰, 한 손에는 아이 간식 봉지를 들고 발로는 걸레를 민다. 재택근무 중인 하영 씨(가명, 33살)가 22일 오후 4시 30분 아이를 맞았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는 엄마를 보챘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는 하영 씨는 아이 돌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지만 진행 중이던 업무는 전부 중단됐다. 하영 씨는 채팅방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코로나19는 많은 직장인의 근무 형태를 바꿔 놓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상향에 따라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결과 ‘재택근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을 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직장인의 근무 형태를 바꿔놓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기까지의 업무가 집으로 옮겨졌다. 효율성과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질 새 없이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상향에 따라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비교적 시스템이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준비 없이 정부의 재택근무 지침을 받아들였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직장인 74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 수준인 53.9%였다. 이 중 대기업 직장인의 재택근무 경험 비율은 82.1%로 매우 높았지만 중소기업은 절반 수준인 43.8%에 그쳤다. ‘재직 중인 회사가 거리 두기 단계 및 정부의 권고에 따라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비율도 44.9%나 됐다. 전문가들은 “성과 위주의 평가 흐름에 대응하는 게 변화의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일터와 휴식처, 모호해진 경계가 주는 피로감 호소

 

4살 아이를 둔 하영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점심은 주로 빵으로 때운다. 업무를 하면서 집안일이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아침 9시 이전에 청소와 설거지도 마친다. 하영 씨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 코로나19 위험이 덜어졌다는 데서 안심이 되지만 출근과 퇴근, 회사일과 집안일의 구분이 흐릿해져서 힘들다. 회사에서는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집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농담처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애엄마들과 ‘공동 작업실을 하나 구하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전했다.  

 

외국계 기업에 재직 중인 민지(가명, 26살) 씨는 최근에서야 재택근무가 편해졌다. 처음에는 회사에 나가서 처리해야만 하는 업무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렵고, 기술적인 문제로 다 같이 회의를 진행하는 데도 오류가 있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업무 진행 여부는 ‘줌 메신저’로 확인한다. 자리를 오래 비워두면(컴퓨터에 일정 시간 접속이 안 돼 있으면) ‘자리 비움’ 상태로 빨간색 표시가 뜨기 때문에 늘 초록색 표시가 뜨도록 커서를 움직여야 한다. 하루 세 번 끼니를 챙기는 것도 일이다. 배달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꼭 배달음식을 시켜 먹게 됐다. 민지 씨는 “집순이라서 오히려 외부세계와 집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집에서 업무를 위해 전화 통화를 하고, 상시 일을 하다 보니 집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 민지 씨가 보내준 그림. 민지 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에너지가 남아 요즘에는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린다”라고 말했다. 사진=민지 씨 제공

 

집의 규모에 따라 재택근무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5평 고시원에서 올 한 해 재택근무를 하느라 힘들었다는 스타트업 재직자 민준 씨(가명, 28살)는 작년 3월 첫 출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일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을 구했는데 이렇게 긴 시간 재택근무를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나마 서울의 거리 두기 단계가 낮을 때는 카페나 스터디카페를 갔지만 그마저도 어려워 집에 있어야 하는 시기엔 우울감이 짙어졌다. 민준 씨는 “코로나19로 집 꾸미기가 유행이 됐다고 하는데, 다 남의 일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타지에서 와 만날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근을 해도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수 없으니 회사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기도 어려웠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겨내도 재택근무 유지…성과 위주 평가가 ‘관건’

 

정부와 기업은 점점 재택근무가 확산될 거라고 보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쟁점과 평가’에서 재택근무 확산과 관련해 상시 재택근무보다는 재택, 기존 사무실, 원격 사무실 등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재택근무’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무실 근무 시간보다 성과 중시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결론 냈다. 

 

이미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재택근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기업들은 많다. 트위터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원하는 직원에 한해 무기한 재택근무를 허용하기로 했으며, 페이스북은 향후 5~10년간 직원 중 절반을 재택근무 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원격학습 전문기업 휴넷이 최근 주 1일 재택근무제를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보안 문제가 발목을 잡던 금융권은 올해 1월 1일부터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일부 전산시스템 개발 및 유지보수 업무 부서를 제외하고 상시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

 

한편 재택근무 시행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지난해 하반기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속하는 국내 100대 기업 10곳 중 9곳이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한 중소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재택근무 관련 통계를 보면 대기업이 중심이 된 경우가 많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정보기술 프로그램이나 화상회의 프로그램 등 효율적인 업무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5인 미만 사업장같이 기업 규모가 작으면 시스템 구축이 어려워 재택근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더라도 업무 외 시간에 지시가 내려온다거나 부당한 감시 등으로 일과 삶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택근무제 도입의 핵심은 ‘성과 평가’다. 성과 위주로 평가가 이루어지면 근무지가 회사든 집이든 카페든 상관없는 것이다. 문제는 ‘성과 위주 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역량이 있는지’다. 대기업은 대체로 코로나19 이전부터 관련 시스템을 도입해왔기 때문에 이번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기존 시스템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감시’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특히 기업이 가진 고민을 정부가 살피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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